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제자에게 불현듯 전화가 왔다.
"선생님 집에 방 몇 개 있어요?"
"3개"
방의 개수를 왜 물어보지 하는 의구심도 없이 그냥 묻는 대로 대답했다. 역시 나란 남자는 평소 일상에서 묻는 이의 상황과 감정 따위는 생각지 않고 바로 대답하는 스타일이다. 사는 아파트 자기 윗집에서 아침에 불이 나서 집에 연기며 물이며 들이닥쳐 하루아침에 난리가 났다고 한다. 그래서 며칠 재워달라고 전화가 왔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려고 했으나 순간적으로 왜 굳이 나한테 전화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나도 모르게 그래 와서 밥이나 묵자라고 답했다.
고등학생인 아이는 한 참 사춘기 시절 아닌가? 위급상황에 생각 나는 사람이 나였던 것인 게 다시 생각해보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그런데 나는 짠한 마음이 들기는커녕 심심하고 혼자 먹는 저녁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했다. 벌써 5년 전 제자 내가 늙은 만큼 이 아이는 성장한 것 같다. 오히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의젓하고 담담했다. 수험생인데 집안에 책과 오답노트가 불에 탔지만, 묵묵하게 학원 가서 공부해야 한다고 가고, 돌아와서는 새벽 3시까지 과제하다가 잤단다.
대단하다...
내가 키웠지만, 나보다 더 독한 놈이다. 집에 불이 났는데, 별일 아닌 것처럼 똑같은 일상을 유지한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애써 괜찮은 척하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 주제넘은 위로 따위는 하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 서울에서 혼자 공부할 때 고모집에서 얹혀살았었다. 이른바 눈칫밥과 왠지 모르는 서울 놈들의 기에 주눅 들었던 때가 떠올랐다. 집에서 처럼 짜증을 낼 수도 없었고 감히 뭐 먹고 싶다고 말을 할 수도 없었다. 일찍 들어와야 하고, 항상 정리 정돈해야 하고, 친척동생들이 내 배를 밟고 지나가도 웃어야 했다. 진짜 힘들고 외롭지만 그렇다고 쪽팔리게 말하고 나면 해결이 될 거 같지도 않았다. 누구든 내 상황과 같지도 않고, 타인의 힘듦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여유가 없다. 그래서 내 안의 힘든 것들을 꼭 세상과 모조리 나눌 필요는 없으며 언제든 나 자신과 대화할 여지는 어느 정도 남겨두어야 한다. 그렇게 스스로 대화를 하게 되더라도 또 어떤 것들은 구태 끄집어내지 않고 어딘가에 그대로 둔 채 같이 살아가는 것도 현명한 방법이다. 어느 누구도 나를 구원해주지 않는다.
스스로 삶을 헤쳐갈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게 더 중요한 자세다.
담담하고 꿋꿋한 눈빛과 아무 거리낌 없이 웃으며 털털하게 자신의 상황을 얘기하는 제자가 대견했다. 어쩌면 그가 나에게 전화한 이유도 내가 그다지 남일에 관심이 없고, 나는 나에게만 집중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인 듯하다. 이미 다 커버린 제자가 너무 일찍 철이 들지 않았나 생각이 들었지만, 그럼에도 내가 끝까지 손을 잡아 줄 수 없는 것을 알기에 간섭할 수 없었다. 그저 배부르게 고기와 술을 먹이면 그뿐이다.
그 시절 나의 고모부가 아무 말 없이 고기 사주고 술 사주고 돈을 주고 갔듯이..
역시 위로는 말로 하는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