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뇌리에 박히다

by 윤본
스크린샷 2025-11-10 오전 10.49.41.png driven into the brain


사람들은 일생 동안 많은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 수많은 경험과 기억 속에서, 유독 잊히지 않고 마음속 깊이 남아있는 장면들이 누구에게나 있죠. 이루어지지 못한 첫사랑의 아픔이 될 수도 있고, 다시 오지 않을 행복했던 순간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또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끔찍한 순간일 수도 있습니다. 이럴때 사람들은 종종 뇌리에 박혔다라고 말하곤 합니다. 저 역시 수십 년이 지나도 잊히지 않고 생생히 떠오르는 그런 장면들이 있습니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혹은 선명한 사진처럼, 제 안에 깊게 각인되어 절대 잊을 수 없는 그런 기억들 말입니다.


첫 번째 기억은 초등학교 6학년 때 체력장—당시 교육부에서 학생들의 기초 체력 향상을 위해 실시했던 체력 검정—때의 일입니다. 공던지기, 오래달리기, 멀리뛰기 등의 종목 기록을 측정했습니다. 별로 운동을 잘하지 못했던 저는 이런 체력장이 그리 반갑지가 않았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싫어했던 종목이 바로 오래달리기였습니다. 4km를 달려야 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어디 한군데 부러지지 않는 한 모든 학생들이 어쩔수 없이 해야만 하는 종목이었습니다.


바로 그 종목에서 한 친구의 모습이 매우 선명하게 남아있습니다. 호리호리한 몸매에 늘 조용했던 그는 제 앞 조에 있었습니다. 투덜거리며 앞 조가 달리는 것을 무심히 지켜보던 저는 점점 그 친구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마치 마라토너처럼 사뿐사뿐 경쾌하게 달려 나가는 모습이 너무도 멋져 보였습니다. 1등으로 통과했지만 힘든 기색 하나 보이지 않던 그는 우리와는 다른 딴 세상 사람처럼 대단해 보였습니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러닝을 할 때면, 그 친구가 뛰는 모습을 떠올리며 그의 자세를 따라해 보기도 합니다. 그날의 우중충했던 하늘빛, 친구의 초록빛 옷과 그때의 표정까지 이상하리만큼 제 마음속에 생생하게 남아있습니다.


또 다른 잊혀지지 않는 기억은 중학교 시절의 일입니다. 특히 영어 과목을 좋아해 성적이 나름 좋았던 저는 당시 영어 선생님의 사랑을 듬뿍 받았습니다. 그런데 중간고사를 치르고 난 어느 날, 선생님께서 굳은 표정으로 수업에 들어오시더니 우리 반이 학년 꼴찌를 했다며 이건 반 전체가 반성해야 하는 모두의 책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음 시간에 관련해서 체벌이 있을 거라고도 하셨습니다. 높은 점수를 받았지만 저도 예외 없이 매를 맞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다음 시간이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지난번 시험보다 점수가 떨어진 만큼 매를 때리겠다고 하셨습니다. 반 아이들은 차례대로 책상 위에 올라가 무릎을 꿇었고, 선생님은 한 명씩 차례로 발바닥을 때리기 시작하셨습니다. 아이들의 고통스러운 신음 소리가 터져 나오면서 저도 무서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선생님이 나는 좀 살살 때리지는 않을까. 조금 떨어졌어도 그래도 높은 점수인데.' 하고 속으로 기대했지만, 예상과 달리 선생님은 있는 힘껏 매를 휘두르셨습니다. 발바닥이 타오르는 고통에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당시 선생님이 냉정하게 매질하던 모습은 지금까지도 제 기억에 잊히지 않고 생생하게 남아있습니다. 당시는 체벌이 당연한 시절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맞아본 적도 없었고, 다름아닌 좋아하던 선생님에게 느낀 서운함이 아무래도 제게는 매우 큰 충격이었나 봅니다.


마지막으로 생생한 느낌은 다름 아닌 가슴이 저려 오는 아픈 이별에서 비롯됩니다. 대학 시절 잠시 만났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도서관에서 함께 공부도 하고 영화도 보는 등 또래의 데이트를 했습니다. 그렇게 평범하기만 했던 어느 날, 그녀는 갑작스럽게 이별을 고했습니다. 저는 연애 경험도 많지 않아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고, 시간이 갈수록 더욱 힘겹게만 느껴졌습니다. 지나고 보니 이미 삐삐에는 성의 없는 메시지들이 전부터 쌓여 있었고, 전부터 이미 다른 남자를 만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렸습니다. 선물받았던 커플링을 돌려받았지만, 화가 치솟아 돌아오는 길에 길가에 내동댕이쳤던 기억이 납니다.


며칠을 술에 절어 겨우 잠에 들거나, 비 오는 거리에 나가 청승맞게 아픔을 달래려 했습니다. 후일 "총 맞은 것처럼"이라는 노래가 나왔을 때도, 그때의 내 심정과 너무 똑같아 한참을 불편해하기도 했습니다. 친구들에게 헤어진 여자친구 욕을 하기도 하고, 울고 불며 억울함을 쏟아내기도 했습니다. 그때 이후 인생에서 겪는 여러 스트레스 상황에서 이상하게도 그때 느꼈던, 가슴이 뜨겁게 타면서 뚫리는 듯한 고통을, 비슷하게 느끼곤 합니다. 이성과의 문제뿐 아니라 자식과의 갈등이나 심지어는 상사와의 마찰로 각종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그때의 통증이 다시금 가슴을 뜨겁게 아립니다. 그래서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은 그 친구를 떠올리면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잘해주지 못해 당시 그 친구가 떠나갔을 텐데, 내 마음대로 기억 속에 가둬 놓고 힘든 상황을 겪을 때마다 그때의 아픈 기억과 느낌을 다시금 꺼내곤 하는 것이 속으로 많이 미안합니다.


시간이 흘러도 몇몇 기억들은 지워지지 않고 여전히 머릿속 한쪽에 선명하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때로는 아련한 추억으로, 또 때로는 아픈 상처로 각인되어 남아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이든 모두 내 삶의 일부라고 생각하면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죽을 날까지 깊숙히 박혀 절대 잊혀지지 않을 것입니다. 또 남아있는 인생에도 새로운 장면들이 하나씩 더 추가되어 가겠죠. 이것들 역시 가슴에 새겨지고 또 머릿속에 각인되어 인생의 중요한 기록들이 될 테지요. 지금껏 그렇게 쭉 살아온 것처럼요.



"뇌리에 박히다" (noerie bakhida) literally means "driven into the brain"—a vivid Korean expression describing memories so powerful they become permanently etched in one's consciousness. This essay explores three unforgettable moments from the author's life: watching a classmate's effortless grace during a school fitness test, experiencing unexpected corporal punishment from a beloved teacher, and enduring the searing pain of a college breakup. These memories, spanning admiration, betrayal, and heartbreak, remain as vivid today as when they first occurred. The author reflects on how certain experiences—whether beautiful or painful—become inseparable from our identity, resurfacing unexpectedly throughout life's challenges and shaping who we ultimately bec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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