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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티 Nov 09. 2024

사랑의 준비

젊은 베르테르슬픔


백은서



엄마는 늘 말한다. "지금은 연애할 때가 아니야." 그 말이 내 마음속에서 울려 퍼질 때마다 나는 자꾸만 혼란스러워진다. 왜냐면, 세상은 연애와 사랑으로 가득 차 있고, 나만 그 바깥에서 어딘가 끊어진 듯한 느낌을 받는다. 내 친구들은 연애를 이미 경험해서 나에게 자랑하는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아직도 어린아이처럼, 그 모든 감정들을 온전히 느끼지 못하는 것 같고, 그게 나만 뒤처지는 것 같은 기분을 만든다.


가끔 나는 엄마의 걱정이 과한 건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다. 나는 감정적으로 이미 충분히 자랐다고 믿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여전히 "지금은 그런 감정에 휘둘리지 말라"고 말한다. 감정의 속도와 본능의 밀물이 내 안에서 끝없이 충돌하는 것을 느끼면서도, 엄마의 말이 조금씩 진지하게 다가오기 시작한다. 연애라는 감정은 그저 한순간의 설렘과 심장의 떨림이 아니라, 더 깊은 혼란과 불안정함을 안고 있다는 것을, 나는 이제 조금씩 깨닫는다.


이 마음의 울렁임은 진짜일까, 아니면 내가 만들어낸 허상일까? 나는 그저 눈을 감고 내 가슴이 뛰는 소리만을 듣는다. 이 떨림이 사랑이라면, 그 사랑은 내가 온전히 이해할 수 없을 만큼 깊고, 때로는 혼란스러운 것일까? 이 마음이 다가오는 그 사랑이라면, 그 사랑이 나를 넘어뜨리거나, 혹은 내 안의 무언가를 일깨우는 파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며, 다시 한번 불안해진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말처럼, 사랑은 "한 번도 경험해본 적 없는 새로운 세계"를 열어준다. 그러나 그 세계는 언제나 선명하고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다. 그 세계는 오히려 어두운 골목을 지나야만 도달할 수 있는, 불확실하고 흔들리는 세계일 수도 있다. 프루스트는 그 세계를 우리의 본능에 의해 부딪히는 무수한 감정의 파도라고 묘사하며, 그 속에서 나는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의 아픔과 기쁨을 배운다고 말한다. 엄마는 아마 내가 그 파도를 헤쳐 나갈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상상해본다. 만약 내가 지금 사랑을 한다면, 그 사람은 내 모든 감정을 이해하는 사람일 것이다. 우리는 함께 있을 때 세상의 모든 걱정과 불안을 잊고, 단지 서로의 온기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사랑은 영원히 불멸하는 것일 거라 생각한다. 나는 그 사람과 함께라면 모든 것이 완벽하게 이루어지는 꿈의 나라로 떠날 수 있을 것만 같다.


우리가 사랑한다면, 그 사랑은 절대 흔들리지 않는 기둥처럼 내 삶을 받쳐줄 것이다. 나는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말한 것처럼, 사랑이란 두 사람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운명적인 결합’이라고 믿고 싶다. 두 사람은 서로의 마음을 한 번의 숨결로 알아차리고, 그 사랑은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을 것이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서 엠마누엘이 말하듯, 사랑은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줄 것이다. 그 사람과의 사랑을 통해 나는 세상의 모든 불안과 혼란에서 벗어나, 내가 무엇을 원하고 누구인지 더 잘 알게 될 것이다.


사랑은 나를 완전히 다른 존재로 바꾸는 힘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 사랑 속에서 나는 내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자아를 발견하고, 내 안의 새로운 세계를 열 수 있을 것이다. 그 사랑이 나에게 주는 모든 선물을 받아들이며, 나는 불안과 혼돈을 넘어설 수 있을 것만 같다. 그가 나를 사랑한다면, 그 사랑은 내가 가장 두려워한 혼돈을 넘어서서, 나를 깨워줄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망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나는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엄마는 분명히 나의 감정이 가장 강렬하게 밀려드는 시기에서 내가 그것에 휘둘리지 않도록 지켜보려 하는 것일 테다. 연애의 환상과 사랑의 본능적인 끌림이 때로는 우리를 불안정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프루스트가 말했듯, 사랑은 한 순간의 인상처럼 빠르게 다가오지만, 그 뒤에는 불확실성, 혼란이 따라온다. 나는 그런 감정을 아직 완전히 다룰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그 혼란 속에서, 사랑은 내 마음을 완전히 집어삼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엄마가 말하는 건 바로 그 점일 것이다. 사랑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설렘에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온전히 이해하고, 그 감정을 제대로 다룰 수 있을 때만 가능한 일임을. 나는 이제야 그 말을 조금씩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랑이란 한 순간의 열정과 심장의 떨림을 넘어서서, 진정한 이해와 상호 존중을 바탕으로 성장하는 감정임을. 그 과정이 어떻게 나를 바꾸고, 또 어떻게 내가 나 자신을 이해하게 만드는지 알게 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엄마가 나에게 지금 연애하지 말라고 하는 이유는, 어쩌면 내가 아직 내 감정을 온전히 다루는 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은 그 감정이 얼마나 강렬하고 혼란스러울 수 있는지, 그 힘을 스스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기에 나는 연애를 하고 싶어도, 그 힘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이해하고, 배우고, 자아를 확립하는 과정이 필요한 거라는 엄마의 뜻이 이제야 조금씩 나의 마음에 스며든다.


그리고 나는 그 감정을, 사랑을, 그 힘을, 더 성숙하고 깊은 마음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을 때 비로소 만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때가 오면, 그 사랑은 내가 상상하는 그 이상의 어떤 아름다운 변화를 가져다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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