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가는말이 고와야 오는말이 곱다

by 윤본

제가 어린 시절에는 촌지라는 것이 학교 선생님들과 학부모 사이에 매우 만연했습니다. 지금은 상상하기 힘들지만, 당시에는 많은 비판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내 자식 잘못될까' 하는 마음에 너도 나도 빵 한 봉지라도 선생님들에게 가져다 바치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당시 한국은 급격히 성장 중인 개발도상국이었고, 교육만이 아이들의 유일한 희망이라는 생각에, 부모님들은 욕먹을 각오를 하면서까지 이런 좋지 않은 관행들을 이어가곤 했었죠.


저희 부모님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여느 부모들처럼 선생님들이 가정방문을 오시거나 학교를 방문하실 때 실제로 봉투를 준비하시기도 하셨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이해하기 힘든 일이지만, 매해 신학기가 시작되면 선생님들은 연례행사처럼 반 아이들의 집을 방문하셨습니다. 사실 어머니는 선생님들의 가정방문을 매우 불편해하셨습니다. 봉투를 준비하는 것도 많이 부담스러워 하셨구요.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오히려 자식들이 불이익을 받을까 봐 당시에는 어쩔 수 없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초등학교 3학년 시절이었습니다. 전주에서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을 무렵이었죠. 어느 날 저는 수업에 집중하지 않고 당시 짝이던 친구와 신나게 떠들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낄낄거리며 장난치는 저희 둘을 지적하셨고, 급기야 저를 앞으로 불러내 칠판에 있는 나눗셈을 풀어보라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성적도 신통치 않았고, 갑작스레 불려나가 주눅이 든 탓에, 저는 결국 제대로 풀지 못하고 쩔쩔매고만 있었습니다. 그런 제게 선생님은 '공부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수업 시간에 딴짓한다'며 '이럴 거면 그냥 집으로 가라'는 식으로 호되게 혼내셨습니다.


같이 떠들었던 짝은 저처럼 불려나오지도 않고 저한테만 화를 내시는 선생님이 무척 원망스러웠습니다. 어린 마음에 많이 억울했는지, 선생님이 집으로 가라는 말씀을 하시자마자 저는 수업 중인데도 가방을 싸 들고 집으로 와 버렸습니다.


깜짝 놀란 어머니께, 선생님이 그냥 집에 가라고 해서 그냥 온 거라고 자초 지종을 말씀 드렸고, 그렇다고 정말 집으로 오면 어쩌냐며 나무라시던 어머니는 곧바로 회사에 계시던 아버지께 전화를 하셨죠. 황당하기 그지없는 얘기를 듣고 아버지는 한걸음에 집으로 달려 오셨습니다.


'선생이란 작자가 어떻게 애한테 집으로 가라고 할 수 있냐'며 불같이 화를 내시던 아버지는 당장 학교로 가자며 그 선생놈을 혼쭐 내주겠다며 언성을 높이셨습니다. 다시 가고 싶지 않았지만 저는 결국 아버지 차를 타고 다시 학교로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함께 교무실을 찾아가는 길이 어찌나 멀고 불편하게 느껴지던지요.


교무실에 들어선 아버지는 선생님과 악수를 하며 인사를 하셨고, 저를 잠시 복도에 세워두셨습니다. 그러나 복도 창문으로 보이는 모습은 제가 기대했던 것과는 매우 달랐습니다. 삿대질하며 혼내주겠다던 아버지의 파이팅 넘치던 분노는 어느새 비굴한 미소로 바뀌어 있었고, 선생님 또한 평소에 볼 수 없는 환한 얼굴로 아버지와 웃으며 말씀을 나누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아버지가 양복 속주머니에서 하얀 봉투를 꺼내시는 것을 보고 말았습니다. 선생님 역시 전혀 주저하지 않고 아버지의 봉투를 받으셨고, 두 분의 미소는 더욱 환해졌습니다. 껄껄 웃으시며 복도로 나오신 선생님은 제 머리를 쓰다듬으시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고 정말 집으로 가면 어떡하니? 다 네가 잘되라고 했던 말인데. 앞으로는 더 열심히 잘해보자." 저는 갑자기 궁금해졌습니다. '짝꿍 부모님은 도대체 봉투를 몇 개나 드렸을까'


중학교 2학년이 되었습니다. 젊은 선생님들을 중심으로 전교조 열풍이 불던 시기였죠. 촌지 같은 교육 현장의 부조리들을 바로잡고 교사들도 그들의 권리를 찾기 위해 단체 행동도 막 시작하려던 시절이었습니다. 담임선생님은 이제 갓 부임하신 혈기 왕성한 20대 후반의 국어 선생님이셨습니다. 아직은 불안한 시기였음에도 스스로 전교조 소속임을 밝힐 만큼 교육에 대한 소신이 강한 분이셨고, 논란이 되었던 촌지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반대하시는 분이셨습니다. 그래도 여느 해처럼 선생님들의 가정방문은 당시에도 진행되어야 했습니다. 가정방문을 앞둔 어느 날, 선생님은 조회 시간에 아이들에게 촌지 관련하여 당부를 하셨습니다.


"부모님께 선물이나 돈봉투 같은 것은 안 받는다고 분명히 말씀드려라."


대수롭지 않게 어머니께 말씀을 전했고, 며칠 뒤에 선생님은 우리집에 가정방문을 오셨습니다. 선생님은 어머니와 거실에서 30분 정도 말씀을 나누셨고, 특별한 일 없이 가정 방문을 마치고 돌아가셨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저는 내일 닥칠 일을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죠.


다음 날 아침 조회 시간에 선생님은 갑자기 열 명 남짓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불행히도 제 이름도 포함되어 있었죠. 선생님은 아이들을 일으켜 세운 뒤, 가정방문을 갔을 때 부모님이 촌지를 주신 학생들이라며, 왜 부모님께 말씀을 전하지 않았냐고 한참을 꾸짖으셨습니다. 그리고는 책걸상을 들고 당장 복도로 나가라고 하셨습니다. 억울하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하고 여러 감정이 한데 뒤엉켰습니다. 촌지를 준 사람은 내가 아닌 어머니인데, 왜 내게 이런 망신을 주는지 도통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사실 그때는 어머니가 부끄럽다기 보다는 선생님이 더 원망스러웠죠. 세월이 흘러 어른이 된 지금, 그 시절 선생님들과 문제의 봉투들, 그리고 그때의 어리버리했던 저를 생각해 보면 피식 웃음이 나오기도 합니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속담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긍정적이고 존중하는 태도를 권하는 속담입니다. 그러나 오래전 이 잘못된 관행들은 속담의 교훈을 금전으로 왜곡해 버린 그 시대의 잘못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고운 말보다 두툼한 봉투가 더 환영을 받던 촌지는, 결국 시간이 흘러 사라지게 되었고, 지금은 다행히도 금품이나 뇌물과 같은 심각한 범죄로 처벌받고 있습니다.


"Good words bring good words in return" is a Korean proverb advocating mutual respect in relationships. However, this essay reveals how monetary gifts to teachers, called "chonji," corrupted this wisdom during Korea's rapid development era.


Through two contrasting childhood experiences—a third-grade incident where his father's envelope transformed an angry confrontation into smiles, and a middle school humiliation when a reform-minded teacher publicly shamed students whose parents gave gifts—the author captures how children witnessed the gap between noble sayings and tainted reality.


The essay poignantly shows a generation caught between tradition and corruption, where white envelopes spoke louder than kind wor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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