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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독서천재 정태유 Oct 27. 2019

내가 바라는 삶을 살 것이다.

책으로 변한 내 인생

'책 속에서 우연히 발견한 나에게 의미 있는 한 대목, 어쩌면 단 한 구절만으로도, 책은 나의 분신이 된다.'
  - 윌리엄 서머셋 모음


  이 글의 제목 한 줄에 대한 느낌은 읽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자신이 무슨 신(神)이라도 된 줄 착각하는 거 아냐?'  
  '과대망상증이 있는 사람인가 보군!'  
  반면에 다른 한 편으로는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인지 궁금한데?'  
  '혹시 뭔가 내가 모르는 대단한 능력을 가진 사람일지도 몰라. 이야기라도 한 번 들어볼까?'  
   
  나의 경우를 되돌아보자면 본격적으로 생존 독서(취미 독서와는 반대말이라고 강조하고 싶다.)를 시작한 이래로 지금의 모습에 이르기까지 책을 읽음으로써 매일 조금씩이나마 긍정적으로 변해가고 있는 모습에 나 자신도 놀라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그만큼 '책을 읽는다는 것'은 내가 생각해도 놀랄 정도로 생각을 긍정적으로 변화하게끔 이끌어주는 것이다.  
  마흔을 앞둔 어느 날 저녁 목욕을 하기 위해 욕실 거울 앞에 섰다. 불뚝 튀어나온 뱃살, 어느덧 희끗해지기 시작하는 옆머리. 거리를 걷다 보면 흔히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아저씨'의 그 모습이었다. 꿈과 희망이란 단어는 어릴 적 동화와 만화 속에서나 들었던 단어였던가. 언제부터 내 모습이 이렇게 되었나? 갑자기 '변화'에 대한 욕구와 욕망이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전율처럼 흘러내렸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 떠오른 이미지가 바로 '책'이었다. '왜인지, 무엇 때문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오로지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로부터 약 6년이 흐른 지금 내 방 안에는 3면이 책장이고, 그 책장 속에는 책들이 그득히 자리 잡고 앉아서 나를 바라보고 있다. 이 책들은 얼핏 세어 봐도 약  5천 권에 이른다. (따로 박스에 넣어 둔 책은 또 몇 권인지 모르겠다.)  단순히 책의 숫자만 보면 "와, 대단한데? 언제 그 책을 다 읽었을까?"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반면에 "그 정도 책은 누구나 사서 읽는 거 아닌가?"라고 코웃음 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책을 몇 권 소유하고 있느냐?, 그중에 몇 권이나 제대로 읽었느냐?'보다는 '어떤 책을 읽었고 그 책을 통해서 무엇을 깨달았느냐?'가 훨씬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  나는 솔직히 내 방 가득히 3면을 둘러싸고 꽂혀 있는 책을 보고 있자면 마냥 행복하다. 그냥 보고만 있어도 좋다. 새 책은 새 책 나름대로 그 향기를 품고 있어서 좋고, 헌 책은 헌 책 나름으로서의 오래된 책 냄새를 품고 있어서 좋다. 말 그대로 밥 안 먹어도 배부른 기분이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청계천 헌책방을 찾아다니면서 내가 읽고 싶은 책을 골라 사는 것을 매우 좋아했다. 내가 고른 책이 분명히 재미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품고 단돈 몇 백 원, 몇 천 원으로 산 책을 가슴에 품고 집에 돌아올 때면 어서 그 책을 읽고 싶은 충동에 어쩔 줄 몰라했었다.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책은 새 책이든 헌 책이든 그 특유의 냄새를 품고 있다. 나는 특히나 책 냄새를 좋아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책장을 넘길 때 느껴지는 그 사그락 거리는 소리. 나는 그 소리를 이유 없이 좋아했었고, 나이가 한참 된 지금도 그 소리가 좋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내 눈 앞에 펼쳐지는 장면들, 내 눈 앞에서 글자들이 뛰어다니면서 춤을 추는 모습을 보면서 행복해했던 기억이 난다. 책을 볼 때면 그 책에 담긴 장면들을 상상하며 나만의 세상에 빠져들곤 했었다. 그 순간만큼은 세상 누구도 결코 부럽지 않았다. 그 기분은 이미 성인이 된 지 오래된 지금도 마찬가지다.



  어느 날 책을 읽던 도중에 다음과 같은 문구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 순간 이 문구가 내 삶을 바꿔줄 전환점이 될 것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나 자신》


  내가 젊고 자유로워서 상상력에 한계가 없었을 때

  나는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꿈을 가졌었다.  

  좀 더 나이가 들고 지혜를 얻었을 때

  나는 세상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시야를 약간 좁혀

  내가 살고 있는 나라를 변화시키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그것 역시 불가능한 일이었다.   


  황혼의 나이가 되었을 때  

  나는 마지막 시도로

  나와 가장 가까운 내 가족을 변화시키겠다고 마음을 정했다.  

  그러나 아아, 아무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자리에 누운 나는 문득 깨닫는다.  

  만약 내가 내 자신을 먼저 변화시켰더라면,  

  그것을 보고 내 가족이 변화되었을 텐데.  

  또한 그것에 용기를 얻어  

  내 나라를 더 좋은 곳으로 바꿀 수 있었을 텐데.  

  그리고 누가 아는가.  

  세상까지도 변화되었을지!   


  - 웨스트민스터 대성당 지하묘지에 있는 한 영국 성공회 주교의 묘비에 적혀 있는 글  

  나는 생각했다.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부자도 아닌 내가, 평범하기 그지없는 내가. 약육강식의 시대이자 무한경쟁의 정글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아니 살아남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앞서 나가야 한다. 최고가 되어야 한다. 나 스스로 생각하기에 떳떳하고 나 스스로 생각하기에 훌륭한,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뭔가 변화가 필요하다. 단순히 '누군가 내 인생의 멘토가 되어주었으면'하고 연약한 생각을 할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 변화하는 계기가 필요한 것이다. 마치 내가 방금 읽었던 이 글처럼 말이다. 


  '무엇보다 나 자신이 먼저 변해야 한다.'   


  이 글이 내 머리와 함께 내 가슴에 들어왔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그 변화의 시작이자 끝은 무엇으로 할 것인가? 나는 책을 택했다. 인류 역사와 함께 앞으로도 영겁의 시간을 지속할 수 있는 도구. 책 보다 더한 것이 있을까? 책은 내가 사귄 최초의 친구였으며, 지금도 평생을 함께 하는 최고의 친구인 것이다. 가족은 내가 선택한 관계가 아니라 나에게 주어진 인간관계다. 하지만 책은 내가 선택한 관계다. 그리고 책은 내가 선택한 것이지만 반대로 보자면 책이 나를 선택한 것이다. 책이란 그런 것이다. 내게는 그랬다.  그러자 마음속에 책에 대한 한 가지 결심이 생겨났다. 지금부터는 책을 진심을 다해 제대로 읽어야 한다. 그냥 예전처럼 단순히 읽는 것이 아니라 책을 죽을 만큼 읽고자 생각했다. 책을 깊이를 알 수 없을 만큼 읽고, 넓이를 알 수 없을 만큼 읽고자 결심했다. 이 세상 책은 모두 다 읽어버리겠다는 마음을 품었다. 그것이 내가 살 길이고 또 살기 위한 최고의 방법인 것이다. 책이란 것은 내 한 손에 잡힐 정도로 작은 것이지만 그 책장을 넘기는 순간 책은 이 세상만큼 커다랗게 내게 다가오는 것이었다.  


  그대가 누구이든,  

  어느 날 저녁

  집 밖으로,  그 익숙한 곳을 떠나.  

  한 걸음만 나서면, 바로 옆에 광대무변한 공간'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말이다. 나에게 있어 책이란 이런 것이었다. 그때의 내 생각은 일시적인 것, 순간적인 것이 아니었다. 언제라고 딱 꼬집어서 말할 순 없지만 내가 책에 들어간 듯하고, 책이 나에게 들어온 것과 같은 순간이 있었다. 그 순간 이후부터 이전의 모든 마음속의 혼돈이 일제히 정리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블랙홀을 빠져나온 후 새로운 우주가 펼쳐진 마음의 상태라고나 할까. 그리고 그때의 내 생각, 느낌, 마음가짐은 지금 이 순간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사람은 순간마다 변하는 것이지만 '책과 함께 내 인생은 변화할 것이다'라는 이 생각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아니 변해서는 안 되고, 절대로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 나는 책과 함께 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내가 바라는 삶을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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