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윤
나에게 교육이라는 서비스를 제공해준 사람에게.
"서로 미워하는 마음과 벽을 녹이는 시간은 고작 반나절이었고, 누군가의 희생으로 오늘도 생기는 아침밥을 거부한 것은 무의미하였습니다. "
이 글의 문장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지나가다 보이는 올리브영 사이에 생긴 또 다른 화장품가게는 초라함을 초월했으니까요. 그 재미있는 장면을 녹화해놓고 심심할때마다 돌려보며 마음의 위안을 얻었달까요. 지금은 삭제되었지만요. 학교에서는 엄마 아빠에게 말하지 않은 위험한 일들이 자주 생깁니다. 사실 인간의 모습인 외계인과 나는 한없이 다르지만, 그 중에서 나만 다르게 느껴집니다. 남들이 다 글을 쓸때 난 혼자서 멍을 때리고, 남들이 운동장에서 놀때 난 정글짐 꼭대기에 홀로 앉아 하늘을 봅니다. 그것도 언제 생긴지 모를 모듈러 꼭대기를 넘어 보고 싶지만 볼 수 없는 것 처럼요. 당신이 이룬 것을 저는 이루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옆에서 그렇게 본받을려고 애썼다는 것을 당신이 알까요.
그렇게 조금씩 커리어를 만들어가다보니 어느새 6학년에서 당신과 만난지 10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모든 게 많이 바뀌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그 시절처럼 멍을 때리고, 나와 다른 아이들을 경계했습니다. 안좋은 소식이라면 피구를 안하는 아이들이 생기지 않아 이제 수다를 떨 아이들이 없다는 것이죠. 그들과 나는 항상 다르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내가 모르는 이야기를 할때 나는 무서웠고요. 그들이 내가 모르는 인스타 이야기를 할때는 단지 나도 그 이야기에 끼고 싶어서 엄마에게 인스타를 시켜달라고 졸랐습니다. 그 결과물을 나는 만들지 못했습니다
.
이렇게 존댓말을 쓰는 것을 이상하다고 느끼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당신은 아니라고 봅니다. 당신은 책을 읽는 것으로 쓴다는 사람에게 라면받침대를 쓰든 무엇이든 쓰든 놔두라고 말했던 사람이니까요. 그들에 대한 편견이 없다는 것에 대하여 당신을 아주 존경합니다. 물론 우리 엄마 아빠가 1등이에요.
더이상 이쁜 표정들과 떨리는 댓글 진동 소리는 바라지 않습니다만, 하지만 아직까지 읽은 사람의 숫자를 확인하는 버릇은 남아있답니다. 그들이 나의 글을 읽고 나를 본받으면 좋겠고, 나를 흡수해가며 내가 쓴 문장들을 쓸때, 비로소 나의 문장 저작권을 다시 한번 생각할 때 말이죠. 그것을 느낄수는 없다만, 그런 것들이 당신의 행복과도 같은 존재랍니다.
어느덧 제가 존경하는 사람들은 10개월의 긴 시간일 수도 있지만 짧은 시간을 거쳐 당신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당신에 대한 벽을 녹이고, 당신에 대한 장단점을 발견했지만, 나의 잘 다져지지 않은 머리에 보관하고 있습니다. 오늘 당신은 내가 글이 잘 나올 것을 딱 봐도 비디오라고 했고, 결혼을 하지 말고 자유롭게 살라고 했습니다. 물론 그 말도 맞지만, 저는 어느 순간부터 당신의 주장에 휘말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마치 당신은 내가 아는 남이 아닌 그렇게 설득 시키고, 그곳에 내가 휘말리는 것 처럼. 그랬습니다.
음... 존경하는 당신은 나의 편의를 유지해주는 동시에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고, 당신은 나의 머리를 흔드는 동시에 나에게 깊은 여운을 남기었습니다.
나는 무의미한 사람이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