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protruding stone gets hit first
자기 의견만 너무 강하게 고집하면, 결국 싫어하는 사람이 생기거나 전체적인 대인관계가 원만하지 않다는 것을 이르는 속담입니다. 예로부터 많은 어른들은 주변에 적을 만들지 말고 둥글둥글하게 사람들과 잘 어울려 지내라고 말씀하시곤 하셨죠. 일종의 처세술인 셈입니다. 전통적으로 집단에서의 조화를 강조하는 한국 문화에서 '모난 돌'은 분위기를 해치는 방해 요소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어쩌면 개인의 의견뿐 아니라 창의성이나 다양성까지 무시되곤 하는 사실상 현대에서는 구태의 처세이기도 합니다.
스스로도 학교생활이나 사회생활을 돌이켜보면 이와 크게 다르지 않게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좋게 얘기하면 대세를 따르는 삶을 살아왔죠. 마음이 좀 불편하고 힘들어도 누구나 다 그렇게 하니, 크게 불편하지 않으면 조직이 원하는 대로 남들 하는 대로 살았습니다. 집단의 요구와 시선을 최대한 받아들이고 가이드라인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했습니다. 소위 눈밖에 나지 않으려고 그렇게 살았습니다.
많은 회사에서 회계연도가 마감할 즈음이면 직원 만족도 조사를 실시합니다. 회사의 비전이나 정책, 동료나 매니저, 부서장 등에 대한 직원들의 피드백으로, 직원이 조직을 대상으로 하는 연례 평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해를 보내면서 매니저들과 크고 작은 일을 겪습니다. 그러나 이해도 안 되고 화가 나는 상황이 많이 있더라도 막상 이 시즌이 오면 "그래, 또 뭔 큰 잘못을 했다고"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고, "혹시라도 내가 올린 걸 회사에서 알기라도 한다면?" 하는 걱정에 대부분 그냥 좋은 점수를 기록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나 어느 회사든 꼭 주변에는 멋지게 본인 소신껏 평가를 하시는 분들이 계셨습니다. 외국계 회사일수록 그런 분들이 많았고, 그럴 때마다 회사의 매니저들은 호들갑을 떨며 직원들을 불러 모아 개선을 논의하곤 했었죠. 사실 이로 인해 불이익을 받은 사람 역시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이런 솔직한 피드백으로 많은 불편한 부분이 개선된 것도 사실입니다.
수십년 전이니 아주 오래전 일입니다. 꿈에도 바라마지 않던 첫 직장의 최종 면접 당시였습니다.
"윤 군은 언제 입사가 가능한가? 12월 초와 2월 초가 있네"
모든 젊은이들이 그러하듯, 따스하고 행복한 연말을,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즐기고 싶었습니다. 지금의 취준생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그동안 쌓였던 취업 스트레스도 풀고 싶었고, 또 주변 사람들로부터도 더 오랫동안 축하받고 싶었습니다. 친구들과 그리고 가족과 가까운 곳으로 여행이라도 다녀오고 싶었죠.
그러나 저에겐 면접관의 이 질문이 가능한 빨리 들어와서 일을 하라는 것으로 들렸습니다. 제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렇게 저는 12월에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2월 입사를 원하는 것이 회사가 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스스로 생각했었거든요. 사실 당시 어떻게든 합격하고 싶었기에 회사의 의도를 거스를 마음도 전혀 없었죠. 2월에 입사한 다른 동기들이 여행이나 MT 등으로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는 얘기를 나중에 전해 듣고 매우 부러워했던 기억이 납니다.
고등학교를 다니는 큰 아이는 하루는 학교에서 속상한 일이 있었다며 엄마, 아빠에게 이야기를 털어놓았습니다. 수학 시험을 보았는데 공교롭게도 전날 밤에 풀었던 작년 모의고사 시험 문제가 순서도 하나도 안 바뀌고 그대로 시험문제로 나왔다는 겁니다. 그런데 다른 아이들은 전혀 모르고 있는 눈치라고 합니다. 아이 말로는 뭔가 선생님이 착오가 있었던 게 틀림없는 것 같다고 하더군요. 이걸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을 했습니다.
시험이 끝나 같은 반 아이들은 모두 홀가분해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본인이 이 사실을 말하면 분명 재시험을 봐야 할 것이고, 그러면 다른 아이들에게 피해를 주게 됩니다. 또한 이런 사실을 학교에 알릴 경우 선생님의 실수가 드러나 본의 아니게 선생님께 실례가 될 수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고민을 털어놨습니다..
솔직히 저는 시험이야 잘 봤으니 그냥 넘어가는 게 어떻겠냐고 권유했습니다. 굳이 내 아이를 다른 아이들로부터 미움을 받거나, 선생님으로부터 원망을 받게 하는게 싫었습니다. 그리고 작년 시험지까지 찾아가며 공부했던 아이의 노력이 그렇지 않은 아이들보다 더 평가받아야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그러나 본인의 가치관을 가지고 무엇이 옳은지 고민하는 아이에게 그렇게 계속 권하기에는 부모로서도 면이 서지는 않았습니다.
결국 아이는 사실을 말하기로 결정했고, 문제의 수학 시험은 재시험을 보기로 결정되었습니다. 이후 자세한 얘기는 전해 듣지 못했지만, 다행히 선생님에게도 특별한 불이익이 주어지는 것은 없었습니다. 학급 다른 아이들도 특별한 불만 없이 상황을 인정하고 받아들였다고 했습니다. 고민을 했지만 결국 자기 소신대로 생각하고 가질 수 있던 이익까지 포기하면서 옳음을 행동으로 옮긴 큰아이가 대견했습니다.
모난 돌이 정맞는다. 그런데 무엇이 모난 것인지, 그 판단은 누가 하는 것일까요? 왜 모는 '다름'이 아닌 '틀림'이 되어버렸을까요? 사회의 통념이나 집단의 기준, 타인의 시선이 무엇보다 중요한 대한민국에서는 집단의 뜻과 다른 개인의 의견이 쉽게 모난 것으로 치부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주로 조직에 반하는 의견을 내려하지 않았죠. 저 역시 자존감이나 개인의 신념이 약했기에 그렇게 그들처럼 살아온 것 같습니다.
세상은 변해하고 있습니다. 이제 '모난 돌'이 되는 것이 항상 부정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건설적인 비판과 다양한 의견 제시는 구태한 집단을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될 수 있습니다.
"The protruding stone gets hammered" is a Korean proverb warning against standing out or voicing dissenting opinions. In Korea's collectivist culture, being the "protruding stone" means disrupting group harmony—a conventional wisdom that may stifle creativity and diversity. This essay explores the author's journey from silent conformity—avoiding honest feedback at work, choosing an inconvenient job start date to please interviewers—to witnessing his daughter's courage. When she discovered her teacher accidentally reused a test she had studied, she reported it despite potential backlash from classmates and embarrassment to the teacher, choosing integrity over personal advantage. Through these experiences, the author questions whether being "protruding" must mean "wrong" rather than simply "differ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