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가는 사람 잡지 말고
오는 사람 막지 마라

by 윤본
스크린샷 2025-12-21 오후 10.38.53.png Don't Hold Back Those Who Leave, Don't Block Those Who Come

한국의 오래된 속담인 줄로만 알았는데, 다름 아닌 맹자께서 하신 말씀이네요. 글자 그대로 내 옆에서 머물다가 떠나는 사람에 미련을 가질 필요도 없고, 새로운 인연을 불편해하거나 어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반세기 정도 살아보니 저 역시 수많은 인연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견디고 버티며 그렇게 살아왔더라고요.


대학 1학년 때 매우 친했던 친구가 하나 있습니다. 지금은 서로 자주 못 보지만 대학 동기 단톡방에서는 가끔 가뭄에 콩 나듯 안부를 전하는 그런 친구입니다. 잘생긴 얼굴에 키도 훤칠했고 유머 감각도 매우 뛰어났던 그 친구와 저는 나름 죽이 척척 맞는 편이어서 종종 어울려 다니곤 했었습니다. 군대 가기 전에는 가진 돈 탈탈 털어 함께 강릉으로 기차 여행도 다녀왔던, 그 시절 가장 친했던 그런 친구였었죠. 그러나 현역 입대를 했던 저와는 달리 친구는 학군단을 거쳐 장교로 임관을 하다 보니 서로 어울릴 시간이 맞지 않아 조금씩 소원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끈끈했던 관계가 점점 시들해지는 게 당시에는 많이 아쉬웠지만 어느샌가 그러려니 여기며 자연스레 멀어져 가게 되었습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많은 인연이 있었습니다. 언제 만나도 즐거운 첫 직장 동기들부터, 직장을 옮기며 만나게 된 수많은 친구들, 선배님들 그리고 후배들이 바로 그 인연들입니다. 그 많은 사람들과 모두 막역하게 지낸 것은 아니었지만 가능한 모든 관계들을 잘 가져가 보려고 나름 노력을 많이 했었습니다. 평판이 돌고 도는 좁은 사회 생활 속에서 가능하면 좋은 인상을 주는 것이 제게도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해 그렇게 살아왔던 거죠. 그러나 생각과는 달리 만남과 헤어짐은 언제나처럼 반복되었고, 이제 와 돌이켜보면 사실 그들은 그렇게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던 것 같기도 합니다. 어쩌면 저 혼자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온 것 같기도 하고요.


제 커리어의 시작은 영업직이 아니었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영업으로 전직할 수 있던 기회가 있었고 그때 그 기회를 열어주신 직장 선배님이 한 분 계십니다. 첫 직장 때부터 저를 많이 예뻐해 주셔서 항상 감사하게 생각했던 선배님은 영업 초짜였던 제가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이런저런 많은 것들을 알려 주셨습니다. 매우 마초적이고 저돌적이셨던 그분의 모습이 가끔 저와 맞지 않다고 생각이 들 때는 때때로 대들기도 했지만, 언제나 제게 많은 배려를 해 주신 고마운 선배님이셨습니다. 그렇게 서로 지지고 볶으며 꽤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지도 몇년이 흘러 어느덧 선배님이 회사를 먼저 떠나게 되셨습니다. 이후 저도 다른 곳으로 직장을 옮기게 되어 서로 일하는 곳은 달라졌지만, 종종 안부 전화도 드리며 여전히 가까운 관계를 이어갔습니다.


그러나 제가 싱가포르로 오고 나서는 그 관계가 미묘하게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에 다녀갈 때마다 전화를 드리곤 했지만 예전과는 다르게 언제부턴가 어색한 기운이 조금씩 느껴졌었고 생각보다 만남도 자주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런 일들이 반복되다 보니 저 역시도 예전처럼 적극적이지 않은 것도 느낄 수가 있었죠. 마치 대학 시절 절친했던 그 친구에게서 느껴졌던 어색함 비슷한 것들이 고마운 선배님께도 조금씩 생겨나고 있었나 봅니다.


싱가포르로 오게 되면서 한국에 있던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술잔을 기울이던 친구들과도 점점 연락이 뜸해졌습니다. 어쩌다 만나더라도 한번 소원해진 인연들은 그저 짧은 추억을 안주 삼아 술잔을 비울 뿐이었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떠나는 사람도 생겨나고, 반대로 더 돈독해지는 사람들에게는 더 큰 소중함을 느끼기도 하죠. 물론 싱가포르에서 생긴 소중한 인연들도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그것처럼 언젠가 이들과도 멀어지는 날이 올 수 있습니다. 싱가포르에서는 사람들의 들고 나감이 유독 흔합니다. 가족들과 함께 낯선 타국에 왔지만 새로운 세계에 적응을 못 하고 고국으로 돌아가는 사람들도 많이 있고, 회사 고용이 만료되어 어쩔 수 없이 돌아가는 경우도 많이 보게 되죠.


피천득 시인은 어리석은 사람은 인연을 만나도 몰라보고, 보통 사람은 인연인 줄 알면서도 놓치며, 현명한 사람은 옷깃만 스쳐도 인연을 살려낸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살아온 세월을 돌이켜보면 반드시 그렇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오히려 인연에 대해서 그저 바람처럼 쉽게 왔다 갈 수 있는 것으로 여길 줄 알아야 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내가 집착하고 미련을 둘수록 어떨 때는 예상치 못한 실망에 마음이 크게 아프기도 하거든요.


몇 년 전부터 저는 가족에 대한 애착이 점점 깊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아이들에게 전보다 눈길이 더 가기도 하고 궁금한 것도 더욱 많아지고 있습니다. 아이들도 아빠를 더 관심 있어 했으면 하는 바람도 더욱 커져가기도 하죠. 우리 집은 누가 봐도 매우 즐거운 가족입니다. 그런 화목함을 잃지 않으려 제가 더욱 그러는 것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내 아이들 역시 언젠가 자기 자릴 찾아 하나둘 떠나가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때 더 아쉬워하지 않으려면 어쩌면 지금부터 조금씩 내려놓는 훈련이 필요할 때인 것 같습니다.


그래도 아내와의 인연은 전보다 더욱 견고해져 갑니다. 2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둘 사이에 켜켜이 쌓여온 그것은, 사랑보다는 오히려 의리에 가까운 매우 끈끈한 인연입니다. 시간이 갈수록 둘이 함께 하는 시간도 많아지고 서로 박장대소하며 웃는 일도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외국 영화를 보면 십수년 만에 만난 친구와 반갑게 포옹하고 자연스럽게 스몰토크를 나누는 장면들을 자주 볼수 있습니다. 심지어는 오랫동안 연락이 끊긴 가족들과도 편하게 웃으며 일상을 나누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수 있습니다.


저도 이제는 좀 더 가볍게 사람을 만나는 연습을 하려고 합니다.



"Don't Hold Back Those Who Leave, Don't Block Those Who Come"


This ancient wisdom, surprisingly attributed to Mencius rather than Korean folklore, teaches us to release relationships without attachment and welcome new connections without hesitation.


Through memories of a close college friend who drifted apart, a mentor who became distant after the writer's move to Singapore, and the constant flow of expatriates coming and going, this essay reflects on how relationships naturally ebb and flow.


The writer challenges the conventional notion that we must desperately hold onto every connection, proposing instead that true wisdom lies in accepting the transient nature of human bonds—while deepening the ties that endure, particularly with family and spo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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