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료)
한국의 속담은 아닙니다. 하지만 영화에서든 책에서든 많은 이들이 한 번쯤은 들어본 말일 것입니다. 찾아보니 작가 존 바스가 한 말이라고 하네요.
"내 시선으로 보는 내 인생은 다름 아닌 내가 주인공이야"
대학 입학을 하면 많은 신입생들이 동아리 활동도 함께 시작합니다. 저 역시 호기심에 이런저런 동아리를 살펴봤습니다. 하지만 고등학교 때 합창단 생활을 했던 터라 다른 동아리는 눈에 들어오지 않더군요. 그래서 대학내 합창 동아리에 곧바로 가입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매주 연습에 참여하며 제 인생의 큰 페이지인 합창반 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고등학교 때와는 달리, 대학 합창 동아리는 다양한 전공의 아마추어들이 함께 모여서 좋아하는 노래를 같이 만들어 나갑니다. 그렇게 여러 곡들을 완성해 나갔고, 전문적인 부분에서는 지휘나 성악을 전공하는 학생들의 도움을 받아 연주곡들을 하나하나 만들어 나가곤 했었죠. 그렇게 함께 다양한 음악들을 준비하며 12월 즈음에는 관객들을 모시고 정기 연주회도 가졌습니다.
어떨 때는 학과 생활보다 더 많은 시간과 열정을 쏟기도 했습니다. 당시에는 힘들기도 했지만 지금 와 생각해보면 솔직히 힘든 건 거의 생각나지 않고 즐거웠던 기억만 남아있는 그런 동아리 생활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제게 예상치 못한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합창을 오래 해왔다고는 하지만 제 파트는 상대적으로 음역이 낮은 바리톤 파트입니다. 그래서 솔리스트를 맡는 경우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솔리스트란 합창이나 중창 중에 혼자 특정 부분을 노래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저는 주로 낮은 화음을 담당하며 베이스와 함께 저역대의 화음을 받쳐주는 역할들을 하곤 했습니다.
대부분은 테너들이 솔리스트를 많이 합니다. 그런데 당시 지휘자 형이 예상치 못하게 제게 솔리스트 제안을 했습니다. 친분이 있던 관계도 아니었고, 다 같이 모인 연습실에서 갑자기 그런 얘기를 하니 매우 당황스러웠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기분은 매우 좋았죠.
다른 사람들이 "아니 쟤가 왜?"라고 생각하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성악 전공 지휘자의 생각이니 어련히 알아서 잘 생각했겠거니 하며 흥분된 마음을 애써 진정시켰습니다. 그 곡은 우리에게 번안곡 '아 목동아'로 잘 알려진 'Danny Boy'였습니다. 연주회의 주요 메인곡은 아니었지만 인생 첫 솔리스트를 맡게 된 저에게는 가장 소중한 곡이었습니다.
수백 번 부르고 또 부르기를 반복했습니다. 곡이 OST로 삽입됐다는 멜 깁슨 주연의 브레이브 하트도 그때 봤습니다. 또 지휘자 형에게 이런저런 조언도 받으면서 첫 솔리스트 무대를 차근차근 준비해 나갔습니다.
연주회 당일, 사람들이 속속들이 도착하고 타이틀 곡부터 순서대로 공연을 했습니다. 인터미션이 끝나고 한두 곡 더 진행한 후 드디어 제 차례가 다가왔습니다. 저는 무대 앞으로 걸어나와 솔리스트를 위해 세팅된 스탠딩 마이크 앞에 섰습니다. 이윽고 피아노 반주가 시작되었고, 제 솔로 파트로 노래를 시작했습니다.
객석은 조명에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끝마쳤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오직 내 목소리만이 고요한 연주회장에 퍼져 나갔습니다.
2절이 끝났을 때, 누군가 손 휘파람을 불며 제 이름과 함께 브라보를 외쳤습니다. 아마도 함께 온 친구들의 예의상의 환호였겠지만, 그때 느껴졌던 짜릿한 전율은 지금까지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내 노래만 그 공간을 채울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그 시간을 기억하게 하는 유일한 멜로디였습니다. 그 순간에 허락된 유일한 주인공이었던 셈입니다.
지금도 기분 좋은 일이 있거나 흥분되는 일이 있으면 저도 모르게 종종 Danny Boy를 흥얼거립니다. 그 당시 한글로 옮겨 적었던 영어 가사를 지금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몇 년 후 감사하게도 다른 연주회에서 또 한 번 솔로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애니메이션 인어공주 OST 중 한 곡인 Kiss the Girl이라는 곡이었습니다. 그때도 역시 메인곡이 아닌 앵콜곡이었습니다. 하지만 감사한 마음으로 열심히 준비했고 역시 재미나게 공연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로 저는 솔리스트와는 인연이 없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합창단 사람들을 만나면 과거 연주회 얘기가 종종 술안주로 오르곤 합니다. 재미난 사실은 많은 이들이 그 노래들을 그때 했었는지 많이 헷갈려 한다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함께 연주회를 준비했던 사람들조차 제가 솔로를 했는지, 그 노래가 그때 연주가 되었는지 정확하게 기억을 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저는 생생히 그날을 기억합니다. 노래할 때 입었던 하얀 셔츠와 주름진 바지, 그리고 무스를 잔뜩 발라 뒤로 넘긴 헤어스타일까지도 정확하게 기억합니다. 바로 내가 주인공인 순간이었으니까요.
내 인생의 최고로 짜릿했던 순간은 언제였을까 떠올려 봅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큰 회사에 취업을 했을 때도, 대형 계약을 성사하고 큰 돈을 벌었을 때도 아닙니다. 비록 다른 사람들 기억 속에는 정확히 남아 있지는 않지만, 수십 년 전 바로 그 몇 분의 순간이 제겐 가장 뿌듯했던 순간으로 떠오릅니다. 저에게 만큼은 인생에서 가장 빛났던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 모두에겐 자기만의 특별한 순간들이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대단해 보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또 다른 이들의 눈에는 띄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나만 느낄 수 있는 그런 순간들이야말로 오랜 시간이 흘러도 잊혀지지 않는 빛나고 소중한 경험입니다.
인생의 가치는 타인의 인정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짧은 순간이라도 스스로가 느낀 감동과 짜릿함이 있다면, 단 몇 분만으로도 그 시간의 주인공으로 기억될 수 있습니다. 다름아닌 바로 내 인생이니까요.
This quote by author John Barth reminds us that our perspective defines our story. The essay recounts a university choir experience where the author, typically a baritone supporting voice, unexpectedly became a soloist performing "Danny Boy."
Though others barely remember this moment decades later, it remains the author's most cherished memory—not corporate success or major deals, but those few minutes on stage. The piece explores how truly meaningful moments aren't measured by external recognition but by the personal fulfillment they bring to our own narrati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