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가람
“ 평생 사랑할께. ”
과연 우리가, 연락할 수 있는 수단이 사라지더라도, 너가 나의 얼굴을 잊는다 하더라도, 이름이 무엇이었는지 기억 하지 못하더라도 과연 너는 지금의 감정 그대로 변함없이, 아니. 애초에 나를 사랑할 수 있을까? 무책임하고 무자비한 그 디엠 한 문장. 나는 그 말의 심장이 요동침을 느끼며 오늘도 나혼자 밤을 설친다. 어차피 깨질 약속인거 뻔히 알면서. 하지만, 나는 그런 사랑을 찾아 헤메고, 길을 잃고, 허상의 쉼터에 도착해, 그곳이 나의 진정한 사랑이라는 이야기를 써내려간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초라한 존재인지 나는 알고 있다. 숫자로 표현 할 수 없이 광대한 우주 속에, 우리 인류라는 집단은 그저 먼지 티끌. 그리고 그 안에서 더 큰 사람이길, 더 빛나는 사람이길 바라는 우리는 불안정한 존재.
만약 나에게 나를 알아 갈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이 생기게 된다면 어떨까? 조금은 설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무섭다. 그럴때마다 구석에 박혀있는 인형과 대화하며, 쓸데없는 시리를 불러 별 영양가 없는 인공지능의 대화로 마음의 상처를 더욱 벌려낸다. 우리는 아픔을 회피하고 싶을때, 항상 애착인형이라는 내 옆에 또 다른 인물을 만들어낸다. 이 애착인형에게 우리는 오늘 하루의 고민과 아픔, 또는 남들에게 심지어는 가족에게도 털어 높지 못했던 아픔들을 털어낸다. 나에게 애착인형이라는 존재는 거울 이였다. 거울에 비치는 소녀를 향해, 나는 오늘의 걱정과 내일의 고민, 어제의 후회를 털어냈다. 어떨때는 난 왜 태어났을까 하고 질문만 되새기는 그녀에게 물었고, 어느 날은 솔직히 모든 걸 포기하고 싶다는 진심을 입 조차 제대로 벙끗거리지 못하는 비굴한 소녀에게 물었다. 남들이 자기 얼굴을 보기 위해 거울을 들고 다녔다면, 나는 나의 아픔을 비추기 위해 거울을 들고 다녔다. 항상 얼굴 고치지는 않고 화장도 안하면서 거울을 왜 그렇게 손에서 놓지 못하냐는 친구들의 말에 나는 “ 그냥 “ 이라는 뻔해진 대답으로 나의 서사를 이어갔다. 내가 봐도 이상한 나의 습관 때문에 일부러 나는 거울을 깨트리거나 버리거나, 다양한 방법과 수단을 통해서 그저 거울 하나를 나로부터 떼어놓겠다고 별짓을 다했다. 하지만, 어느 새 나의 주머니 속엔, 나의 손에는 거울이 거짓말처럼 들려있었다.
인간 복제라는 과학기술의 문제가 언론, 뉴스와 사람들 간의 사이에서는 화끈하게 타올랐다. 사실 나 또한 저게 맞는 걸까 싶었다. 전혀 정의롭지 않았던 기술의 등장으로 황당했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나를 복제 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 거울을 들고 다닐 필요 정도는 없겠다고. 모두가 복제하고 싶은 사람의 공통점이라고 한다면, 그들에게 존경스러운 이 나, 그들이 사랑하는 존재 이겠지만, 나는 사랑하지도, 존경하지도 않는 나를 복제 시키고 싶다. 그렇게 된다면 매일 밤 거울에게 묻는 것 보다, 나를 가장 잘 아는 나에게 물음으로써, 무언가 해결책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누구보다 소중한 나의 몸을 복제 시키고 나의 뇌 속 모든 지식과 모든 추억을 클라우드로 복사를 한다음, 복제된 나에게 붙여넣기를 한다면 조금이나마, 나의 손톱을 먹은 쥐 정도는 흉내 낼 수 있지 않을까? 누구보다 나의 아픔을 잘 아는 나야, 누구보다 특이한 나의 취향을 좋아해주는 나야, 이리와서 나에게 답을 줘, 그저 잠깐 나의 심장을 멈추게 해주는 답을. 그렇게 든든하지도 그렇게 마른 체격도 아닌 그저 나의 그 포근함으로나는 잠 재워줘. 거울 속에서 달리 느껴지던 나의 아픔을 현실에서 더욱 아프게 느끼게 해줘. 내가 부족하고, 내가 비효율적인 존재라는 것을 느끼게 해줘.
이렇게 아파오는 감각들로 절여진 부탁을 복제된 나에게 부탁한다면 어떤 답으로 돌아올까? 거짓말처럼 다음날부터는 가슴 구석에 있던 응어려진 무언가가 사라지겠지. 나의 아픔을 같이 느껴주길 바라던 복제된 나였지만, 복제된 나도 아픔이라는 희생을 하긴 싫었기에, 아픔을 지움으로써 자신의 역할을 박탈시키기로 결정했겠지. 누구보다 아프기 싫어헸던 나는 아픔을 지워버린채, 그저 감정없는 회색 빛깔로 뒤덮인 세상을 무지개색인 것처럼 살아간다. 단순히 내가 완성되지 않은 인간이라는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나는 나 자신을 버리기로 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