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겉다르고 속다르다.

Outside Different from Inside

by 윤본

겉으로 드러나는 말이나 행동들이 정작 마음속의 생각과 의도와는 다름을 일컫는 속담입니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심심찮게 들을 수 있는 표현이죠." 어쩜 그사람이 그럴줄은 정말 몰랐어", "겉으론 멀쩡하더니 속으로는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하고 있었지? 역시 사람은 겉으로 봐서는 절대 알수가 없어" 등등 많은 이들이 믿었던 사람들로부터 배신을 당하거나 받아들이기 힘든 상처를 받을 때 실망에 가득차 내뱉는 말들입니다. 주로 사람의 위선적이거나 이중적인 태도를 비판하거나 경계할 때 많이 사용됩니다. 직장생활이나 학교 생활등 일상적인 사회 생활에서도 이런 모습을 많이 볼수 있으며 흔히 정치권에서도 이런 양태를 쉽게 볼수 있습니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속은 모른다는 말이 있듯이 작정하고 속이려 들면 어찌 그사람의 진짜 마음을 알수 있겠습니까. 더군다나 항상 사람을 믿지 못하고 의심에 가득찬 눈초리로 바라봐야 하는 것 또한 무척 피곤할 일일 것입니다. 부끄럽게도 저는 의도적으로 상대방을 속이기 위해 거짓 눈물을 흘려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정작 제 자신의 진짜 바람이 무엇인지는 알아채지 못한 채,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이 곧 진실인 것으로 믿고, 스스로를 속이며 살아온 시간 또한 있었습니다.


제가 한 대리 과장쯤 되던 연차였습니다. 직장 생활을 시작한지 7-8년차 정도 되었겠네요. 능력이 출중해 관심을 막 받던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또 뒤쳐지지도 않는 평범한 말단 직원이었던 저는 그래도 시키는 일 열심히 하고, 사람들 모임도 빠지지 않고 쫒아 다니던 무척 열심히 생활하던 직원이었습니다. 다행히도 부서내의 몇몇 고참 분들이 쓸만하게 보신 듯 했습니다. 당시 부서에서는 적지 않은 예산을 투자해 야심찬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었고 이를 진행할 팀을 구성하고 있었습니다. 팀에 스카웃된 시니어들은 하나같이 부서 내에서 한가닥 하시는 분들이었고 얼떨결에 전장에 불려온것 같았던 저는 내가 여기서 무슨일을 할수 있을까, 대형 프로젝트에 혹시 누가 되진 않을까 많이 긴장을 하고 있던 피라미였죠. 이미 투입된 수십명의 개발자들은 프로젝트룸에서 열심히 개발을 시작하고 있었고 어리버리 초보 프로젝트 관리자의 예상치 못한 기나긴 여정은 이렇게 시작하게 됩니다.


프로젝트는 기업용 소프트웨어 개발 프로젝트였습니다. 결과적으로 100억 넘는 매출을 올렸으니 성공적인 프로젝트였다고 할수 있겠죠. 그러나 샴페인을 터트리고 환호성을 지르고 술에 거나하게 취해 미래를 꿈꾸는 시간도 많았었지만 실상은 피곤하고 힘들도 지친 시간들도 반대로 많았습니다. 부서에서 난다 긴다 하는 능력있는 선배들이 각 비즈니스 파트를 맡아 리딩을 했었고 총괄 PM이 전체 프로젝트의 진척 관리를 하며 하나하나 맞춰나갔습니다. 저도 그중 하나의 파트를 맡아서 진행을 했었죠. 하지만 모두의 의견은 생각처럼 잘 맞물려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의견 충돌이 있는 날이 점점 많아 졌고 서로의 주장에 피곤해하며 급기야는 커뮤니케이션을 피하는 경우도 많아졌습니다. 개발자분들 또한 고급/특급 개발자이다 보니 (심지어는 저보다 12살 많은 띠동갑 개발자 분들도 계셨습니다) 그들의 경험이나 발언 또한 무시할수 없는 부분이었죠. 좌상향의 소프트웨어의 매출과는 달리 사람들은 점점 피곤에 찌들어 가고 사람에게 실망해 갔습니다. 팀을 떠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최초에 팀에 합류했던 선배분들도, 그리고 몇몇 개발자 분들도 일에 지쳐 사람에 지쳐 결국 팀을 떠나게 되었고, 면면이 화려했던 전체 팀은 총괄PM인 이사님과 저 그리고 주요 개발자 분들만 남고 다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비즈니스는 비즈니스였습니다. 계속해서 매출은 발생을 해야 했고 매출이 오르는 만큼 하는일도 많아져 그만큼 적은 인원으로 팀을 꾸려가기가 저도 슬슬 지쳐가기 시작했습니다. 게다가 이사님의 조직 관리 스타일도 상명하복을 강조하는 우리의 전통적인 부장님 스타일이셔서 본인의 의도와는 달리 조직원들에게는 강압적으로 보일 때가 많았고, 어쩌다 휴가 하루라도 쓰려면 아무래도 눈치를 엄청 봐야하는 서로간에 껄끄러운 부분들이 하나하나 쌓여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제게 어느날 타 부서에서 같이 일하자는 제의가 하나 들어오게 됩니다. 썩 내키는 자리는 아니었지만 당시의 저는 지금의 상황을 벗어 나고만 싶었습니다. 하지만 당당하게 다른일을 하겠다는 말을 차마 할 용기는 없었고, 저는 고민을 하다 술자리를 빌어 이사님께 문제의 거짓 고백을 하게 됩니다. 이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얼굴이 막 달아오릅니다. 전체적인 얘기의 흐름은 이렇습니다.


1. 현재 우리 팀에서 하는 일이 너무 자랑스럽다. 처음에 나를 뽑아 주셔서 너무 감사하다

-> (일이 너무 지겹다. 이사님 꼰대짓도 너무 피곤해요)

2. 그런데 경력이 이제 10년이 다되어 가다 보니, 아내도 조언을 하기도 하고, 다른 일을 경험해 보고 싶은 마음이 최근 들어 많이 생겼다.

-> (일도 힘들고 짬밥도 먹어가는데 힘든일 하기가 싫어요)

3. 그래서 사실 다른 회사로 옮기는 것 또한 고려하고 있다.

-> (오라는데는 없지만 지금 이 곳만은 빨리 뜨고 싶어요)

4. 최근에 타 부서에서 다른 포지션의 오퍼를 제의 받았다. 솔직히 마음에 내키지는 않았지만 아내는 여러 경험을 해보는 것 또한 좋을 것 같다고 한다.

-> (아내는 알지도 못한다. 그 포지션이 좋고 나쁘고는 모르겠고 이일이 아닌것이 너무 마음에 든다)

5. 만일 내가 떠난다면 내일을 누가 맡고 일이 어떻게 처리 될지 솔직히 너무 걱정이 된다

-> (알게 뭐냐, 어떻게든 일은 되지 않겠느냐)

6. 나로인해 팀에 피해를 끼치지도 싫고 다른 경험도 하고 싶기도 하고 마음이 너무 심란하다.

-> (조금 미안하긴 하지만 그동안 열심히 한다고 했으니 너무 미안하지는 않다)

7. 눈물 뚝뚝

-> (아 눈물짜는게 너무 어렵구나 배우는 아무나 하는게 아니야)


눈물이라니, 새빨간 거짓말도 모자라 눈물이라니, 세월이 지나 돌아보니 이사님도 이미 제 속마음을 다 알고 계셨을거라 생각합니다. 다시한번 얼굴이 달아오르네요.

연기가 통했는지, 알면서도 속아주셨는지 이사님께서는 니 생각을 존중한다며 가서도 열심히 하라며 등을 두드려 주셨고, 이렇게 겉과 속이 다른 숭악한 녀석의 계략은 결국 성공하게 됩니다.


그로부터 세월이 제법 흘러 싱가포르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었을 때, 저는 또 다른 형태의 '겉과 속'을 마주하게 됩니다. 이번에는 수영장이 있는 우리집 콘도에서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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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장 있는집. 외국 영화를 보거나, 동남아의 멋드러진 휴양지를 보면 언제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파란 수영장은 누구에게나 동경일 것입니다. 싱가포르에 오기전 여행을 다니면서, 그리고 티비를 보면서 나도 저런집에 살수 있을까? 저런 멋진 풀장에서 물장구를 치며 노는 아이들이 내 아이들이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한적이 여럿 있습니다. 어찌어찌 살다보니 지금 이곳에선 사는곳에 풀이 있습니다. 싱가포르에서는콘도 단지마다 대부분 풀장이 있어, 꿈꾸어오던 내집의 개인풀도 아니고, 비록 값비싼 월세에 허덕이며 사는 신세이지만 집앞을 나서면 바로 파란 풀장에 몸을 던질수도 있고 선선한 아침 저녁이면 아이들의 물장구 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기대했던 수영장에 발이 자주 가지지는 않습니다. 아니 5년을 살면서 다섯번도 채 안된 것 같습니다. 지나칠 때 들려오는 아이들 웃음소리도 듣기 거슬릴 때가 많고 어쩌다 물이라도 몇방울 튈 때면 표정은 구겨집니다. 딸아이들이나 아내도 강한 햇빛에 살이 탄다며 수영장은 절대 가지를 않습니다. 그나마 물놀이를 즐겼던 막내녀석조차 중학생이 되더니 발길을 딱 끊었습니다. 제가 생각했던 그림이 전혀 아니었습니다. 물안경이며 튜브를 챙겨 아침 저녁이고 신나게 물장구를 치며 새까맣게 그을린 얼굴로 한껏 웃음을 짓는 아이들을 상상했었고, 비키니 수영복을 즐기고 선탠을 즐기는 부부의 모습을 상상했었거든요.


자주는 아니지만 새벽에 콘도의 헬스장에 가서 가끔 운동을 합니다. 헬스장은 수영장의 맞은편에 있어 이른 아침 어두울 때 뛰기 시작하면 운동을 마칠때 쯤이면 새벽이 밝아옵니다. 운동을 마치고 수영장 앞에 의자에 앉아 쉬고는 합니다. 흐르는 땀을 닦으며 주위를 살피면 이제 동이 트고 세상이 밝아지기 시작합니다. 바로 그 때 물결하나 없는 고요한 , 그리고 새파안 수영장이 눈에 들어옵니다. 5분이고 10분이고 그 수영장을 지긋이 바라보고 있으면, 쉴새 없이 뛰던 맥박은 점점 잦아들고 열을 내던 땀도 서서히 식습니다. 눈이 시원해지면서 기분이 상쾌해지는것은 덤이지요.


떠들썩함, 웃음소리, 물장구 그리고 그런 모습들을 즐기던 그럴듯한 생활의 사람들을 동경하던 게 아니었습니다. 제가 진실로 느끼고 싶었던 것은, 내 눈과 몸에 주는 선물같은 시간, 지친 마음을 어우를 수 있는 편안한 분위기, 그리고 오로지 나만 느낄수 있는 그 순간의 고요함이었나 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가 원했던 것은 파란 페인트가 칠해진 수영장의 물색이었던 모양입니다. 오늘도 여전히 찌는듯한 한낮에 수영장을 지날라치면, 조그만 아이들의 웃음소리며 첨벙거리는 물방물이 제게 튀어옵니다. 유쾌하지 않지만 애써 거짓 미소를 지으며 후다닥 지나갑니다. 아무도 없는 아침 그 파란 물빛을 그리워하면서요 .


부끄럽게도 스스로 속을 숨기고 살아온 세월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멍청하고 아둔하게도 속을 못 알아채고 번지르르한 겉만 보고 살아온 세월이기도 합니다. 인생을 돌아보고 가족을 돌아보고 주변을 돌아봅니다. 스스로 잘 알았다 생각하는 것들 또한 그게 맞는것인가 내가 또 진짜 속은 모르고 살아가는 건 아닌가 돌아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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