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한 번이 어렵지 두번은 쉽다

by 윤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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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동료가 가족과 유럽여행을 가기 위해 연말에 긴 휴가를 내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매우 행복해 보였고 너무 부러웠죠. 아무 눈치 보지 않고 장기간 휴가를 내는 것도, 비싼 경비를 감당할 수 있는 자신감도 모두 부럽기만 했습니다. 그때 저는 먹고사는 게 바빠서 가족과 함께하는 유럽여행을 한다는 것은 언감생심 꿈도 못 꾸던 시절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동료를 보고 나도 언젠가는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함께 꼭 가야겠다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제가 어린 시절 우연히 여행했던 유럽은 제게는 잊지 못할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거든요.


시간이 흘러 우리 가족은 싱가포르로 삶의 터전을 옮겼습니다. 이주한 지 1년쯤 되었을까요, 모두가 팬데믹으로 하루하루가 무척 답답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언뜻 통장을 보니 여유가 조금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몇 개월 뒤 들어올 보너스도 생각하니, 문득 꿈꿔오던 유럽여행을 이참에 해볼까 하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습니다. 우리가 그럴 돈이 어디 있냐며 아내는 계속 말렸지만, 훅 들어온 마음은 쉽사리 사그라들지 않았습니다. 급기야 저는 비행기 표를 검색하기에 이르고 마침내 괜찮은 가격의 베를린행 표를 발견하고 맙니다. 취소하려면 수수료가 꽤 드는 티켓이었지만 그냥 눈 딱 감고 결제를 해버렸습니다.


아내에게 적지 않은 핀잔을 들었습니다. 그래도 그때가 7월쯤이었으니 여행을 떠나는 12월 말까지 덕분에 우리 집 식탁에서는 여행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어느 도시를 갈까? 호텔은 어디서 지내지? 또 어디어디를 둘러볼지 온 가족이 깔깔대며 함께 여행 계획을 세웠었죠. 걱정만 가득했던 아내의 얼굴도 점점 밝게 바뀌어 갔습니다.


그렇게 가족은 일정을 하나하나 준비해 나갔습니다. 기차 티켓팅이며 현지 정보를 검색하는 것도 모두 서툴렀지만, 하나하나가 재미있었습니다. 아직 장기간 여행 경험도 없고 모두가 언어도 서툴렀지만, 우리는 즐겁게 여행 준비를 해나갔습니다. 가족의 첫 번째 유럽여행은 바로 베를린을 거쳐 프라하, 파리, 런던을 여행하는 일정으로 최종 결정되었습니다. 파리에 극성이라는 소매치기와 유럽 곳곳의 도둑 이야기에 겁을 잔뜩 먹기도 했었고, 아이들을 데리고 기내식도 없는 12시간의 비행이 걱정이 되기도 했었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떠난 여행지에서도 이런 저런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죠. 하지만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집으로 오는 택시 안에서, 아내와 아이들의 밝은 웃음소리는 엉겁결에 결정한 이 여행이 정말 잘했다고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그로부터 2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어느덧 큰아이는 대학 입시를 마쳤고, 둘째도 고등학교 입시를 마쳤습니다. 잠잠하던 제 마음이 또다시 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어쩌면 모두 함께 여행하기는 이젠 쉽지 않을 듯한데, 다시 한번 유럽? 한 번도 다녀왔는데 두 번은 못 가겠어? 좀 아껴서 다녀오면 못할 것도 없지!'


결국 중국을 경유해 밀라노로 향하는 스무 시간이 넘는 비행기 티켓을 결제하고 말았습니다.


첫 번째 여행만큼 들뜨지는 않았지만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방문할 도시와 관광지 등을 하나하나 정해 나갔습니다. 이전 경험 덕분인지 모두가 꽤 여유 있게 준비했습니다. 첫 여행처럼 그렇게 긴장되지도 않았고, 기차나 비행편을 살피는 것도 능숙해졌으며, 각 도시의 특징도 여유 있게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국내외 사이트를 찾아보며 뺄건 빼고 더할 건 더하고, 나름의 여행 노하우가 생겼다고 할까요? 전보다는 한결 수월하게 여행 준비를 할 수 있었습니다.


여행지에서는 항상 돌발 변수들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기차가 제시간에 오지 않아 다음 일정에 차질이 생기거나, 예약한 식당이 구글과 달리 문을 닫은 경우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두번째 여행에선 크게 당황하지 않고 여유 있게 대처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첫 번째 여행에선 "언제 다시 올지 모르니 가능한 많은 곳을 돌아보아야 해"라는 각오였다면, 두 번째 여행은 '무조건 여유 있게 돌아보자'라는 보다 편안한 마음이었죠. 매일 일찍 일어나 관광지를 돌고, 박물관을 가고, 맛집을 찾아다니다가 밤이면 피곤에 쓰러져 잠들던 여행에서 벗어나, 도시별 일정도 여유있게 늘리고, 하루에 한 가지만 계획했습니다. 반나절은 오히려 자유 시간으로 비워두었죠. 덕분에 우리는 여행지를 더 여유 있게 즐길 수 있었습니다. 느즈막이 일어나 한적한 도시를 거닐거나, 하고 싶은 것들을 그때 그때 즉흥적으로 즐기기도 했습니다. 컨디션이 떨어지면 숙소에서 자유롭게 쉬기도 했고요. 결과적으로 아주 만족스러웠습니다. 아이들도 아내도 좋은 컨디션으로 유럽의 아름다운 도시들을 마음껏 즐길 수 있었습니다.


밀라노-로마-아테네-암스테르담-루체른으로 이어졌던 두 번째 가족 여행은 욕심을 내 3주 정도로 다녀왔습니다. 그래서인지 시간적으로도 전보다는 여유가 있었습니다. 재미있었던 사실은, 지난번 여행에 비해 저와 아내는 체력이 부쩍 딸리는 듯 느껴졌는데, 아이들은 2년 사이 몸집도 더욱 커져 조금씩 듬직한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전보다 더욱 의젓해졌고, 그들만의 세상 경험도 많아진 듯 했으며, 영어도 익숙해져 여행 내내 마치 친한 친구들과 함께 여행하는 기분이었죠. 차를 렌트하거나,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주문할 때도, 또 공항에서 익숙지 않은 상황들을 마주할 때도, 옆에서 든든하게 아빠 엄마를 도와주던 아이들의 모습이 참 대견하고 고마웠습니다.


저에게 세 아이들을 모두 데리고 몇 주씩 여행 다녀오는 것은 매우 쉽지 않은 일입니다. 게다가 값비싼 유럽을 두 번씩이나 다녀오는 것은 더더욱 어렵죠. 돌이켜보면 처음은 마음먹은 것이 전부였습니다. 일단 저지르고 그 후 생기는 일들은 닥치면서 하나하나 해결해 나갔죠. 하지만 두 번째부터는 점점 꾀가 생기고 익숙해 지더랍니다. 경험하기 전에는 알 수 없던 것들이 하나씩 보이기 시작했고, 무엇보다 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 내 주변이 훌쩍 자라 있었습니다. 든든하게 성장한 그들이 있어, 또 어떤 모험을 계획할지 아빠는 오늘도 머리를 열심히 굴려봅니다.


"Han beon-i eoryeopji du beon-eun swipda"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쉽다) literally translates to "The first time is hard, but the second time is easy." This Korean proverb acknowledges that initial attempts require courage and often feel overwhelming, but each experience builds confidence and capability. In this essay, the author reflects on two family trips to Europe—the first born from an impulsive ticket purchase during the pandemic, filled with anxiety and meticulous planning, and the second undertaken with newfound ease and wisdom. Through these journeys, he discovers not only his own growth as a traveler but also witnesses his children maturing into reliable companions, transforming what once seemed impossible into a cherished family trad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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