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하늘이 내린 복

A Blessing from Heaven

by 윤본

제목이 매우 거창합니다. '하늘이 내린 복'은 전혀 예상치 못한 좋은 기회나 결과가 찾아왔을 때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는 관용어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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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우연히 만난 인연이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되거나,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음에도 좋은 결과가 나왔을 때 이런 말을 합니다. 로또 당첨자들은 꿈에서 점지받은 번호로 당첨되었다며 하늘이 내린 복을 받았다고 하고, 올림픽과 같은 국제 대회에서 금메달을 거머쥐는 선수들도 실력뿐만 아니라 하늘이 그 운을 점지해 주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런 대단한 복은 아니더라도 제 인생에도 매우 우연한 기회가 몇 번 있었습니다. 그런 기회들이 모여 지금처럼 안정된 직장을 다니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며 살아가고 있으니, 제게도 분명 하늘이 내린 복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2000년 가을쯤으로 기억합니다. 당시는 1997년에 대한민국 경제를 얼어붙게 만들었던 IMF 시대가 어느 정도 회복되어가는 시기였고, 취업 시장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시점이었습니다.

대학 4학년이었던 저는 다른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취업 준비에 한창 열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삼성, LG 등 이제 막 적극적으로 신입사원을 선발하기 시작한 대기업들의 공채에도 지원해보고, 연봉이 높다는 금융권에도 도전해보았습니다.

저녁마다 이력서를 제출하고 자기소개서를 고치고 또 고치며, 면접에 도움 되는 자료를 찾아보는 등 졸업하고 맞닥뜨리게 될 '사회'라는 곳에 두려움 반 기대 반으로 열심히 준비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좀 달랐습니다. 경기가 좋아졌으니 어렵지 않게 취업이 되겠지 했던 기대는 줄줄이 들려오는 낙방 이메일에 불안으로 바뀌었고, 그 불안은 또 쉽게 포기로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그래, 눈을 낮추지 뭐. 꼭 삼성, LG를 다녀야 할 것은 아니잖아. 좀 연봉을 낮추고 회사를 더 넓게 보면 내가 일할 곳은 있겠지.' 마음이 편해진 걸 수도, 아니면 생각이 안이해진 걸 수도 있지만, 밤마다 열심히 했던 모습은 점차 줄어들게 되었고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치킨에 소주 한잔하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당시 저는 학교 기숙사에 머물고 있었는데, 기숙사의 4학년 학생들 중에는 먼저 취업에 성공해서 나간 친구들도 있었지만 저처럼 아직 직장을 잡지 못하고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들도 많았습니다. 우리는 저녁마다 한 방에 모여 배달 음식에 소주 도 한잔씩 하며 푸념도 하고 취업 정보도 공유했습니다. 이런 술자리 대화를 통해 쌓였던 '취준'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그런 자리였던 셈이죠.


저에겐 늘 함께 모이던 대여섯 명의 무리가 있었습니다. 수업도 같이 들으러 가고, 도서관도 같이 가고, 위에 말한 것처럼 가끔 저녁에 한 방에 모여 술 한잔하는 그런 친구들이었습니다.

어느 날 저녁 10시쯤이었을까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치킨에 소주 한잔 하자는데, 그중 한 녀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부르기로 하고 치킨 배달을 시켰고, 몇 녀석은 술을 사러 밖에 다녀왔습니다. 사러 나가던 한 친구가 저더러 보이지 않던 녀석 방에 가서 데리고 오라고 했습니다. 제 방은 1층이었고 그 녀석 방은 3층이어서 매우 귀찮았지만, 밖에 나가는 것보다는 덜 움직이니 별 불평 없이 녀석을 데리러 갔습니다.


방에는 다른 룸메이트는 보이지 않았고 이 친구 혼자 책상에 앉아서 무언가 열심히 하고 있었습니다. "뭐하냐, 다 모였으니까 내려가자." 살짝 당황해하는 듯한 모습에 더욱 궁금해진 저는 "뭐하는데?"라고 슬쩍 책상을 보았는데, 어느 회사에 입사 원서를 넣고 있던 모양이었습니다. 순간 너무 미안하고 당황해서 "앗, 미안하다. 내가 방해했네. 얼른 쓰고 내려와."라고 하며 방을 나왔습니다. 그 친구도 당황했는지 따라 나오면서 "아냐, 먹고 와서 쓰면 돼."라고 하며 절 따라 나섰죠.


둘이 방으로 향하는 길에 저는 특별한 생각 없이 물었습니다. "근데 어디 지원하는데?" 친구는 살짝 당황해 하며 어느 외국계 회사에 지원한다며 말해줬고, 지원 마감이 얼마 남지 않아 오늘 내일 사이에 다 끝내야 한다고도 말했죠. 그러냐며 고생 많다며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우리들은 모여서 또 술을 한잔하고 떠들고, 그렇게 그 밤이 지나갔습니다.


다음 날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리만큼 어제 일이 자꾸 생각나는 겁니다. 외국계라니... 그 친구가 물론 공부도 잘하고 멀끔한 녀석이긴 했지만, 당시 외국계 기업은 보통 신입을 뽑지 않고 대부분 경력직 위주로 선발하는 것이 관행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전까지는 단 한순간도 외국계 기업에 지원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을 만큼 제 관심 밖의 영역이었습니다.


자꾸 궁금해져서 검색해 본 그 회사의 구인공고에는 '신입공채'라는 네 글자가 떡하니 헤드라인에 박혀 있었습니다. '아, 그래서 이 녀석이 지원했구나.' 모집 요강을 보니 다른 국내 회사들의 공채 요건과 크게 다를 것이 없어서 '어? 나도 한번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저 말고도 많은 동기, 선후배들이 이 회사에 지원을 했었습니다. 서류에 합격하고 1차 면접을 보러 가는 길에 친구 녀석을 만났습니다. 조금 어색했지만 서로 웃으면서 응원을 해주었고, 아쉽게도 친구는 1차에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2차 면접에서는 다른 한 선배가 같이 올라갔지만 결국 통과하지 못했고, 운이 좋게도 저는 최종 면접까지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저는 한 국내 대기업에 입사한 상황이었고, 지원했던 외국계 기업의 최종 합격자 발표는 한 달 정도 남아있었습니다. 아무것도 보장된 것이 없는 상황이라 저는 합격한 회사에 일단 입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머니께서도 이름을 아는 회사여서 합격 사실을 말씀드렸을 때 너무 행복해하셨습니다. 고생 많았다 하시면서 다른 친척들께도 자랑하시곤 하셨죠.


처음 제 업무는 프로그래밍 개발이었습니다. 갓 팀에 배정되자 마자 제게 한 대리님이 자기가 내 사수라며, '츤데레' 경상도 남자 특유의 호기로 자신의 모든 것을 전수해 주겠다며 이것저것 챙겨 주셨습니다 하지만 개발에 서툰 저는 눈앞에 보이는 모니터안의 코드가 매우 따분하게 느껴졌었고 개발 교육이나 주어진 업무가 버겁게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더군다나 근무지가 여의도였는데, 바로 몇십 미터 옆 빌딩이 제가 지원했던 외국계 기업의 사옥이었습니다. 출근할 때마다, 혹은 점심 먹으러 밖을 오다닐 때마다 자꾸 딴생각이 들었습니다.


시간 날 때마다 그 회사의 최종 합격 페이지에 가서 새로고침을 누르던 일이 며칠쯤 반복되었을까요, 어느 날 나른한 오후의 사무실에서 합격 명단에 당당히 올라와 있는 제 이름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이게 꿈이야 생시야 하며 새로고침을 수십 번 눌러본 끝에 합격을 실감할 수 있었고, 주저함을 무릅쓰고 사수님께 먼저 말씀을 드렸습니다.


호쾌한 이 경상도 남자는 "안 좋은 회사 같으면 말리겠는데, 정말 좋은 회사니까 가서 잘해보라."며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습니다. 20여 일밖에 일하지 않았지만 퇴직 절차는 다 치러야 했습니다. 부서장에게 보고도 드려야 했고 인사부장 면담도 해야 했습니다.


마음은 이미 콩밭에 가 있었기 때문에 온갖 회유나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퇴사 서류에 사인을 하고, 그렇게 저의 짧은 첫 경력을 마무리했습니다. 근무 기간이 한 달이 채 안 되어 제 이력서에는 보통 이 회사의 경력은 포함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당시 근무할 때 급여일이 포함되어 있어 일한 만큼 급여를 수령했었고, 그래서인지 국민연금 납부 내역을 보면 제 커리어의 첫 번째 회사로 이 회사가 보입니다. 볼 때마다 그때 생각이 나곤 합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입사한 회사에서 저는 만 12년을 다녔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로 지금 회사까지 이직을 3번 더 했습니다.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모두 미국에 본사를 둔 외국계 기업들이었습니다.


영어를 유창하게 잘하는 것도 아니고 제대로 된 경력이 있어서 시작한 외국계 기업 경험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시작한 인생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나 결혼을 하고 세 아이를 낳고 지지고 볶으며 20년을 넘게 살고 있습니다. 당시 제 기억으로는 다니던 국내 기업과 옮겨 갔던 외국계 기업의 연봉 차이는 300만 원 남짓이었습니다. 그렇게 큰 차이는 아니었죠. 돈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섣부른 판단일 수 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프로그래밍 개발이라는 일이 좀 버겁고 제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옮긴 회사의 생활도 녹록지는 않았죠. 어느 조직에서나 경쟁은 늘 있었고 평가는 늘 위아래를 오갔습니다. 직급이 올라갈수록 회사의 기대치에 맞게 성과를 내야 했고, 만나는 다양한 고객들 또한 힘들게 하는 경우가 매우 많았죠.



제 인생에 하늘이 내린 복은 무엇일까요? 과거의 그 순간에 우연히 친구로 인해 알게 되어 지원한 회사, 300만 원 더 높은 연봉, 여의도의 그럴듯한 빌딩과 멋진 명함, 기존 회사와는 달랐던 주변 사람들. 이런 것들일까요?


저를 많이 아껴주셨던 첫 직장에서의 사수에게 제가 만일 프로그래밍을 제대로 배웠더라면, 지금 같은 시기에 나는 IT 구루가 되어서 AI를 선도하고 있었을 수도 있고, 또다른 국내 기업으로 이직해 승승장구하여 지금보다 더 많은 부를 이루고 사람들을 리드하는 인생을 살고 있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시간이 흘러서 행복을 깨닫고 과거를 돌아보면서 알아차립니다. 지금의 아내를 만나고 세 아이를 낳고 행복하게 살아온 인생 자체가 제 행복인 것을요. 제 인생에는 이렇게 걸어올 수 있도록 노력하며 계획된 순간도 있었지만, 이번 글에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터닝포인트도 있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그때 귀찮아서 3층 기숙사에 다른 친구를 보냈다면, 사수에게 너무 미안하여 그냥 남았다면, 인사부장의 협박에 겁이 나서 옮기지 않기로 했다면, 저는 또 다른 사람을 만나고 또 다른 가정을 꾸리고 또 다른 인생을 살고 있었겠죠. 그렇다면 제게 그토록 중요했던 순간들 또한 그저 스쳐 지나간 다른 순간이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상상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에게는 친구가 알려준 그 외국계 기업의 공채 정보가 하늘이 점지한 복이었습니다. 그러나 더 큰 복은 그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용기가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 선택을 믿고 그 안에서 제 나름의 행복을 만들어갈 수 있었다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돌이켜 보면, '하늘이 내린 복'이란 어쩌면 우연히 찾아온 기회를 알아보는 눈과, 그것을 잡을 수 있는 용기, 그리고 그 선택 속에서 행복을 찾아가는 지혜...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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