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hings We Own Resemble Us
광주 본가에 가면 안방 한구석에 오래된 작은 금고가 있습니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전에 사 놓으신 건데 30-40년은 족히 된 금고일 것입니다. 그리 크지도 않은데 매우 무거워서 혼자 계신 어머니께서 어디다 옮기기도 어려운 그런 묵직한 금고입니다.
오래전,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처음 열어 본 그 금고 안에는 값나가는 물건이라고는 거의 없었습니다. 어지럽게 쌓여 있는 서류 뭉치들, 그리고 그 틈에 덩그러니 있던 낡은 시계 하나가 전부였죠. 아버지가 쓰셨던 듯한 매우 오래된 금장 시계였습니다. 겉은 다 삭아 도금이 벗겨져 있었고, 줄도 거의 끊어질 것 같았습니다. 누가 봐도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구닥다리 시계였습니다.
이 시계를 처음 봤을 때는 사실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저 아버지의 유품이라 생각하고 서울집에 가져와 서랍 깊숙이 넣어두고 오랫동안 꺼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한 10년쯤 지났을까요. 문득 이 시계 생각이 났습니다. 오랜 세월 녹이 슬고 먼지만 쌓였던 이 시계를 다시 살려 보고 싶었습니다. 아버지가 처음 이 시계를 사셨을 때의 그 시절 모습으로 복원할 수 있다면 무언가 의미가 있을 것도 같았죠. 그래서 유명하다는 종로의 한 시계 수리점을 찾아가 많은 돈을 들여 전체 오버홀을 하고, 케이스와 밴드, 다이얼까지 모두 복원을 마쳤습니다.드디어 시계는 반짝이는 금빛으로 완벽히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제 손목에 차기에는 여전히 과했습니다. 솔직히 아버지의 유품이라는 의미 외에 다르게 느껴지는 것도 없었죠. 들인 공도 잠시, 결국 시계는 다시 서랍 속으로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그로부터 수년이 지난 어느 날, 별생각 없이 인터넷 검색을 하던 중 한 게시글이 제 눈에 들어왔습니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사용하시던 오래된 시계를 고쳐서 아들인 자신이 잘 사용하고 있다는 글이었습니다. 올라온 사진을 보니 제법 근사해 보였습니다. 게다가 본인의 취향대로 시계를 일부 커스텀한 것을 보고, 다시 먼지만 쌓이고 있던 서랍 속 아버지의 시계가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어둠 속에서 의미 없이 세월 속에 묻혀 있는 것이 아쉽기도 했고, 의미 있는 커스텀 시계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 시계의 무브먼트를 활용해 새롭게 시계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값비싼 악어가죽 밴드와 사파이어 글라스, 사제 다이얼까지 결국 근사한 커스텀 시계가 완성되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손목에 올려 보니 왠지 모르게 저와는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한두 번 의욕적으로 손목에 차고 다니기는 했지만 이내 곧 시들시들해지기 시작했고, 그렇게 두 번째 리폼에 쓴 시간과 비용도 무심하게 아버지의 시계는 또다시 옷장 속으로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아버지의 유품이라는 무게감 때문이었는지 어떻게든 사용할 의미를 찾기 위해 이런저런 노력을 해보았습니다. 금빛 색상이 촌스러워 은색으로 도금을 해 보기도 하고 다양한 형태의 밴드로도 교체해 보려 했지만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너무나 오래된 시계이기도 했고 고칠 때마다 들어가는 비용도 적지 않아 부담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제 마음 한구석에서는 여전히 이 오래된 시계가 기억 속 아버지와 나를 이어주는 어떤 것이라 믿고 싶었나 봅니다. 사실 시계를 볼 때를 제외하고는 평소에 아버지를 떠올릴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고쳐보자고 결심했습니다.
한국 출장길에 아버지 시계를 챙겨갔습니다. 오랜만에 오버홀 수리도 하고 오래된 다이얼도 과감히 교체했습니다. 심장인 무브먼트를 제외하고는 모든 것을 새롭게 갈아입은 아버지의 오래된 시계는 그제서야 제 손목에 착 감기는 편안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힘들게 돌고 돌아 이제야 완성된 시계를 손목에 올린 채 생각해 보니 기분이 조금 이상하기도 했습니다. 지금 느껴지는 이 로터의 진동이 그 시절 아버지의 손목에서도 똑같이 느껴졌을 거라 생각하니 감동 비스무리한 것도 느껴졌구요.
"물건은 쓰는 사람을 닮는다"라는 말 때문인지, 시계를 차고 있으면 저는 마치 아버지가 함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불안하거나 중요한 일이 있을 때면 습관적으로 이 오래된 시계를 손목에 올리곤 합니다.
신기하게도 시계를 차고 나면 불안한 마음이 가라앉는 것 같습니다. 고민스러웠던 일들도 더 수월하게 풀리는 것 같습니다. 미신이라 할 수도 있고, 내 마음 편하자고 만들어낸 자기 위로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시계를 볼 때마다 오래전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나는 것도 사실이고 '아버지라면 이 상황을 어떻게 판단하셨을까' 머릿속으로 그려보는 것도 사실입니다.
저에게도 사랑스러운 아들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녀석과도 강하게 연결되는 우리만의 헤리티지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나와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언젠가 아들과 나를 연결시켜 줄 우리만의 무언가를 함께 만들어 가고 싶은 거죠.
우연히 생길 수도 있고, 제가 그랬던 것처럼 의도적으로 만들어 나갈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무엇이 되었든 간에, 거기엔 분명 우리만의 이야기와 역사가 담길 것입니다.
시간이 제법 흘러 어린 아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이를 통해 함께했던 순간들을 추억하며 미소 지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제가 그랬던 것처럼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면 그보다 더 바랄 게 없겠죠. 아버지와 나를 이어 준 이 오래된 시계처럼, 우리 부자만의 특별한 무언가가 우리만의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가길 기대해 봅니다.
"Objects Resemble Their Owners" is a Korean proverb suggesting that possessions take on the character of those who use them. In this essay, the author recounts his journey with his late father's vintage gold watch—discovered in a family safe, restored multiple times, and repeatedly abandoned.
Through years of failed attempts to make it his own, he eventually finds comfort in the watch's connection to his father. The rhythmic vibration of the movement, once felt on his father's wrist, now provides reassurance during uncertain moments.
This story explores inheritance, memory, and the hope of creating similar meaningful legacies with his own s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