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머릿속에서 머물다가 다른 곳으로 흘러가지 않을 때 여간 곤혹스럽다. 자꾸자꾸 샘솟는 의식과 기억 그리고 불안이 나를 휘감아친다. 그때마다 가만히 누워서 천장을 보고 있으면 천장과 바닥이 붙는 꿈을 꾸다가 잠을 설치게 된다. 신이 인간이 코딩을 할 때 쉬는 방법을 입력하지 않았나 보다. 쉬고 싶을 때 어떻게 해야 쉴 수 있을까?
하루 종일 누워있는다고 멍하니 티브이를 본다고 해서 개운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기름진 음식에 시원한 맥주 한 모금으로 피로를 날릴 거라 생각하지만, 다음날 찾아오는 더부룩함을 생각하면, 이내 후회하고는 한다. 하지만 더 비극은 가만히 쉬고 있는 동안에도 생각은 흐른다는 점이다. 영화를 보면 영화 속의 잔상이 아니면 오늘 내가 했던 말이 혹은 누군가가 툭 던진 한마디, 혹은 갑자기 몇 년 전의 기억이 불현듯 떠오른다. 블루투스 스피커에 흘러나온 노래 가사가 나도 모르게 10년 전으로 데려가기도 하고 그때의 사람들을 다시 불러낸다. 즉 몸은 가만히 쉬고 있다고 생각하고 '뇌'는 그렇지가 않은가 보다. 불 꺼진 새벽에 엄마가 가족들을 위해 아침을 준비하듯이, 뇌는 왜 그리 바쁠까? 심지어 자는 동안에도 활발하게 꿈으로 나타나 열심히 일을 한다.
분명 쉬고 싶은데 생각이 떠돈다면, 바로 눈앞의 맛있는 음식을 보고도 음미할 수 없다.
불교에서 "사발을 보고 비워라"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음식만 집중하기도 힘들다는 것을 보여준다. 무슨 성인 ADHD도 아니고, 한 가지에 집중하기가 힘들까? 어디선가 우리의 뇌는 집중하기에 적합하지 않도록 진화돼 왔다고 들어본 듯한데, 어쩔 수 없는 것일까? 지금 글을 쓰는 동안에도 음악을 켜놓고 핸드폰 알림을 확인하고 있다 저녁 뭐 먹지를 생각하는 내가 정상일까? 아니면 질병을 앍고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흐른다. 무언가 새로운 게 떠오르는 창작의 고뇌일까? 그저 만질 수도 없고 입에 넣을 수도 없는 그림자에 불과할까?
나는 생각이 멈추지 않을 때마다 땀 흘리는 운동을 한다. 숨이 턱까지 차서 목에 쇠맛이 나는 그런 운동을 하고 나면 한 가지 생각만 남는다.
바로 힘들다. 아프다.
이 고통은 다른 잡념을 말끔하게 지워준다. 백신처럼 모든 바이러스를 물리치고 나를 단순 명쾌하게 만들어준다. 힘들고 아픔의 다음 생각은 샤워하고 싶다. 샤워를 하고 나온 순간 해탈이라도 얻듯이 모든 게 밝아 보이고, 선명해 보인다. 그리고 그다음의 생각은 사라진다. 그리고 생각이 사라진 자리에 '무'의 순간이 오면 비로소 온전히 꿈도 없는 꿀잠을 잘 수 있다.
어쩌면 단순하게 사는 것이 쉬는 게 아닐까? 죽음을 두려워하는 공포가 오히려 죽는 것보다 더 두렵지 않을까 싶다. 죽은 자는 말이 없고 고통을 모른다. 슬픔은 남겨진 자들의 몫일뿐. 완전한 '무'의 존재로 돌아간다면 거기에는 고통도 슬픔도 불안도 없다. 그저 모른다.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멍 때릴 수 있는 그런 여유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하지만 지금도 내가 일부러 찾는 호흡이 가빠지는 고통이 그리 나쁜 친구인 거 같지는 않다. 그때는 적어도 몸으로 들어가는 숨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세상에 없으니까, 걱정 잡념 부스러기는 흘리는 땀방울에 묻혀 보이지 않게 된다.
몸이 편안할 때 마음이 불편하고, 몸이 고통스러울 때 마음의 평화가 오는 듯하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