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를 말할 때 나도 말하고 싶은 것

by 제이티

아침, 6시 30분 알람 소리에 깨워 눈을 뜬다. 일어날까 말까 망설인다. 어제 먹고 잔 맥주 두 캔 때문이었는지, 눈은 흐리고 발은 침대 아래 한 발작 내딛기가 여간 힘들다. 다시 누워서 알람을 미루고 천장을 보면서 갈까 말까 또 망설인다. 밖을 보니 비도 오고 하는 것 같은데 오늘은 그냥 쉴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한다. 눈을 질끔 감고, 다시 잠을 청해 보지만, 왠지 모를 죄책감이 밀려와서, 서둘러 러닝 팬츠를 입고, 운동화 끈을 묵고, 그렇게 또 아슬하게 운동장으로 출발한다.


도착시간은 7시 5분 벌써, 사람들은 모여 몸을 풀고 있고,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하다. 저분들도 나처럼 아침에 올까 말까 망설였을까? 아니면 눈뜨자마자, 마치 출근하듯이 왔을까? 심지어 여기는 일을 하러 나온 직장이 아니라, 취미를 즐기러 온 동호회다. 그런데 나는 왜 출근하듯이 의무감에 온 느낌이 들까? 심지어 아무도 출근을 강요하지 않고, 안 나온다고 벌금을 내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고민하는 사이 하나둘씩 사람들이 출발하고, 나 역시 몸이 코스를 기억하듯이 무의식적으로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몸이 무겁다. 어깨를 누가 짓누르는 느낌이 드는 건, 오늘따라 내린 비 때문인지, 어제 잠을 제대로 못 잔 것인지, 강력 본드로 어깨와 목을 붙여놓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10분쯤 지났을렸나. 오늘은 괜히 왔나?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앞에 보이는 사람들은 점점 멀어지고, 오늘도 약 20킬로를 홀로 뛰어야 하겠군! 하며 생각하니 벌써부터 다리에 힘이 풀리기 시작했다. 여기 동호회 사람들의 수준과 경력은 도저히 내가 따라잡을 수 없는 사람들이라, 군대처럼 발을 맞춰 뛰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처음에는 뒤로 점점 처지고, 밀리는 느낌이 들어서, 오기 싫은 적도 몇 번 있었으나, 이상하게 일요일만 되면 다시 오곤 한다. 더군다나 오늘은 컨디션이 안 좋은 게 확실하다. 지난 주랑 같은 코스인데도, 속도가 안 나기 때문이다. 달리기를 꾸준히 하는 사람은 알겠지만, 러닝 시계가 같은 속도, 같은 심박수를 가리켜도 몸이 느끼는 그날의 속도는 다르다. 아직까지 기계는 이해할 수 없는 달리는 주자만이 느끼는 이른바 해 본 사람만 아는 그런 데이터가 있다.


반환점을 찍고, 돌아올 때는 이제 어깨와 목에 붙여 놓은 본드를 붙여놓은 듯한 느낌은 해결된다. 불규칙한 호흡도 돌아오고, 몸의 리듬이 일정하게 바뀐다. 이제 몸은 출발보다 가벼워지고, 앞만 보는 데 사용했던 눈은 이제 다른 곳을 쳐다볼 여유가 생긴다. 그리고 비로소 그때야 주변의 사물과 자연이 보이기 시작한다. 비가 와서 물방울 품은 나무와 풀이 여간 생기가 넘쳐 보였다. 녹색이 주는 건강한 기운 때문인지 코로 들어오는 공기가 적당히 차고, 상쾌하다. 일요일 아침이라 도로에 차도 없어서 바람소리, 물소리가 들려온다. 더군다나 노작공원 산책로는 나무가 촘촘하게 심어져 있어 외딴 섬 마냥 더 고요하게 러닝을 즐길 수가 있다.


이제 5킬로 남짓 남았다. 이때부터는 발바닥에 땀에 미끄러지는지 물집이 잡히는 느낌이 든다. 다시 처음 뛸 때처럼 몸이 무거워진다. 호흡보다는 엉덩이와 다리가 무거워져 다리를 들고 가는 게 아니라 끌고 가는 느낌이다. 그리고 머릿속에 드는 생각은 하나다. 빨리 가서 물 마시고, 막걸리 마시고, 씻고 싶다는 생각. 습도가 높아서 여간 몸이 끈적하다. 누가 내 몸에 요구르트를 먹다 흘린 것 같이, 그런 끈적하고 냄새나는 불쾌함이 든다. 지금 내가 달리는 나의 모습을 볼 수만 있다면, 아마 창피해서 다시는 달리기를 못할 수 있다. 조금이라도 산소를 더 마시기 위해 입은 벌어지고, 고개는 들린다. 자연의 싱그러움을 느꼈던 나의 눈과 귀는 어느새 마비가 돼서, 아무 감각이 없는 무의 상태가 된다.


처음 달리기를 시작했던 이유가 바로 이 무의 상태를 느끼기 위해서였다. 7년 전쯤 무엇 때문인지, 괴롭고 잠을 못 자는 나날이 많았다. 생각은 생각에 꼬리를 물고, 어떻게 해도 나의 힘으로 바뀔 수 없는 상황을 겪으면서, 좌절과 분노로 마음 안의 화가 커져만 갔다. 이러한 잡념은 불면증을 만들고, 의기소침하게 만들며, 세상에 나 혼자 있는 듯한 느낌이 들게 했다. 지금도 가끔씩 약을 먹고 있다. 우리의 뇌는 신기하게도 시간을 기록하는 방법이 다른 것 같다. 좋은 일 보다 나쁜 일의 대한 기억이 선명하다. 이는 다시 비슷한 상황이 왔을 때 대비하기 위한 일종의 방어기제다. 하지만 이러한 방어 시스템은 때론 너무 제대로 작동해서, 좋은 기억을 다 지워버리고, 나쁜 기억만 남게 한다. 그래서 몸서리치게 괴롭다. 잊혀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달리기를 하면, 특히 마지막 체력이 고갈되었을 때 느끼는 “무”의 상태는 나쁜 기억마저도 흐릿하게 만들어 주었다. 왜냐하면, 몸이 힘들기 때문에, 나의 뇌가 마음의 힘듦마저 처리할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달리기를 한다. 아주 건전한 이유로 말이다.


그런데, 마라톤 클럽의 사람들의 얼굴에는 고통을 없애기 위한 “무”의 얼굴이 없다. 내가 보기에는 미소가 가득할 때도 있지만 그것보다 “그냥” 달리는 사람들 같다. 서브 3이라는 기록을 위해, 피 잘 통하는 혈관을 위해, 또한 다이어트를 위해 달리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나처럼 생각을 지우기 위해 “무”를 위한 달리기를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런 사람은 여태껏 본 적이 없다. 만약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오랫동안 달리는 이유가 되지 못한다. 건강을 위해서 달리는 사람들은 역설적이게도, 건강해 지려고 하면 달리기를 그만둔다. 마찬가지로 기록을 위해 달리는 사람들은 기록 달성을 하고 나면, 달리는 목적이 사라진다. 달리기 뿐만 아니라 무언가 확실한 목적을 둔 행위는 그것을 달성하면 더 이상 계속할 이유가 사라지게 된다. 암스트롱이 달에 도착한 후 더 이상 달에 사람을 안 보내듯이 말이다.


목적을 두고 사는 삶은 강한 동기부여와 하는 일에 집중력을 높인다. 대학을 가기 위해 공부하는 수험생들은 그 원대한 목표가 있기 때문에, 친구들과 놀고 싶은 유혹을 떨쳐내고, 오늘도 묵묵히 학원과 독서실로 향한다. 운동선수들은 4년에 한 번 있는 올림픽을 위해 그날을 위해 모든 스케줄을 조정한다. 아이돌 연습생들은 언젠가 자신이 무대 위에 서는 상상을 하며, 연습실에서 땀을 흘린다. 수영 황제 마이클 펠프스에게 금메달 23개를 딴 비결을 묻자 그는 이렇게 답한다. “저는 남들보다 52일 더 연습했을 뿐입니다.” 즉 1년에 365일 중에서 일요일마저도 쉬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의 자기가 있었다고 답했다. 성공한 사람들의 인터뷰는 언제나 그렇듯 자신의 “노력”에 대해 이야기할 뿐 자신의 타고난 신체적 조건과 배경 그리고 더 중요한 운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담담하게 쌓아 올린 노력의 결과가 성공이라는 점을 하나같이 말한다. 물론 그들의 엄청난 열정과 노력을 비하하고 싶지는 않다. 오랜 시간 춤을 추고 운동을 해봐서 얼마나 힘들고 대단한 건지 내가 익히 알기 때문이다. 남보다 더 잘하기 위해, 최고가 되기 위해 나도 그렇게 펠프스를 꿈꾸며, 성공한 사람들이 나오는 무르팍 도사를 즐겨 보면서, 힘을 내고 노력을 하곤 했다. 하다 보면 좌절의 순간이 오고, 때론 마음대로 풀리지 않은 인생을 보며 많이 자책하기도 했지만, 그럴 때도 내 노력이 부족했거니 하며 생각을 했다.


그렇다. 나도 그들 중 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아니 지금도 그러고 싶다. 예전에 아는 후배가 이런 말을 한 적 있다.


“형은 왜 쉬지를 않아요? 왜 그렇게 치열하게 살아요?”

“남들과 똑같이 쉴 거 다 쉬고 어떻게 성공하겠냐?”


내가 저런 말을 했다는 것은 내가 나중에 분명히 무엇이든 되고 말 거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남들은 성공한 베스트셀러의 작가의 과거의 실패와 무용담을 듣고 싶어 하지, 무명작가의 하소연을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 억울하면 출세해야 되는데, 그거 말처럼 쉽지 않다. 마치 마라톤에서 1분 당기는 것처럼 말이다.


달리면서 느낀다. 어차피 1등 하는 사람은 정해져 있고, 내가 노력을 하면 더 잘 달릴 수 있겠지만, 그렇더라도 나는 선수가 못 된다라는 점을 말이다. 그럼에도 달리는 이유를 찾으라면 이제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냥”


달리는 그 자체 과정을 즐기면 지나가는 꽃도 볼 수 있고, 바람이 코에 스치는 느낌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피니시 라인과 시계를 보고 달리면, 그저 남 뒤에 쳐져서 따라가는 입 벌리고, 머리는 헝클어지고, 표정은 일그러져 있는 못난 내가 보일 뿐인다.


아직은 아니지만, 나도 클럽 아재들처럼, 생각을 없애기 위한 달리기가 아니라, 누구보다 빨리 달리고 싶은 달리기가 아니라 그냥 일어나서 뛰다 보니까 뛰고 있는 달리기를 하고 싶다.


어쩌면 나도 가능성이 전혀 없지는 않아 보인다.


왜냐하면 이제 달린 후 포카리스웨트보다 장수막걸리가 더 땡기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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