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원
- 입김으로 피어난
진정한 친구를 찾는 게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짓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꼭 그런 친구를 찾으려고 애를 쓴다. 모두들 눈에는 질투의 화살을 조여서 누군가의 뒷통수를 조준하기 바쁘지만 그럼에도 마음 편히 만날 친구를 찾느라 바쁘다. 청소년의 시기에 도달하게 된 나조차도 이런 일들을 한 두번 겪는 게 아니었다. 멋있다고 열심히 칭찬해주고 아무리 열띤 응원을 내 뱉어도 마음속은 여전히 불안한 마음에 날카로운 날을 둥글게 갈지 못하고 뾰족하게 세워둔다. ‘얘가 나보다 더 잘 하게 되면 어떡하지.’ 시험이나, 아니면 교내 대회에서도 늘 내 앞, 혹은 옆, 혹은 뒤의 누군가와 경쟁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상황들이다. 이렇게나 날 서있는 우리들에게도 과연 부드러운 만남과 교류가 가능할까?
공부를 한다는 것이 모든 이들에게 어떤 이미지로 다가갈 지,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반에서 책을 읽고 있으면 모두가 관심을 주지 않고 자기들끼리만 뭉쳐서 서로들만 아는 얘기들을 들어놓는다. 수학문제를 풀다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을 옆자리 똑똑한 남자아이에게 물어보러 의자를 끌어오면 아이들은 이상한 눈빛으로 한 번씩 힐끗힐끗 본다. 공부라는 것을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친구관계라는 것이 흐트러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요즘 들어 깨닫게 되었다. 마침 질이 좋지 않은 학교에서 전학 온 친구가 있어서 더 그러한 분위기로 흘러가는 것 같기도 하다. 이 친구는 전학을 오자마자 내가 좋아했던 선배마저 구경하러 올 정도로, 복도는 아수라장으로 이틀간 뒤집혀있었을 정도로 아주 많은 인기를 얻었다. 우리 학교에서 가장 인기가 많아진 이유는, 귀엽고 아리따운 얼굴과, 정말 과장이 아니라 모델이라고 착각할 다리길이 때문이었다. 그런 장점을 품고 우리 학교에, 무엇보다 자꾸만 바뀌는 친구관계에 불안한 감정을 느끼는 우리 반에 전학을 오니, 모두가 관심을 안 가질래야 없었다. 그래서 어쩌면 자연스럽게 조용해진 나는 붕 떠버린 혼자가 되어버린 것 같았다. 그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어떤 의도로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으며, 나는 자연스럽게 모두의 관심을 가져가버린 그녀에게 질투심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아니, 어쩌면 이젠 가끔씩 내 필요가치와, 내 존재감이 드러나보이지 않아 그 감정을 못 느끼기도 한다.
공부를 잘 하는 아이에게는 사실 별로 질투심도 느끼지 않고, 시샘을 느끼지도 않는다. 내가 요즘들어 짤막한 시간동안 공부를 하게 되면서 느낀 아주 작은 생각이지만, 우리 학교 친구들에게 있어서 공부가 그렇게 중요한 것 같지는 않았다. 그저 친구들은 공부를 하면서 이미지를 챙기려는 모습, 혹은 그 공부라는 주제로 남자들에게 꼬리나 흔들어보려는 속셈이라는 생각을 자기들끼리 억측하고 나누며 상상이나 하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마치 허상에 대한 질투심을 느끼는 것 뿐이었다. 공부를 하면서 많은 남자아이들에게 대화를 건네받은 상황은 오늘도 꽤나 많이 느꼈다. 그런데, 그 친구들은 그저 공부를 가르쳐주려는 것 뿐이고, 나도 그저 여자아이들은 문제는 안 풀고 거울만 보면서 화장에 대한 얘기만 하니 어쩔 수 없이 남자애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 뿐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아무리 많은 관심을 받아도 여전히 부족하다는 불안한 마음 때문인지 꼭 누군가를 질투하고 화살을 겨누게 된다. 나는 그저 그 친구들의 타겟 중 하나가 되기 직전에 놓인 것 뿐이었다.
이 외에도 자신의 재능, 혹은 능력에 대해서 경쟁을 함으로써 질투의 시선들이 따갑게 뒷통수를 쏠 것이고, 나 또한 앞에 있는 사람에게 그 시선을 쏘아댈 수도 있다. 우리들은 여러면에서 잘 알지도 못하는 타인들의 입에서 나오는 오지랖과 괜한 충고를 들어야 한다. 따가운 시선에도 돌아보지 않으면 내 어깨를 붙잡고 ‘내가 진짜 이 말은 안하는데’ 를 시작으로 해서 답답한 마음을 나에게 먹인다. 그런 불필요하게 신경을 써주는 똑같은 얘기를 반복해서 들을 바에는 차라리 혼자가 되는 게 더 낫다고도 느껴졌다. 그렇지만 여전히 쓸쓸함과 외로움은 어찌할 수 없는 가장 고통스러운 감정이었다.
이와 같이 결국 공부를 함으로써 부모님의 기대와 사회적인 기대, 그리고 친구들의 ‘너는 원래 잘 해 왔으니까.’ 의 부담스러운 시선들을 다 한 번에 껴안아야 한다는 것이 너무나 가혹한 현실이 되기도 한다. 남들에게 받지 못하는 관심은 나 자신을 텅텅 빈 북극 한 가운데에 집어넣은 것처럼 외롭고 한기가 돌게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어쩔 수 없이 펜을 잡는 것 일수도 있다. 교내 대회 수상자 명단에 내 이름이 올라가 있으면, 그 이름이 불릴 때라도 내 존재감이 생겨나는 희망과 따듯함을 얻는다. 물론 추운 지방에서 성냥 한 개비 피우는 것 밖에 되지 않지만, 그럼에도 잠깐의 따뜻함이 나를 감싸준다.
이런 고통스러운 청소년들에게, 과연 질투와 같은 날카로운 것들로부터 보호할 방법은 무엇일까. 내가 생각하기에는, 주변에 어정쩡한 사람들이 많을 수록, 날카로운 시선들도 늘어난다. 이렇게 너무나 피하고 싶지만 마주해야 하는 현실 속에서는 나처럼 피하기보다, 어쩌면 대화를 통해 그 어정쩡하고 군데군데 비어있는 관계를 채우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된다. 아무리 경쟁해도 끊어지지 않게, 그저 몇개의 흠집만 남게 열심히 꼬메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나는 모든 게 두려워서 경쟁 상대를 무시하는 셈이지만, 나도 곧 일어서서 많은 이들과 끈끈한 줄을 만들어서 끊어질 위험 없는 경쟁을 할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는다. 모두가 불안에 떨어하는 이 차가운 사회 속에서 우리들은 입김 나오는 대화를 통해 서로의 손을 녹여주려고도 노력해야 한다. 아무리 힘들어도, 끝까지 버티는 것이 우리들의 또 다른 경쟁이고, 또 다른 과제이다. 이 경쟁을 통해 죽지 말고 끝까지 서로의 손을 잡아 머리를 맞댈 친구를 만나는 게 우리의 최종 목적지다. 나도 이 사회에서 누군가 손 한 번 잡아주면 너무나 좋을 것 같다. 그래서 무시당하더라도 끝까지 모두에게 말을 건넨다. 안녕 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