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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독서천재 정태유 Nov 02. 2019

먹고 싶은 책부터 먼저 먹는다.

책은 진짜 양식이다

  '자신이 읽고 싶은 책을 읽어야 한다. 일거리처럼 읽은 책은 대부분 몸에 새겨지지 않기 때문이다.'

  - 새뮤얼 존슨


  배달음식을 주문해서 먹을 때가 있다. 중국 음식을 주문할 때면 항상 고민하는 것은 '자장면을 먹을까, 짬뽕을 먹을까?' 치킨을 주문할 때면 '프라이드치킨을 먹을까, 양념치킨을 먹을까?' 어느 한쪽을 선택하고 나면 왠지 다른 한쪽이 더 맛있을 것만 같은 느낌. 누구나 한 번쯤은, 아니 매일 겪는 느낌이기도 하다. 그럴 경우를 대비해서 음식점에서도 만들어낸 음식이 바로, '짬짜면'이라든가 '양념 반 프라이드 반, 반반 치킨'이 아니던가.

  우리가 책을 고를 때도 똑같다. 쉽게 생각해서 그저 책 한 권, 고를 뿐인데 막상 한 권을 고른다는 게 이토록 어려울 줄이야.


   이런 경우를 가리켜 햄릿 증후군(Hamlet Syndrome)이라고 한다.
   햄릿 증후군 여러 선택의 갈림길에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뒤로 미루거나 타인에게 결정을 맡겨버리는 소비자의 선택 장애 상황     


  간만에 책을 읽고 싶어서 서점에 갔는데 이것저것 고르다가도 막상 사려고 하면, 살 게 없고, 그렇다고 해서 그냥 가기도 뭣하고. 그럴 때 보통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책을 고르게 되는 것이다. 앞에서 음식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책을 음식과 같다고 생각해 보자.

  '오늘 한 끼 먹을 책을 골라야 한다면 어떤 책을 고를까? 어떤 책을 고르면 맛있을까?'

  음식이라고 한다면 어떨 때는 공식적인 행사에 참석해서 먹어야 하는 코스 요리도 있을 것이고, 또 어떨 때는 친구들과 마음 편하게 시장에서 사 먹는 순대와 떡볶이도 있을 것이다. 때로는 맛집을 찾아가서 사 먹게 되는 고기 요리도 있을 것이고, 또 때로는 그냥 만사가 귀찮고 시간이 없을 때 먹는 컵라면도 있다. 책을 이처럼 '음식이라고 생각해 보자. 만사가 귀찮을 때는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읽기만 하면 되는 만화라든가 탐정소설, 연애소설, 판타지 소설이나 무협지를 읽으면 된다. 마음이 울적하거나 외로운 기분, 안 좋은 기분이 들 때면 여행 서적이라든가 위로가 되는 시집(詩集) 한 권이 좋다. 자신감, 열정 등이 필요할 때면 자기 계발 서적이나 위인전 등을 읽으면 된다. 이처럼 책이라고 하는 것은 '꼭 이것을 읽어야 해. 그건 읽으면 안 돼.' 이렇게 한계를 그을 필요가 전혀 없다. 그것은 단지 선택 순위의 차이일 뿐이다. 오늘 점심에 코스 요리를 먹었다고 해서 저녁에 다시 코스 요리를 먹어야 하는 것이 아니듯, 책도 그저 그때그때 본인 생각에 따라 상황을 고려하여 선택만 하면 된다. 책을 고른다는 것은, 처음부터 너무 어렵게 생각하기 때문에 점점 더 어렵게 느껴지는 것뿐이다.


  왜 책을 읽는가에서 샤를 단지는 책을 고르는 방법에 대해서 이렇게 표현했다.

  책을 읽는 것은 새 신발을 고르는 일과 같다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신어봐야 가장 잘 어울리는 신발을 고를 수 있다이 책은 어려워서 내가 소화하기에 힘들 거야이런 말은 적절하지 않다세상에는 독자의 수준을 따라오지 못하는 책들도 아주 많다.’




  멋진 곳에서 근사한 한 끼 저녁 식사를 한다고 하면 적당한 값은 얼마일까? 그러면 얼마의 비용을 감당할 수 있을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기대하는 것만큼 충분한 비용을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책값은 어떨까? 내 삶의 커다란 변화를 가져올 만한 책이라고 한다면 그 책값으로는 얼마가 적당한 것일까?

  사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한 권의 책값은 아주 비싼 편이 아니다. 비싸다기보다 매우 저렴한 편에 속한다. 그런 책 한 권을 막상 사서 읽었는데 본인이 생각했던 것과 다르다고 하면 물론 아까운 생각이 들겠지만 다른 물건(예를 들어 옷이라든가 가전제품)에 비해서 크게 후회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읽어보다가 정 아니면 잠시 덮어두고 며칠 혹은 몇 달 뒤에 읽어봐도 된다. 그게 책이 가진 또 다른 장점이기도 하다.

  나의 경우 읽는 책에 대한 성공확률을 말하자면 대략 70% 정도라고 할 수 있겠다. 하루 한 권을 목표로 읽어오고 있으니 1년이면 365권, 2년이면 730권이겠지만, 그렇게 따지면 실제로 100%의 확률이고, 대략 30% 정도의 책은 제대로 읽히지도 못한 채 책장에 꽂히고 만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들이 그대로 먼지 속에 묻힌 채로 잊혀버린다든가, 또는 그 즉시 헌책으로 팔린다든가 누군가에게 주어지거나 버려지는 것은 절대 아니다. 나는 이 책들에게 다음이라는 기회를 주기 위해서 책장에서 나를 기다리게 해 놓은 것일 뿐이다. 이것은 마치 '궁합'과도 같은 것이어서 그 순간에 그 책이 잘 읽히지 않았다고 한다면, 나는 ‘그 책을 처음 읽었을 때의 나'와 '당시의 분위기', 그리고 '책'. 이 세 박자의 주파수가 안 맞았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다시 책장에 꽂아두었을 뿐이다. 그리고 때가 되어(그때는 책에 따라서 다르다.) 꺼내어서 읽어보면 또 다른 느낌, 지난번과는 전혀 다른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는 마치 김치를 담그듯이 책도 묵혀서 읽는 경우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나는 아직도 '절대로 세상에 나쁜 책은 없다'라고 생각한다. 재판도 삼 세 번을 해야 공정한 것이고, 아이들 놀이에서의 가위바위보도 삼 세 번은 해야 한다고 하지 않은가 말이다. 책을 읽다가 도저히 못 읽을 것 같을 때는 일단 책장에 다시 꽂아둔다. 나는 그럴 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내 컨디션이 안 좋은가?'

  '바로 직전에 읽은 책과 너무도 비슷한 느낌인가?'

  '지금 읽고 생각하고자 생각하는 방향과 맞지 않는가?'


  책이 나쁜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내 느낌, 기분과 맞지 않을 수도 있다. 때로는 막 사서 읽은 새 책에서 느껴지는 감동이 최고라고 느껴지기도 하지만 어떨 때는 오히려 사놓고 까맣게 잊어버린 것 같은 책을, 다시 읽게 되었을 때의 감동이 훨씬 더 크기도 하다. 책이란 그런 것이다.     


  운명의 책은 자기 자신밖에 찾을 수 없다운명의 책을 만나는 탐험가의 여행그것이 독서의 묘미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서점에 있다에서 센다 다쿠야가 한 말이다. 책은 인생에 있어서 결코 단 한 번의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 먹을 음식을 고르듯 책도 그렇게 골라야 한다. 아침과 점심, 저녁의 메뉴가 때로는 똑같기도 하고 때로는 다르듯. 그렇게 책도 골라서 먹으면 된다.

  시인 정호승은 이렇게 말했다.

  "인간에게 책이 없으면 돈이 없는 것과 같다돈이 없으면 배가 고파도 밥을 먹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책이 없으면 마음의 배가 고파도 그 배고픔을 달랠 길이 없다나는 육체의 배고픔을 견디지 못하지만마음의 배고픔은 더더욱 견딜 수가 없다무엇이든지 읽지 않고는 단 하루도 살지 못한다때가 되면 밥을 먹어야 하는 것이 인간인 것처럼 때가 되면 책을 읽어야 하는 것이 또한 인간이다."

  그렇다. 책은 진짜 밥이다. 양식이다. '책은 마음의 양식(糧食)이다'라는 말처럼 책은 실제로 우리의 삶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음식과도 같다. 양식, 한식, 중식, 일식. 음식에도 다양한 종류가 있듯이 책도 마찬가지다. 때에 따라서는 읽고 싶은 책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그러니 책도 편식하지 않고 골고루 먹어야 하지 않을까? 때에 따라서 가장 먹고 싶은 음식이 다르듯, 책도 똑같다. 때에 따라서 가장 먹고 싶은 책을 읽어야 한다. 가장 읽고 싶을 때 읽는 책이, 가장 맛있는 책이 될 테니 말이다.     


  '내일 아침에는 어떤 책을 먹을까?'     

  일주일의 식단표를 계획하듯이 읽고 싶은 책을 상상해 보면서 행복한 고민을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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