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n without eating rice, I'm full
어렸을 적 할머니는 저만 보면 늘상 이렇게 말씀 하시곤 하셨습니다.
"아이구 내 강아지, 어찌 이렇게 잘생겼당가? 우리 손주만 보면 할미는 밥 하나 안먹어도 배가 부르네"
그시절에는 대부분 그러하셨겠지만, 유독 할머니는 아들이나 손자에 대한 사랑이 남다르셨습니다. 슬하에 아들을 여섯이나 둔 할머니는 명절이 아니어도 아들들을 집으로 자주 불러 밥을 해 먹이곤 하셨습니다. 저에게는 큰아버지, 작은아버지들이셨죠. 그 아들들 역시 하나같이 효자여서 어머니가 부르시면 모두가 만사 제쳐놓고 달려갔을 정도입니다. 아들들 뿐 아니라 손자들에게까지도 그 사랑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저역시 할머니만 생각하면 사랑과 애틋함이 가장 먼저 떠오르곤 합니다.
그러나 현실적인 부분에서는 미묘한 신경전도 있었습니다. 아들들에 대한 애틋한 마음 탓에 그들의 아내이고 엄마였던 며느리들한테는 가끔 원망을 들으신 것도 사실이었죠. 우리 착한 할머니한테 왜 저러시나, 어린 마음에 안타까워 하기도 했지만 시간이 흘러 가정을 이루고 보니 지금은 그녀들의 마음이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그래도 눈에 띄는 큰 갈등 없이 일생을 할머니께 정말 잘 하셨고, 이제는 또 누군가의 할머니가 되어가는 그때의 며느리들은, 당신이 백수를 누리시고 돌아가실 때까지 정성스럽게 보살피기도 하셨습니다.
이렇듯 항상 아낌없는 사랑을 주시던 할머니 댁에 가는 길은 항상 즐거웠습니다.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던 할머니만의 사랑스러운 루틴 역시 잊혀지지 않습니다.
집에 들어서게 되면 할머니는 먼저 애꿏은 할아버지에게 손자 용돈을 강요하십니다.
"아니 뭣하고 있소! 손자 왔는데 돈좀 안주고!" 가만히 않으셔서 신문을 보고 계시던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버럭에 몸을 일으키시고는 찬장을 뒤져 꼬깃한 지폐몇장을 마지못해 꺼내 놓습니다.
그리고는 얼른 앉으라며 금방 밥을 해준다고 주방으로 가셔서 들썩들썩 음식을 준비하십니다.
그릇에 냉장고에 있는 반찬 모두를 꺼내 투박하게 담으시고는, 고봉밥을 올려 상을 내어오십니다.
혼자 먹기 민망해 같이 먹자고 하면, "우리 손주 어서 먹어, 할미는 손주 먹는것만 봐도 좋응게, 천천히 많이 많이 먹어"
배불리 식사를 마치고 나면 할머니는 굽은 몸을 일으켜 집 밖으로 나가십니다. "할미가 닭한마리 튀겨 올랑게 쪼까만 기다려라잉"
이미 배가 터질듯 힘들었지만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갓 튀긴 닭다리를 건네시는 할머니의 손길을 마다할 수는 없었습니다.
시간이 제법 흘러 집에 갈 낌새를 보일라 치면, 과일 먹고 가라며, 사과며 귤이며, 가끔은 유통기한이 지나버린 요거트도 내 주시곤 하셨죠. 할머니의 그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저는 언제나 야무지게 다 먹었습니다.
그러다 드디어 정말 자리에서 일어날 시간이 되면, 우리 손주 이제 가면 또 언제 보냐며, 할미 죽고나면 보냐며 아쉬움에 눈물을 훔치시곤 하셨죠.
어린 시절부터 족히 몇십년 동안은 늘 한결같았습니다. 혼자 찾아 뵈었을 때도, 결혼을 해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인사를 드려도, 할아버지가 먼저 세상을 떠나신 후 혼자 계실 때도, 할머니의 허리는 점점 굽어갔지만 마음만은 항상 한결 같으셨습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아내를 만나 결혼을 하게되었습니다. 결혼을 하자마자 첫째가 들어섰고 시간이 좀 더 흘러 둘째까지 세상에 나오게 되었죠. 하지만 공교롭게도 두녀석 모두 딸들이었습니다. 할머니는 별다른 내색은 없으셨지만 저는 당신이 조금 실망하셨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수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서운한 감정아 드는것은 아니었지만 아내가 속상해 할까 걱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할머니의 기분을 달래 드리려 애쓰는 아내의 모습이 너무 예쁘고 고마웠습니다.
"집안에 아들하나는 있어야 든든하다. 딸만 있으면 못써어~ 아들은 하나 있어야 항게, 인자 셋째는 아들로 꼭 낳아라잉"
"아니 어머니는 뭔 그런 말을 했싸요~ 요즘 셋 낳는 집이 어딨다고! 아야, 인자 그만 낳아라잉. 우리 아들 고생해서 안된다잉!"
아들 하나 더 낳으라고 당연한 듯 말씀을 하시는 할머니에게, 옆에 계시던 어머니가 깜짝 놀라 말리십니다. 당신 자식 힘들까봐 절대 안된다면서요. 그 와중에 눈치 빠른 아내는 시할머니 달래 드린다고 생각에도 없던 갑작스런 약속을 합니다.
"으응~ 할머님, 내가 하나 더 낳으께~ 세째는 꼭 아들로 낳아 올거니까요. 걱정하지 마세요"
"아따 우리 손부 이쁘다. 이 할미 말도 잘 듣고, 아들 낳아 온다고 하네. 고마운 사람이네, 고마운 사람이여"
할머니의 바램이었을까요, 아니면 아내의 신기한 재주였을까요, 셋째 계획이 전혀 없었던 우리 집에 몇년 뒤 사랑스런 막내가 찾아 왔습니다. 바로 그렇게 기다리던 아들이었죠. 갓난 아이를 할머니, 할아버지께 안겨 드릴때의 모습이 선합니다.
할머니는 이 애기가 우리 손주 아들이냐고 계속 해서 말씀하시며 품안에 안긴 막내에게 한참 동안 눈을 떼지 못하셨습니다. 네 애비가 살았으면 참으로 좋아했을 텐데라는 말씀도 빼놓지 않으셨죠.
어른들의 기대를 한껏 받고 세상에 나왔던 그때 그 녀석은 어느덧 수염도 거뭇거뭇해지고 몸도 울룩불룩해지며 제법 사내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누나들도 이제 다 큰 성인이 되었죠. 큰애는 올해 대학생이 되었고 둘째도 어느새 내년 이면 대학시험을 볼 나이가 되었습니다.
훌쩍 커버린 아이들은 요즘은 주로 밖에서 밥을 먹고 다닙니다. 그러나 가끔 어쩌다 함께 모여 식사라도 할때면, 재잘재잘, 오물오물, 녀석들이 밥먹는 모습에, 그 시절 할머니가 그러하셨듯 저와 아내 역시 점점 배가 불러오고 흐뭇해지는 것은 어찌 할수가 없네요.
"Even without eating rice, I'm full" is a Korean expression of unconditional love - typically used by grandparents who say merely seeing their grandchildren satisfies them more than any meal. This essay traces how this profound sentiment travels across generations.
Through vivid memories of his grandmother's overwhelming hospitality - forcing his grandfather to give pocket money, serving heaping bowls of rice, buying fried chicken despite his protests - the writer captures the essence of Korean grandparental devotion.
The narrative comes full circle when, decades later, he finds himself experiencing the same inexplicable fullness while watching his own three children eat, finally understanding the depth of his grandmother's word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