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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독서천재 정태유 Nov 07. 2019

나만의 우주, 서재를 만나다.

책 속 우주, 무한한 공간 저 너머로

  '무엇이거나 좋은 책을 사라. 사서 방에 쌓아두면 독서의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외면적인 것이긴 하나 이것이 중요하다.'   - 베네트


  지금 당신이 있는 곳이 어디든 신경 쓰지 말고 잠시 눈을 감고 생각해 보자. 지금 당신은 당신의 방 안에 앉아 있다. 책장이 보이는가? 책장에 꽂혀 있는 책이 보이는가? 책은 몇 권이며 당신이 가장 아끼는 책은 어디에 있는가? 그 책을 마지막에 그곳에 꽂아놓은 건 언제쯤인가? 기억이 나는가? 대충이나마 책장의 이미지를 그려볼 수 있는 사람은 대단한 사람이다.

  자신만의 책장을 기억하는 사람. 그만큼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해서 책장이 없는 사람은 전혀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것은 아니니 너무 자신을 자책해서는 안 된다.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의 책장이라고 하는 것은 거의 똑같은 모습일 테니까 말이다.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보자. "집에 있는 책장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나요? 책은 몇 권 정도 있으며 마지막에 읽은 책은 어디에 있나요?" 그러면 대부분 이런 대답을 듣게 된다. "책장이요? 책장이야 있긴 하죠. 신혼 때 산 게 있어요. 거기에 있는 책이요? 글쎄요. 다섯 권? 아니다, 한 이십 권은 되려나. 마지막에 읽은 책이요? 아, 그건 기억나요. 연초에 한 달에 한 권은 읽어야지 하고, 일부러 서점에 가서 베스트셀러를 샀었으니까요. 뭐 읽다가 그냥 꽂아둔 것 같네요. 아 그리고, 지난달엔가 회사에서 필독서라고 해서 읽었던 책도 있습니다. 아무래도 회사 다니면서 시간 내서 책 읽기가 좀…." 하기야 우리나라 성인의 독서량이 전 세계 최하위에 머물고 있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라고도 할 수 있겠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09년 10.8, 2011년 12.8, 2013년 11.2권이던 국민 1인당 연간 평균 독서 권수가 2017년 9.5권으로 낮아졌다또 다른 통계인 연간 독서율은 일반도서(종이책기준으로 성인 59.9%어른 10명 중 4명은 1년 동안 1권도 종이책을 읽지 않은 셈이다아이부터 어른까지 유튜브페이스북 등으로 정보와 지식을 취득하는 세상이니 누군가의 지적 게으름이나 세상의 부박함을 탓하기도 어렵게 됐다.

  서울신문 2019, 10, 04기사에서 발췌

 
  물론 책을 사서 책장에 꽂아두는 일종의 의식(儀式)을 치르지 않더라도 책은 그냥 읽어도 좋다. 그렇지만 여기서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책을 대하는 태도다. 책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그 책을 어떻게 대하는가에 의미가 있는 것이다. 책이 열 권 이하일 경우 보통 커다란 책장부터 사지는 않는다. 대개 그럴 경우, 다용도 박스와 같은 것을 구매해서 책을 꽂아둔다. 그렇게 읽어야 할 책이 단 열 권 정도라면 얼마나 좋을까? 문제는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점차 많아져 갈 때부터 생겨나는 법이다. 크기도 다르고 두께도 다르고 각종 책이 불어나게 되면 책은 어느샌가 애물단지가 되어버린다. 다시 한번 고민의 시간이 찾아오는 순간이다.

  '좀 더 큰 책장을 살까? 아니면 다 읽은 책은 치워버릴까? 그러기에는 책이 아까운데….'

  '아깝기는 뭐가 아까워 다시 읽지도 않을 텐데….'     

  나도 그랬다. 평소 책에 대한 욕심이 상대적으로 과(過)했던지라 내 작은 방은 언제나 책으로 넘쳐흘렀다. 책상 주변은 당연히 책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책상 아래, 책장 위. 심지어 천장에 닿는 부분까지도 책으로 그득했었다. 책을 좋아해서 책이 많은 건 좋지만 이쯤 되면 그 자체만으로 문제가 된다. 책에 미친 사람, 말 그대로 'book-holic'이 되어버린 것과 같다. 방문을 열고 들어가면 방 안에서 도저히 몸을 움직이기 불편할 정도인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책을 찾을 때였다.

  '지난번 봤던 그 책. 어디에 두었더라? 책상 아래였나? 아니 책상 위였나? 참나…. 어디에다 두었지?'

  워낙 책을 좋아하는 나였지만 이쯤 되면 짜증이 밀려온다. 책을 통해 내 삶을 구원하고자 결심했던 나였는데 책 때문에 이렇게 짜증을 내고 있다니! 나 자신을 돌아보았을 때 한심한 순간이었다. 갑자기 내 어린 시절 기억들이 떠올랐다.

  사실 나는 내 방을 처음 가져본 게 대학교 입학하고 나서였다. 그전까지는 우리 집은 있어도 '내 방'은 없었다. 어린 시절부터 늘 형과 함께 하는 '우리 방'이었고, 그 안에서 나만의 공간은 그다지 의미가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책을 꽤 좋아했지만 원하는 책을 다 가질 수도 없을뿐더러 설사 책을 갖는다고 해도 그 책을 감당할 공간이 없었다. 그렇게 초등학교에서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학년이 올라가는 동안 그나마 사서 읽었던 책들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어느 정도 쌓이기만 하면 주기적으로 폐품으로 버려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 책들은 아련한 기억과 함께 일종의 '트라우마'로 내 기억에 남아있다고 하겠다.

  독서를 삶의 목표로 정하고 난 직후, 나는 책을 위한 공간을 절실하게 갈망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책을 위한 공간. 책이 머무를 공간. 책이 살아 숨 쉬는 '절대공간'에 대한 의지가 나에게 생겨난 것이다. 이때 나는 일생일대 커다란 결심을 하게 되었다.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내 아이들을 위한 공간뿐만 아니라 내가 가진 모든 책과 앞으로 더 많은 책을 위한 공간을 생각한 것이다. 넓은 공간은 말 그대로 많은 돈이 있어야 한다고 자칫 오해하기 쉽다. 그렇다고 결코 미리부터 포기하거나 무조건 안 된다는 생각은 하지 않기 바란다. 나는 지금 강남 한복판에 있는 최고급 아파트를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최소한 책을 제대로 읽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면 적어도 책을 위한 공간을 가장 먼저 생각하고 공간을 구성해 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지금 당신이 가진 공간에서의 최적의 면적을 고민해 보라는 뜻이다.



  지금 내 방에 들어서면 삼면이 책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중 두 면은 큰마음 먹고 붙박이장으로 설치했다. 일단 많은 책이 자리 잡을 수 있을 만한 공간을 확보하는 것. 그것이 충분한 책을 읽을 수 있는 첫 자세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엄청난 '오버'가 아닌가 생각했었다. 막상 기존에 가지고 있던 책을 다 채워보니 엄청난 빈 곳을 마주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어떨까? 약 3년 만에 책장을 거의 다 채우게 되었다. 물론 당연한 말이지만, 내가 직접 사서 읽은 책들로 채워졌다는 뜻이다. 대략 권 수를 세어봐도 5천 권은 넘을 듯하다. 나는 이 방을 서재이자 나만의 도서관이라고 부른다. 지금은 나 혼자만의 공간이고 책방이지만 언젠가는 이 책들이 도서관으로 성장할 것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쓴 책 버킷리스트(공저)에서도 언급했지만 내 평생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바로 내 이름을 딴 '도서관'을 갖는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소유 차원의 꿈이 아니라 '공유'와 '나눔' 그리고 '베풂'의 의미도 있다. 책을 갖고 싶어도, 책을 사고 싶어도, 책을 보고 싶어도 하지 못했던 내 어릴 적 기억 속의 소년을 위해서다. 시대가 바뀌고 세월이 흘렀다고 해서 나와 같은 소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지금 시대에 더 많아졌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지금 내 방, 책방, 서재를 가리켜 도서관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당신이 책을 제대로 읽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반드시 서재를 가져야만 한다. 서재라는 말을 들으면 왠지 대기업 CEO들의 사무실 분위기를 연상하게 되지만 절대 그런 것은 아니다. 서재라고 해 봤자 처음에는 작은 책장이어도 좋다. 그곳에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책, 아끼는 책. 두고두고 읽으려고 하는 책. 잊지 못할 사람으로부터 선물 받은 소중한 책. 그런 책들을 한 눈에도 보기 좋게 꽂아 보자. 깔끔하게 청소도 하고 정리도 한 뒤에 한걸음 뒤에 서서 그 책장을 바라보자. 어떤가? 무슨 생각이 드는가? 일단 좋은 기분이 드는가? 그렇다면 이제 당신도 나처럼 본격적인 책 읽기를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자세를 갖춘 것이다. 마라톤을 하는 사람이 결코 하루아침에 출전할 수 있을 정도의 몸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평소에도 꾸준히 훈련하면서도 출전 두 달 전, 한 달 전, 하루 전 그렇게 서서히 스케줄에 맞춰 몸을 만들어 놓았기에 42.195km를 달릴 수 있다. 그렇다면 인생이란 마라톤을 놓고 보자면 얼마나 긴 코스인가. 그런 코스 동안을 함께 할 책을 준비하는 과정이라고 한다면 어떻게 대충 할 수 있을까? 기나긴 인생 속에서 책 읽기 또한 마찬가지다. 당장 1년 책 읽기 계획을 세운다고 한다면 지금 가지고 있는 책장으로는 어림도 없다. 당연하다. 그렇다면 단계별로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일단 책 장 하나만, 그리고 또 하나, 그다음에는 방 전체를 책장으로! 어떤가? 생각만으로도 근사하지 않을까? 고대 로마의 정치가 키케로는 이렇게 말했다. '책 없는 방은 영혼 없는 육체와 같다.'라고.     

  스마트 기술이 날로 발전하고 있다. 이제는 굳이 책 한 권을 사서 읽지 않아도 되고, 단돈 만 원이면 내 스마트폰으로 무제한으로 책을 읽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물론 어떤 방식으로 책을 읽는 것이 옳은가를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적어도 나만의 공간 속에서 나만의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것을 강조해서 말하고 싶다. 인터넷에 들어가서 '나만의 서재 꾸미기'라거나 '나만의 책방'이라는 단어만 입력해도 온갖 멋진 사진들이 튀어나오는 세상이다. 물론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인테리어적 요소를 고려해서 꾸미면 더 좋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주인공은 '책'과 '나 자신'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내가 얼마나 책을 사랑하고, 책을 생각하고, 책을 위하는 것인지, 나 자신을 돌아봤을 때 절대 부끄럽지 않은 서재가 되어야 한다. 영국의 소설가 존 릴리는 “마음속의 아름다움이란 그대의 지갑에서 황금을 끄집어내는 것보다는 그대의 서재에 책을 채우는 일이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책을 통해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싶다면 명심해야 한다. 나만의 우주, 서재를 가져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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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방에 있는 책장은 나와 함께 나이 먹고 있습니다.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을수록, 한 권 한 권 책을 읽을수록 그렇게 나이 먹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제 책장은 그와 더불어 진화하고 있습니다.
나 다음에  아이들, 그리고 그 이후까지.. 그렇게 끊임없이 진화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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