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쓴다

완료

by 윤본


스크린샷 2025-11-02 오후 2.59.58.png Work like a dog, spend like a nobleman

일반적으로 한국어에서는 '개'라는 어감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 속담에서의 의미는 그리 나쁜 뜻은 아닙니다. 열심히, 악착같이 일을 한다는 의미이니까요.


돌이켜보면 저는 성인이 되면서부터는 경제적인 문제에 대해서 남들보다 많은 고민을 하는 편이었고, 한편으로는 많이 불안해하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주변에서는 아등바등 불안해할 필요 없다고 많이들 조언을 해주지만 그게 쉽게 변하지는 않았습니다. 아마 일찍 돌아가셨던 아버지가 영향을 주시지 않았나 조심스럽게 짐작해 봅니다.


습관적으로 몇 년 후까지 수입과 지출을 예상해보고, 그에 따른 가계의 자금 흐름도 예상해보는 것을 자주 하는 편입니다. 수십 년째 저와 함께 해오고 있는 아내에게는 아마도 매우 스트레스였을 것입니다. 사실 과거를 돌이켜보면 생각한 대로 살아진 적도 없고, 예상한 만큼 수입이 척척 들어온 적도 없었습니다. 그저 상황에 맞춰 살아왔을 뿐이었죠. 의미 없을 수도 있는 수많은 계획들과 거기서 비롯되는 스트레스들을 짜증 내지 않고 함께 고민해준 아내가 매우 고맙습니다.


생활비를 줄이기 위해 아내와 늘 상의를 했고, 작은 생필품조차도 최저가 위주로 쇼핑을 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래도 부부가 비슷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것은 매우 다행이었죠.


몇 해 전 어느 여름날이었습니다. 풀리지 않는 일로 스트레스는 쌓여가고, 갑자기 '내가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건가' 하며 심한 자괴감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여행도 많이 하고, 좋은 호텔에 가서 맛있는 음식도 먹고, 하다 못해 택시도 편하게 자주 타고 그러는데 말입니다. 아이들의 학비며, 하루가 다르게 오르기만 하는 집 렌트비, 서울과는 다른 매우 높은 생활비 물가로 매일 매일 돈과 관련된 스트레스에 매우 힘들어하고 있었습니다. 아내와 아이들과도 그저 그런 지리한 일상이 반복되던 나날이었죠.


이러다 이도 저도 안 되겠다는 생각에 즉흥적으로 가족 여행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그해 겨울 베를린 왕복 티켓이 저렴하게 올라온 것을 보고, 고민도 하지 않고 결제하고 만 것이죠. 기내식도 나오지 않고 환불도 안 되는 저가 티켓이었지만 저에게는 매우 큰 결정이었습니다.


이왕 저지르고 나니 이상하게 신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아내도 처음에는 걱정하는 듯 보였지만, 점점 기대에 찬 얼굴로 바뀌어 갔고, 무엇보다 아이들의 반응이 너무 폭발적이었습니다. 딸들은 아는 유럽 도시 이름을 하나하나 말하며 신나게 수다를 떨었고, 또 SNS에 자랑도 하는 듯했습니다. 무던한 아들 녀석도 입꼬리가 한껏 올라가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죠.


들뜬 아이들을 바라보는 것은 아빠에게 큰 행복이었습니다. 비행기표 하나 끊었을 뿐인데, 즐거워하는 가족들을 보니 어렴풋하게나마 가치 있는 소비가 어떤 건지 알 것도 같았습니다. 그동안 저와는 다른 스트레스를 받았을 아내에게도, 여행지를 정하고, 숙소를 예약하고, 여행 코스를 짜는 일은 일상의 새로운 재미가 되었습니다. 겨울옷을 준비해야 하는 등 번거로운 일들도 많았지만, 날짜가 다가올수록 가족들은 전과 달리 하루를 매우 바쁘고 활기차게 보낼 수 있었습니다.


베를린에 처음 도착했을 때의 기억을 가족들은 입을 모아 이야기합니다. 적도의 무더운 날씨에 적응돼 버린 우리에게 독일의 칼바람은 너무 매서웠습니다. 또 디즈니 애니메이션같았던 아름다웠던 프라하의 까를교도 우리에게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깊게 남았습니다.


아이들은 에펠탑을 배경으로 인스타에 올릴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었고, 고즈넉해서 딴 세상 같던 옥스퍼드의 풍경이나, 익숙한 멜로디의 맘마미아 뮤지컬, 그리고 화려했던 타워브릿지 야경도 아직까지 모든 순간들이 매우 생생합니다.


어느덧 시간이 또 몇 년 흘렀습니다. 즉흥적으로 저질렀던 여행은 우리의 단골 수다거리가 되었고, 같은 순간들이었지만 제각각의 시선으로 다양하게 기억하며 재미나게 지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또 손이 근질거립니다. 지금 두 번째 여행을 계획하고 있거든요. 이번에는 스무 시간을 걸려 이탈리아 밀라노로 갑니다. 역시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가겠지만, 어느덧 아이들이 훌쩍 커버려 어쩌면 지금이 모두 함께 여행할 수 있는 마지막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여전히 가족들은 제각각 기대에 들떠 이번 여행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Work like a dog, spend like a nobleman" is a Korean proverb that celebrates both diligent work and wise spending. Growing up with financial anxiety after losing his father early, the author spent years obsessively planning budgets and cutting costs. One summer day, overwhelmed by stress, he impulsively booked a family trip to Berlin—a decision that transformed his perspective. Watching his children's joy at visiting Prague, Paris, and London, he discovered that meaningful spending creates lasting memories. The essay chronicles how a single spontaneous decision shifted his values from hoarding money to investing in precious family moments, embodying the proverb's wisdom of working hard but also knowing when to spend generous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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