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by 윤본
스크린샷 2025-12-14 오후 7.56.46.png Back Then It Was Right, Now It's Wrong

한국의 K-POP 팬덤 문화에서, 과거 취향들을 추억하며 "그때는 이게 좋았는데, 지금 보니 별로다"라는 의미로 쓰이기 시작한 말입니다. 어느새 대중적인 SNS 밈으로도 변화하여 한 영화감독은 동명의 영화를 연출하기도 했죠. 상황과 조건에 따라 같은 것도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는 뜻의 이 밈은 절대적인 옳고 그름이 아닌, 당시의 맥락에서는 그게 맞았지만 지금의 맥락에서는 또 틀릴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부터 영어 과목을 좋아했습니다. 당시는 중학교 갈 때쯤 되어서야 'Hi, How are you?'를 배우던 시절이었는데, 저는 초등학교 때부터 책받침 뒤의 알파벳이나 Dog, Cat, Cow 같은 기초 단어들을 외우며 놀곤 했습니다. 지금 보면 그저 서너 살 아이들이 배우는 수준이었죠. 그래도 중학교에 가서도 나름 공부를 열심히 했고 영어 성적은 늘 상위권이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만 그 성적이 실제 영어 실력을 의미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부모님도 뿌듯해하셨고, 스스로도 영어에 재능이 있다고 믿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대학에 가서도 영어 공부는 손을 놓지 않았습니다. 전공 수업 외에도 타과 수업을 신청해 듣기도 하고 영어 관련 교양수업을 찾아 들었습니다. 비록 야심 차게 도전했던 타과 전공과목은 결국 F로 마감했지만, 저는 지금도 그때의 제 도전이 자랑스럽습니다. 그 과목은 너무 어려워 그 과 학생들도 기피하던 과목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제법 재밌게 수강을 했었거든요.


군 제대 후에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라 집에 특별히 수입이 없던 때였는데도, 어머니는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셨는지 제게 이모가 계시는 시카고행 왕복 비행기표를 끊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신용카드 한 장도 함께 내어 주시며 어학연수를 다녀오라 하셨습니다. 어릴 때부터 영어를 곧잘 하던 아들에게 뭐라도 기회를 줘야 한다고 생각하셨나 봅니다. 그러나 덜컥 미국에 가려니 겁도 나고, 이게 과연 맞는 건가 생각도 들었고, 무엇보다 어머니와 다른 가족들에게 많이 미안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비자를 받게 되었고, 그렇게 저는 시카고행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미국에서의 생활은 기대했던 것과는 무척 달랐습니다. 커다란 덩치에 다른 피부색을 가진 미국인들은 처음에는 친절한 것 같기도 했지만, 못 알아듣는 일이 많아질수록 쉽게 짜증을 내기도 했습니다. 욕설도 하고 화를 내는 경우도 많았었죠. 영어 수업을 열심히 받았지만 그때뿐인 것 같고, 맥도날드나 기차에서 만나는 보통의 미국인들과 어울리는 것이 점점 부담스러워졌습니다. 한국에서는 영어 좀 한다고 으스댔던 제 자신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사람 만나는 것이 싫어질 정도로 부담이 크게 다가왔습니다. 영어를 자유롭게 쓰는 현지 교포들이 너무 부러웠고, 그들과 어울리기에는 제가 너무도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 점점 소심해지기만 했었죠.


그러던 중 같이 지내는 사촌들과 함께 유럽여행을 갈 기회가 생겼습니다.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로 돈을 어디다 쓸까 고민하던 차에 유럽여행을 가게 된 것이죠. 저는 우연히 떠난 그곳에서 아주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놀랍게도 유럽 사람들의 영어는 오히려 저보다 서툰 경우가 많았습니다. 심지어 미안해하는 사람들도 있었죠. 오히려 영어가 제가 더 능숙했던 경우가 많아 무척 신기했습니다. 여행 초반에는 대부분의 의사소통을 사촌들에게 의존했지만, 여행이 계속되면서는 제 마음가짐도 점차 달라졌습니다. 미국에서 잔뜩 주눅이 들었던 제 영어는 비영어권 나라들을 여행하면서 어느정도 자신감을 되찾을 수 있었고, 여행하던 내내 저도 모르게 목소리도 커져 있었습니다.


졸업을 하고 회사에 취업을 하고 나서는 또 다른 모습으로 보여집니다. 괜찮은 토플 점수에 오랜 글로벌 기업 경력, 영어로 된 메일도 자연스럽게 회신하고 가끔은 외국인들과 회의도 합니다. 종종 미국 출장도 다니는 저를 가족들은 매우 자랑스러워합니다. 하지만 원어민처럼 유창하게 영어를 하는 동료들을 볼 때면 여전히 소극적이 되고, 가끔은 그 옛날 미국에서 느꼈던 컴플렉스가 되살아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싱가포르에 처음 이주했을 때, 영어를 잘 못하던 아내와 아이들은 제 등 뒤에 바짝 붙어 식당을 가고 병원을 가고 또 학교를 다녔습니다. 새로운 회사 생활도 함께 해야 했던 저는 모든 것을 신경 쓰느라 힘들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들의 절실한 마음을 잘 알기에 부족하지만 자신감 있게 나설 수 있었습니다. '아빠는 우리 중엔 영어를 제일 잘하잖아.' 그 믿음이 저를 움직이게 했던 것 같습니다.


몇 년이 흐른 지금은 어떠냐고요? "아빠는 발음이 왜 그래?", "아빠 영어는 좀 rude한 것 같아"라며 대놓고 핀잔을 주는 일이 많아졌고, 저 역시 모르는 데서 전화라도 오면 아이들을 옆에 앉히고 도와 달라 부탁하고 있습니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제게 영어가 딱 그런 셈입니다.


어렸을 때는 모두가 영어를 잘한다며 치켜세워줬고, 그게 저에게는 매우 큰 자부심이었습니다. 하지만 미국에서의 어학연수는 오히려 제 자신감을 바닥치게 만들었고, 그때 생겼던 부담감은 지금도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여행을 통해 어느 정도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었지만, 깊게 뿌리 박힌 컴플렉스가 지금도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지금도 유창하게 영어를 잘하는 사람들을 보면 여전히 긴장이 되곤 합니다.


그랬던 제가 이곳 싱가포르에서는 또다시 자신감을 찾고 생존 영어를 하며 하루하루 살고 있습니다. 이제는 아이들에게 핀잔을 듣는 때도 많아졌지만, 그래도 막 이민 와 아무것도 모르던 가족을 이끌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제 영어에 대한 자부심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똑같은 모습들이 마치 성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내 곧 실패하기도 하고, 다시 그게 사람들로부터 박수를 받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덧 색이 바래지기도 합니다.


인생 재밌지 않나요?



"Back Then It Was Right, Now It's Wrong" is a Korean internet meme from K-pop fan culture that captures how the same thing can feel right in one context but wrong in another.


The author uses this concept to trace his evolving relationship with English across different life stages. From childhood pride through crushing self-doubt during study abroad in America, unexpected confidence regained while traveling through Europe, to becoming his family's lifeline in Singapore—only to later receive criticism from his now-fluent children.


His English ability remained constant, but its meaning shifted completely depending on who surrounded him and where he st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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