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매우 센세이셔널했던 TV 광고가 하나 있었습니다. 여학교의 교실에 걸린 급훈들을 보여주는 광고였죠.
"열심히 공부하면 신랑 얼굴이 바뀐다", "30분 공부 더하면 내 남편 직업이 바뀐다"
이처럼 코믹한 급훈이 유행처럼 인기를 끈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저 우스갯소리로만 볼 게 아닌 것이, 실제로 우리 주변의 많은 것들이 실제로 각자의 피나는 노력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 역시 시간이 지나면 결국엔 모두가 알아주기도 하죠.
큰맘 먹고 다이어트를 한 적이 몇 번 있습니다. 매번 요요 현상으로 실패하곤 했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적응이 되어 꽤 오랫동안 비슷한 체중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오래 전 저는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체중이 상당히 많이 나가 사실상 꽤 심각한 비만이었습니다. 매년 건강검진을 할 때마다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계속해서 무서운 경고를 듣기도 했었죠. 정신차리고 다이어트하지 않으면 큰일 날 수 있다면서요.
그러나 솔직히 그때 저는 몸 건강보다는 정신적인 스트레스로 속이 썩어 가고 있었습니다. 제 직업은 항상 사람을 만나야 하는 세일즈였습니다. 그런대 어느 순간부터 다른 이들을 만나는 것이 부담스럽게 느껴지게 되었고 이상하게 스트레스로 느껴졌습니다. 거울을 볼 때마다, 튀어나와 있는 뱃살과 늘어진 턱살에 눈살은 절로 찌푸려졌고, 백화점의 값비싼 수트를 걸쳐 보아도 전혀 근사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런 제 모습이 너무 싫었습니다. 늘어가는 스트레스는 매일 밤 야식과 술로 풀어야 했고, 그랗게 악순환은 반복되었습니다.
무슨 계기가 있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습니다. 어느 순간 다이어트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무작정 뛰기 시작했습니다. 매일같이 헬스장에 가서 운동을 하고 사우나에서 땀을 뺐습니다. 어떨 때는 밥도 먹지 않고 아예 굶으며 무리하게 다이어트를 했었죠. 그러다 보니 짧은 시간에 십여 킬로그램이 줄었습니다. 잘못된 다이어트로 나중에 다시 요요가 오긴 했지만, 당시 체중계 위에 올라가 목표 체중을 확인하던 그 순간을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근육질의 몸은 아니었지만 어느새 슬림해진 내가 멋져 보였고, 업무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사람 만나는 것이 다시 즐거워졌습니다. '달라져서 못 알아보겠다', '다른 사람 같아졌다'는 말을 듣는 게 행복했습니다. 주말에 아내와 옷 매장에 들러 이 옷 저 옷 입어보는 일들이 행복한 일상이 되었습니다.
이후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친 후 지금은 그전과는 다르게 나름 적절히 관리하고 있습니다. 힘들지만 운동도 게을리 하지 않고, 여전히 많은 유혹이 있지만 가능한 음식도 조절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정상 체중이 되려면 아직 몸무게를 좀 더 줄여야 하지만, 이전처럼 대인기피증이라든지 스스로에게 짜증 내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여전히 새 옷 사는 것도 즐겁습니다.
제 아내는 어린아이들을 정말 좋아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들으면 무척 서운해하겠지만, 저는 원래부터 하나만 낳아서 잘 기르자 주의였습니다. 하지만 아내는 저와는 180도 달랐죠. 큰애가 태어나고 한두 해가 지나자 둘째를 갖자며 적극적으로 저를 설득했고, 이후 셋째를 가질 때는 서로 언쟁이 오갔을 정도로 아내는 다복한 가정을 갖고 싶어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내 말을 들은 게 천만 다행입니다. 사랑하는 둘째와 셋째가 만일 세상에 없었다면, 정말 생각하기조차 싫을 것 같습니다.
아내는 심지어 다른 집 아이들에게도 눈을 떼지 못합니다. 남편에게는 절대 하지 않는 윙크도 서슴없이 하기도 하며, 생판 모르는 유모차 속 다른 집 아이들에게 갖가지 플러팅을 보내죠. 아이 부모들이 싫어할 수 있으니 그러지 말라고 핀잔을 주기도 하지만, 어린 아이들만 보면 나오는 아내의 순수한 모습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사랑스럽습니다.
본인의 꿈이나 목표라고 정확히 말한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짐작컨대 아내는 어린 아이들을 돌보는 일이나 다른 이들을 위해 봉사하는 일들을 하며 살고 싶을 것 같습니다. 세 아이를 키우면서 맞벌이까지 했던 아내는 그것만으로도 참 힘든 일이었을 텐데, 심지어 자격증 준비까지 탄탄히 해 왔습니다. 남편은 돈 번다며 밤늦게 들어오기 일쑤였지만, 작은 몸으로 아이들을 돌보며, 어린이집 교사 자격증,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하나 하나 취득했습니다. 나중에는 요양보호사 자격증까지 추가했죠.
이른 새벽부터 인강을 듣고, 주말에는 실습을 나가는 등 오랜 시간 피나는 노력을 했습니다. 고시 공부도, 대학 입시도 아니지만, 세 아이 엄마에게는 그보다 몇 배는 더 힘들었을 시간입니다. 다른 누구보다 엄마 곁에서 나고 자란 우리 아이들이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지금은 싱가포르에 살고 있어 아직 아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여건이 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언젠가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면 그 누구보다 즐겁게 시작할 수 있겠죠.
누구나 각자 다른 인생을 삽니다. 우리는 절대 모를 유명인들의 인생도 있을 것이고, 오늘 뭘 입을지 고민하는 여중생의 인생도 있습니다. 이렇듯 각자 자기만의 인생에서 원하고 바라는 것이 있습니다.
운을 확실히 가져오기 위해 스스로 만다라를 그리며 노력했다는 야구선수 오타니 쇼헤이의 일화는 매우 유명합니다. 이렇듯이 다양한 이들의 크고 작은 성공 앞에는 언제나 그들만의 피나는 노력이 있었습니다.
분수에 맞지 않는 요행을 바라기보다는 자신만의 만다라를 그리고, 작은 실천들을 하나 하나 해 나가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현실적인 거미줄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A spider must spin a web to catch a fly" is a Korean proverb emphasizing that success requires deliberate effort and preparation.
This essay explores this wisdom through two deeply personal stories: the author's transformative weight loss journey that restored his confidence and joy in social connection, and his wife's quiet determination to earn multiple childcare and social work certifications while raising three children and working full-time.
Through these intimate narratives, the essay reminds us that every achievement, large or small, comes from spinning our own web of consistent effort—our personal mandala—rather than waiting for luck to strik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