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꿩대신 닭

by 윤본
스크린샷 2026-01-03 오후 5.09.29.png A chicken instead of a pheasant

과거 이북에서는 만둣국을 끓일 때 꿩고기로 속을 채운 꿩만둣국을 해 먹었습니다. 그런데 꿩고기가 점차 흔치 않아지면서 대신 닭고기로 만들어 먹은 데서 이 속담이 유래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사는 동안 많은 선택을 하며 살아갑니다. 꼭 원하는 것을 가지지 못하더라도 플랜 B, 플랜 C 등 차선의 것들을 선택하고 살아갑니다. 살아가면서 여러 결정을 할 때도 오리지널 꿩고기 대신 실속 있는 닭고기를 고르는 일이 생각보다 매우 많습니다.


1994년에 대입 시험을 치른 저는 유일하게 수능을 한 해에 두 번 치른 바로 수능 1세대입니다.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 당시 학력고사에 맞추어진 커리큘럼으로 공부를 해야 했던 저는 2학년이 되면서 새로운 대입시험인 수능을 준비해야 했었죠. 기존 암기 방식 교육에 꽤 탁월했던 저는 암기보다는 주로 창의력을 요구하는 수능시험에 적응하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그렇게 힘들게 저는 수능을 치렀고, 드디어 대학 지원 시즌이 다가왔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습니다. 국민 정서는 사실 좀 그렇지만, 어릴 때부터 일본 특유의 깔끔함, 정교함, 그리고 오밀조밀함을 좋아했습니다. 자연스럽게 일본어도 배우고 싶어졌죠. 대학에 원서를 넣을 때에도 아버지는 정치외교학과를 갔으면 하는 눈치였고, 다른 가족들도 당시 잘나가던 신문방송학과 같은 곳에 지원하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제 생각은 좀 달랐습니다. 정말 좋아하는 것을 대학에서 공부하고 싶었거든요. 실망하시는 아버지를 설득해 결국 일어일문학과를 지원했습니다. 상대적으로 점수를 많이 낮춰 지원해 무난하게 합격할 거라고 자신했습니다. 하지만 마감 결과를 보니 정작 지원자들이 너무 몰려 경쟁률이 가장 높은 학과가 되어 있는게 아니겠어요? 결국 안타깝게도 불합격 통보를 받았고, 생각지도 못했던 2지망 학과에서 뜻밖의 합격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합격한 2지망 학과는 IT 관련 학과였습니다. 프로그래밍을 배우고 경영학을 배우고 정보 관련 산업을 배우는 그런 학과였죠. 지금도 문과였던 제가 왜 이런 학과를 선택했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습니다. 그 무렵 다른 학교 무역학과나 아랍어학과에서도 추가 합격 소식을 받았습니다.

아버지는 조심스럽게 재수를 권하셨지만, 공부가 지긋지긋했던 저는 그냥 그중에 하나 골라서 진학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당시 할아버지의 한마디 말씀으로 - "컴퓨터가 인기인 세상이 온단다. 그런 거 배우는 데로 가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제 대학 진학은 전혀 예상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그러나 매우 어설펐던 그 시절 선택이었지만, 30년이 흐른 지금은 가족을 건사하고 살아가는 근간이 되고 있습니다. 아랍어를 전공했거나, 원했던 대로 일어일문학과에 합격했더라면 저는 또 다른 인생을 살았을 테지만 사실 그 모습이 쉽게 상상이 되지는 않습니다.

정말 우연히 선택한 제 플랜 B는 꽤나 잘한 선택이었습니다.


아내와 결혼 후 저희 부부는 신혼을 조그마한 집 전세집에서 시작했습니다. 지금이나 그 시절이나 자가로 신혼을 시작하는 부부들은 매우 드물었죠. 방 한 개짜리 자그마한 아파트에서 첫 아이를 낳고 키우며 그렇게 3년을 살았습니다.

아이가 점점 자라면서 좀 더 넓은 집이 필요했습니다. 때마침 둘째 계획도 갖게 되기도 했고요. 집주인은 전세금을 올려 달라 통보를 해왔고, 다시 또 이사를 하느니 이 기회에 그냥 집을 구매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아내는 생각이 전혀 달랐습니다. 아파트를 구매하려면 꽤 많은 대출이 필요했고, 한동안 이자만 납부한다고 해도 아내는 큰 부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내는 전세로 몇 년 더 살고 자금을 더 모아 안전하게 집을 구매하자고 저를 설득했습니다.

그러나 실랑이 끝에 저는 아내를 설득했고, 마침내 처가 아파트 단지의 한 34평 아파트를 계약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자 부담도 잠시, 10평 남짓 방 한 칸 작은집에 살다 큰 집으로 이사할 걸 생각하니 저와 아내의 마음도 크게 부풀어 올랐죠.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계약한 지 몇 주 지나지 않아 그 지역 아파트 가격이 갑자기 폭등한 것이었습니다. 후회가 되는지 집주인은 자꾸 연락을 해 계약을 해지하자고 했고, 적금에 청약 통장까지 해약해 가며 있는 돈 없는 돈 다 끌어다 쓴 저희도 그냥 해지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결국 집주인은 계약금의 두 배를 지불하면서까지 부동산 계약을 해지하게 되었습니다.


저희에게 예상치 못한 수천만 원의 돈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그 사이 집값은 더 올라 같은 평형의 아파트를 사기에는 사실 대출을 더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죠. 이미 매물들도 많이 없어져 계약 가능한 집도 몇 개 없었습니다. 살고 있던 집에서도 이사를 나와야 해 저희는 어쩔 수 없이 선택지를 늘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전혀 고려하지 않았던 24평까지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34평이 들어왔던 눈에 작은 평수의 집이 만족스러울 리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아내는 추가 대출은 절대 안 된다며 완강히 반대했고, 결국 우리는 매물로 나온 한 24평 집을 계약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예상보다 적은 대출금으로 작지만 첫 번째 우리 집을 갖게 되었습니다. 처음 원했던 선택지는 전혀 아니었지만, 그 집에서 둘째와 셋째까지 아이들을 낳고 키웠고, 우리 가족의 든든한 기반이 되어 주었습니다. 처음 계약이 해지가 안 됐더라면 지금 자산이 더 많이 늘었을 수도 있었겠죠. 하지만 저나 아내가 받았을 대출의 압박 또한 함께 견뎌 내야 했을 것입니다.


세월을 살다 보면 노력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것을 결국 이루어 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차선을 선택하거나 어쩔 수 없이 플랜 B를 선택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습니다. 간혹 훨씬 못한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도 있죠. 하지만 진지한 눈으로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면 그것이 꿩이든 닭이든 사실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머지 않아 깨달을 수 있습니다.



"A chicken instead of a pheasant " is Korean proverb that originated from North Korean cuisine, where pheasant dumplings were traditionally preferred but chicken became the practical substitute as pheasants grew scarce.


This essay explores how life's Plan B options can become unexpected blessings. Through two pivotal moments—choosing an unplanned IT major after failing to enter his dream Japanese literature program, and settling for a smaller apartment when a real estate deal fell through—the author discovers that second choices made with sincerity and effort often matter more than achieving first preferences.


Thirty years later, both "substitute" decisions became the foundation of his family's stability and happi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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