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둘째 아이가 "아빠, 이번 속담은 내가 정해줄게"라며 말해준 속담입니다. 아이는 제가 속담에 관한 에세이를 쓰고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가족들이 서로 누가 누굴 더 닮았네, 덜 닮았네 하며 이런저런 수다를 떨던 참에 문득 이 속담이 생각났나 봅니다.
이 속담은 단순히 부모로부터 외모나 성격을 물려받는다는 일차원적인 비교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모든 일에는 저마다의 원인과 과정이 있다는 것을 말하며,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인과응보나 사필귀정의 이치와도 맥락을 같이합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속담 본연의 의미보다는, 콩일지 팥일지 닮은 듯 닮지 않은 우리 아이들 이야기를 남겨보려고 합니다.
큰아이는 우리 가족 모두가 인정하는 아빠 판박이입니다. 갓난아기 때부터 아빠를 쏙 빼닮았다고 주변에서 입을 모았는데, 지금은 어엿한 아가씨로 자랐습니다. 모든 부모가 그렇듯이 서툴렀던 육아와 어쩔 수 없었던 맞벌이로 인해 큰아이는 갓난아이 때부터 어린이집을 다녀야 했습니다. 그래서 엄마와 떨어져 혼자 지내는 시간이 동생들에 비해 어릴 때부터 길었죠. 그래서인지 커가면서 엄마의 사랑을 기대하는 모습이 다른 아이들보다 유독 잦았습니다.
동생들이 태어나면서 이런 아이의 모습은 언니로서 누나로서 의젓한 모습을 기대했던 제 생각과 많이 부딪쳤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게 혼나는 일도 많아졌습니다. 사실 엄마와 일찍부터 떨어졌던 어린 시절 환경이 아이에게 영향을 주진 않았을까 미안해하기도 했었죠.
그런데 재미있는 건 제가 아이에게 주로 하는 말들이 어릴 적 아버지로부터 들었던 말들과 놀랍도록 똑같다는 것입니다.
"동생한테 왜 그렇게 못되게 굴어?", "매사에 불퉁대지 좀 마", "인상은 왜 그렇게 찌푸리고 있어?"
그래도 흐뭇한 것은 점점 더 어른스러워져 가는 아이의 모습입니다. 가족과 주변을 대하는 모습이 이제는 점점 노련해지는 게 느껴집니다. 무엇보다, 제게는 없던 '노력과 끈기'라는 자신만의 DNA를 멋지게 새겨 나가는 미니미가 아빠로서 매우 자랑스럽습니다.
광주 집에 오래된 사진이 하나 걸려 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4학년 때 누나 졸업식에서 찍은 사진인데, 어느 날 막내 녀석이 그 사진을 보자마자 자기랑 너무 똑같다고 깜짝 놀랍니다. 주변에서도 많은 이들이 녀석이 저를 많이 닮았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하지만 성격만큼은 막내는 저와 딴판입니다. 오히려 아내의 성격을 쏙 빼닮았죠. 주변에서 온갖 시끌벅적한 일들이 생겨도 무던하게 자기 갈 길만 가는 모습은 매사에 진중한 아내를 꼭 빼닮았습니다. 아내는 외향적인 성격은 아닙니다. 20년 넘게 살아오는 동안 호들갑스럽거나 쉽게 흥분하는 모습을 보인 적이 거의 없죠. 항상 주변 사람들을 맞춰주며 세상을 살아가는 편입니다.
막내는 또래들처럼 장난도 좋아하고 주위의 관심도 많이 받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누나들처럼 분위기를 주도하는 스타일은 아닙니다. 장난을 치거나 하면 호응해 주고 함께 즐거워하는 정도죠. 그러면서도 속이 깊어 주변을 먼저 생각하고, 막내임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선뜻 양보하는 착한 마음씨를 가졌습니다.
굳이 남의 일에 나서는 편은 아니지만, 옳다고 생각하면 소신껏 행동하는 것도 아내를 닮았습니다. 친구를 괴롭히는 못된 친구들을 교장 선생님께 직접 항의할 정도로 정의감이 강합니다. 또 잔머리 굴리기 좋아하는 누나들과는 달리, 엄마 아빠의 말을 절대적으로 믿고 따르는 뚝심도 있죠.
재미있는 건, 성격이 비슷해서 그런지 둘이 참 잘 어울린다는 것입니다. 녀석이 의젓하게 엄마를 챙기는 모습을 보면 아빠로서 참 든든하고 흐뭇하기도 하죠. 지금은 제 옷을 함께 입을 정도로 덩치가 자랐습니다. 조만간 키도 저를 훌쩍 넘게 되겠지요. 저처럼 변덕스럽고 욱한 성향을 닮지 않고 엄마를 닮은 것이 참 다행이고 대견합니다.
콩을 심었는데 어찌 된 일인지 빛깔 좋은 사과 한 알이 열린 것 같은 느낌이 둘째입니다.
부부의 성향과는 전혀 다른 아이로 자란 것이 신기하기만 합니다. 아내와 제가 전반적으로 내성적인 것과는 달리 녀석은 매우 외향적입니다. 싱가포르에서도 현지 친구들과 거리낌 없이 어울리며 주말에도 함께 집에서 밥 먹기가 힘들 정도로 늘 밖에서 친구들과 어울립니다. 그러면서도 학교 공부도 곧잘 해 주변에 항상 사람이 많습니다. 건너건너 들리는 말들이 대부분 좋은 말들인 걸 보면 학교 생활도 즐겁게 잘 해내나 봅니다.
둘째는 그냥 긍정적인 정도가 아닌, 과할 정도로 긍정적입니다. 덕분에 늘 얼굴에 웃음이 끊이지 않고,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기대하며 살아갑니다. 일부러라도 큰 기대는 하지 않으려 하는 저희 부부와는 달리, 항상 좋은 일이 생길 거라 믿으며 살아가는 아이죠. 때로는 '저렇게 살아도 괜찮을까?' 하는 걱정이 들기도 하지만, 오히려 긍정의 힘이 아이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습니다.
아이가 부모를 닮지 않은 것이 우리 부부에게는 아쉬움이 아닌 오히려 복입니다. 전혀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결국 밝고 긍정적인 성격으로 자신만의 길을 잘 찾아갈 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겉모습은 아빠를 닮았지만 성격은 엄마를 쏙 빼닮은 막내, 아빠의 모습과 성격을 그대로 이어받아 한층 업그레이드된 큰아이, 그리고 전혀 다른 자신만의 모습으로 자라난 둘째까지. 겉모습도 성격도 모두 제각각이지만, 이 아이들을 보면 문득 이 속담의 본래 뜻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어쩌면 이 속담은 무엇을 물려주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왔느냐에 대한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아이들은 말보다 삶을 보고 자랍니다. 아내와 제가 하루하루 어떤 태도로 사람을 대했고, 어떤 선택을 해왔는지, 그리고 어떤 노력을 해 왔는지 고스란히 바라보며 자기만의 씨앗을 품으며 자랐을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 안에서 열심히 자신만의 열매를 가꿔 나가고 있을 것이구요.
"Plant beans, harvest beans; plant red beans, harvest red beans" is a Korean proverb about cause and effect, often used to explain inherited traits. In this essay, a father reflects on his three children—each unique despite sharing the same parents.
The eldest mirrors her father's appearance and temperament but has developed her own perseverance. The youngest son looks exactly like his father but inherited his mother's calm, principled nature. The middle child defies both parents' introverted personalities, thriving as an outgoing optimist.
Through these portraits, the author discovers that the proverb isn't really about what we pass down, but about how children absorb the lives we live before the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