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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티 Nov 04. 2021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

-헤라클레이토스 '변화하는 자신' -

만약 10살의 나를 만난다면 뭐라고 말을 해야 할까? 우리 둘은 서로 잘 맞을까? 혹은 80의 나와 만나면 어떨까? 뭐가 달라졌을까? 그때의 나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나이를 먹어 갈수록 똑같이 유지되는 부분은 거의 없다. 피부도 근육도 얼굴도 성격도 바뀌기 마련이다. 오랜만에 만난 대학교 동기들이 기억하는 나의 모습과 지금의 나는 얼마나 비슷할까? 


MBTI 검사가 인기가 끌면서 사람을 혈액형으로 분류하는 시절을 거쳐 이제 조금은 더 과학적인 16개의 유형으로 구분한다. 그런데 설문 조사에 매우 그렇다와 조금 그렇다 사이에는 간극이 큰 듯하다. 쉽사리 결정을 못하거나, 기분에 따라 하루 컨디션에 따라 다른 게 사람이 아닌가? 감정적이기도 격정적이기도 한 나는 이제 그런 느낌이 하나도 남아있지가 않다. 나이가 먹을수록 변해가는 게 자연스러운 것이라면, 현재의 나와 한때 나였던 사람 그리고 언젠가 내가 될 사람을 연결하는 요소는 무엇일까?


고대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는 이러한 고민을 담아 '테세우스의 배'라는 사고 실험을 고안했다. 뛰어난 사령관인 태세우스는 배를 몰고 전쟁에 나간다. 배는 전투로 손상되고 항구로 다시 들어온 배는 판자 몇 개가 교체되고, 다시 바다로 나간다. 곧 태세우스는 망설이지 않고 배를 몰아 적의 배를 들이받고, 배는 다시 수리가 필요해진다. 이런 상황은 결국 "원래 있던 판자가 단 하나도 남지 않을 때까지" 반복된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태세우스의 배는 처음 항해를 시작했던 때와 같은 배일까?


만약 인간이라면 하루에도 수억 개의 세포가 사라지고 새 세포가 자라나는데 10년 전의 나와 1년 전의 나의 몸은 완전히 다른 몸이 아닌가? 생각할 것도 없이, 헬스장 가서 드는 쇳덩이의 무게가 군대 시절과 같지는 않고, 건강검진에 내시경에 뭐가 보이기 시작한다면 내가 똑같은 '나'라는 그 증거가 어디 있을까?


기억이라면 이것 또한 간사하고 잔혹한 게 없다. 지나고 나면 희석되고 아름다운 추억만 남기도하고, 좋았던 추억도 이별을 겪고 나면 다 부질없는 쓸데없는 기회비용이 되는 것처럼.. 쉽게 변하고 믿을 수 없는 것이 기억이다. 또한 인간관계 또한 어김없이 변하고 새로운 사람이 다가오고 오래된 사람이 떠나간다. 예전의 둘도 없는 친구가 지금은 어색할 수도 있을 수도 있으며, 죽고 못 살던 옛 연인이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취미와 취향 성격도 심지어 입맛도 바뀐다면, 나는 나를 살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새로운 나를 매일 만난 것이 아닐까? 그 이유가 나이를 먹어서 인지? 아니면 경험을 쌓여서 인지는 모르겠으나 요새 들어 부쩍 내가 낯설다는 느낌이 자주 든다. 꾸준히 해오던 게 실물이 나고, 새로운 게 눈에 들어온다. 사람 많은 곳을 좋아했지만 이제는 아무도 없는 곳을 멍하니 바라보는 게 그렇게 좋다. 


 DNA가 나를 만든다는 말 유전이 중요하다는 말 사람은 죽어도 안 변한다는 말 분명 틀린 말은 아닌데, 그 DNA도 다시 태어나고 바뀌지 않을까? 만약 유전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굳이 자기소개서를 할 필요 없이 눈 한번 질끔 감고 피 한 방울로 나를 소개하면 그만인데 말이다. 


테세우스의 배는 완전히 다른 배일까? 아니면 같은 배일까? 나는 어제의 '나'와 같다고 말할 수 있을까? 과거와 미래의 나를 연결해주는 그 열쇠는 무엇일까? 


나의 부모님은 나의 어떤 모습을 기억하실까? 아직도 대들고 철부지인 어린 아이의 모습으로 기억할까? 아니면 이제 말이 없어진 어른으로 인식하고 계실까? 혹은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젊은 시절 호탕하고 유머러스한 남자일까? 아니면 10분동안 숨만 쉬어도 어색한 사이일까?


과거의 내가 미래를 만든다는 말이 이제 더이상 동의가 되지 않는다. 닮은 점이 하나도 남아있지가 않다. 


어제와 다른 작년과 다른 내 모습을 보면서 조금이나마 타인이 이해가 간다.


나도 변했으니 그 사람도 변한 건 당연한 것이고, 원망도 미련도 부질없는 것이라는 걸.


하고 싶은 말을 꼭 해야 했고, 사람 많은 곳을 좋아했던 ENTP였던 내가 이제는 아닌 것처럼 테세우스의 배는 사람들은 변하는 게 당연하니 그렇게 상처 받지 말라고 이야기해주는 듯하다. 


적어도 그때 나한테 왜 그랬을까? 내가 무슨 잘못을 했을까? 라는 자책에서 벗어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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