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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티 Apr 20. 2023

져스트 두잇

책을 굳이 열심히 읽을 필요가 없다. 이미 읽기만 해도 상위 5프로에 들어간다고 한다. 그 정도로 읽는 사람이 없다는 말일까? 실제로 책을 읽는다고 말하는 사람은 많고 인증하는 사람도 많지만, 실제로 읽은 사람은 별로 없다. 읽었다 해도 끝까지 안 읽은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면서 작가는 배고픈 직업이라고 혀를 놀려댄다.  


목표를 세우고 분명히 무언가를 한다고 말하는 사람 중에 그대로 실천하는 사람은 5명이고 나머지 95명은 그저 그 말만 반복할 뿐이다. 특출 난 5명이라서 원래 그런 사람들이라 그럴까?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실제로 타고난 재능충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열심히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5명에 든 사람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일까? 생각보다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이다. 열심히 하려고 목표를 달성하려고 할수록 오히려 부담이 발목을 잡고 머릿속을 하얗게 만든다. 목표는 장황하고 너무 높아서 계단을 밟기도 전에 계단의 수만 세다가 질려버린다.


책을 읽고자 할 때 하루 몇 권 일주일에 몇 권을 읽겠다는 목표는 캘린더에 안에만 존재하는 끄적거림일 뿐 결코 실현되는 일이 없다. 애당초 목표를 높이 잡아서 실패할 명분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도처에 너무도 잘난 인간들이 우글거리기 때문일까? 아니면 나는 저들처럼 안될 거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일까? 아니다. 그냥 안 했기 때문이다.


과정 그 자체를 즐기라는 말과 대가 없는 보상 없는 만족이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오늘 뛰면서 느꼈다. 오늘 날이 좋아서 뛰었는데 묘하게 기분이 설렜다. 기록보다 더 중요한 게 뛰는 그 자체였다. 말로도 글로도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몰입하는 순간의 묘한 쾌감을 대체 어떤 단어로 표현해야 할까? 만약 오늘 얼마나 뛸지 속도를 얼마나 할지 정했다면 이런 쾌감이 왔을까?


이 사회는 모든 가치를 평가하는 도구를 숫자로 삶는다. 그런데 숫자는 땀방울과 내 안의 마음의 변화를 결코 나타낼 수 없다. 생각이 끊이지 않고 흐르듯이 내 마음이 숫자처럼 정확하게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목표를 정한다는 말은 그것이 1등이든 10등이든 필연적으로 차별과 우월감과 열등감을 데리고 온다. 측정은 비교를 위해 만들어졌으니깐 말이다. 조지오웰이 말했듯 지금 기술 수준에서 우리가 누리는 물질은 이미 충분하다. 그렇다면 문제는 소수의 특권 의식이 사라지게 된다. 이건 위험하다. 권력을 누리는데 말이다. 그래서 쉴 틈 없이 비교하고 경쟁할 것을 만든다. 내가 무엇을 하는지 보다 그것을 얼마나 잘하는지가 중요한 세상이 된듯하다. 그것이 나에게 기쁨을 주는지 보다 말이다.


그러나 남들보다 무엇을 더 가졌다고 혹은 더 잘한다고 결코 행복하지가 않다. 비교를 통해 잠깐 우쭐함을 누리는 것은 불행하지 않을 수 있으나 그건 순간의 안도감이기 때문이다. 저마다 사람은 타고난 기질이 다르듯이 하나의 척도로 평가할 순 없다. 무언가를 바라지 않고 열심히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할 때 비로소 진정한 삶이 시작하는 듯하다. 그때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돈을 많이 벌면 행복할 거라 한다. 이 말은 그 돈으로 하고 싶은 것을 한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그런데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모른다면 돈은 행복을 줄 수 없다.


져스트두잇 그냥 나이키 광고가 아니었다. 매일 밥 먹고 잠자고 숨 쉬는 지금 이 일상이 어쩌면 그냥 그냥 살아가는 인생이 숭고한 인생인 듯하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내가 누구인지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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