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ive More Rice Cake to a Crying Child
누구나 살면서 자신의 필요와 욕구를 표현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우는 아이에게 떡 하나를 더 주는 것은 시끄러운 아이를 어르고 달래기 위해서만은 아닙니다. 아이의 울음속에는 배고픔이라는 그 나름의 절실함이 있을 테고, 무의식일 수도 있지만 표현하고자 하는 용기가 있으며, 그 마음을 알아차리는 엄마의 이해와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때로 우리에게 이렇게 가르칩니다. 자신의 필요를 드러내고 소통하려 노력하는 이에게 더 많은 기회가 온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보통 이런 처세에 대한 교훈은 실제로 겪지 못하면 피부로 와닿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몇 년 전 서울에서 근무할 때입니다. 갑자기 바뀐 회사 대표에, 또 그와 함께 회사로 스카우트된 외부 인원들로 매우 어수선한 시기였습니다. 당시 저는 내부 잡포스팅에 올라온 새로운 업무에 관심이 갔었고, 결과적으로 자만심과 안일함에 최선을 다하지 못해 당시 찾아왔던 기회를 놓쳐버렸습니다. 당시에 조직 변동도 잦고, 하던 영업도 신통치 않기도 하고, 뭔가 다른 기회가 있으면 그쪽으로 도망가고 싶던 생각도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해당 포지션에 자리가 나서 지원했을 때만 해도, 저는 참 편하게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해당 부서 매니저와는 이미 여러 해 동안 친분이 있었고, 새로운 업무지만 맡게 될 업무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으니까요. 그러나 "아무래도 내부 직원이 더 유리하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은 결국 제 스스로 발목을 잡게 된 족쇄가 되고 말았죠.
지원 과정에서 외부 후보자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저 형식적인 절차라고만 생각했지, 마치 내가 결정이라도 된 듯 생각했었고 면접 준비를 따로 열심히 하지는 않았습니다. 1차 면접일, 한국 매니저와의 인터뷰는 예상대로 매우 편하게 진행됐습니다. 서로 잘해보자며 웃으며 면접을 마쳤죠. 이어진 2차 면접인 본사 디렉터와의 영어 면접도 무난하게 넘어갔다고 자평했죠. 서로 웃으며 안부를 묻고, 어렵지 않게 대화를 이어나갔다고 생각했으니까요. 하지만 사실 바로 그것이 문제였습니다. 비록 외부였지만 경쟁하는 상황을 명확히 인지하지 못하는 듯 보였고, 포지션에 대한 의지도 절실해 보이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습니다. 예상을 깨고 외부 지원자가 최종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처음에는 저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건너 건너 면접관의 피드백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네가 떨어진 이유는 바로 질문 때문이야. 다른 경쟁자는 우리 부서의 미래에 대해, 자신의 역할에 대해 진지하고 깊이 있는 질문을 했어. 그의 질문에는 이 자리에 대한 절실함과 준비된 자세가 느껴졌어. 너와의 대화도 즐거웠지만 이 포지션에는 너보다 그가 더 맞다고 판단했어."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갈 정도로 매우 부끄러워서 얼굴이 달아올랐습니다.
기억을 돌이켜보면, 저는 기본적인 것들만, 가벼운 주제에 대해서만 질문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급여나 휴가 같은 분위기 파악을 못하는 질문을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 업무에 정작 중요한 것들, 이를테면 부서의 플랜이나 비전이라든가, 제가 그 조직에서 어떤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담긴 질문은 하지 못했습니다. 반면 그 외부 지원자는 이 속담에서도 알려주듯 본인이 원하는 것들을 적극적으로 표현했던 것이죠. 즉 진정성 있는 질문과 대화를 통해 자신의 열정과 준비된 자세를 보여주었던 것입니다.
이 부끄러웠던 실패 경험은 이후 제게 매우 값진 교훈이 되었습니다. 단순히 면접 기술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이는 그동안의 제 삶의 자세에 대해 돌이켜볼 수 있는 경험이었습니다. 익숙함이 주는 안일함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 자신의 열정과 포부를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그 표현이 진정성을 담고 있어야 한다는 것 등 여러 가지 느끼는 것이 많았죠. 이후 다른 회사로 이직할 때는 완전히 다른 자세로 임했습니다. 미리 지원하는 회사나 그 역할에 대해 할 수 있는 만큼 깊이 있게 공부했고, 제가 조직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들을 구체적으로 고민했으며, 이를 면접에서 진정성 있게 표현했습니다. 제 경쟁자가 성공했던 것처럼 저 역시 상대방으로부터 관심 있는 눈빛을 받을 수 있었고 겉돌지 않고 보다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주변 후배들에게 조언을 할 때면 이 경험을 이야기합니다. "질문을 해야 해, 관심을 보여야 하고, 그 질문 또한 상대방이 관심 있어 하고 잘 대답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해야 해. 그래야 한순간이라도 네가 주도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 이 속담은 단순한 표현의 중요성만을 얘기하지는 않습니다. 진정성 있는 소통과 열정의 표현이 얼마나 큰 가치를 지니는지를 우리는 배울 수 있습니다.
삶은 때로는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같은 교훈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줍니다. 제가 미국에서 겪었던 또 다른 경험은 이 속담이 직장이라는 세속적인 공간을 넘어, 영적인 차원에서도 어쩌면 깊은 의미를 전달하고 있음을 또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저는 독실한 크리스천은 아닙니다. 어린 시절 성당에서 세례를 받은 적은 있지만, 냉담한 지 수십 년이 넘었죠. 내향적인 성격 탓에 교회의 활발하고 역동적인 예배 분위기보다는 성당의 차분한 미사 방식이 더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교회보다는 성당을 선택했고, 그곳에서 세례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미국에서 몇 개월간 체류하게 되었을 때였습니다. 주변에서 성당을 찾지 못해 할 수 없이 같이 지내는 분들과 한인 교회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많이 불편했지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에 교인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고 식사도 하며 그렇게 주일을 지냈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함께 식사를 하면서, 순수한 호기심에 저는 성당과 교회의 차이점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저를 편안하게 해주셔서 그랬는지 먼저 제가 불편하게 느꼈던 것들을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했죠.
특히나 제가 당혹스러웠던 것은 바로 교인들이 소리 내어 울부짖으며 기도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방언이라 불리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눈물을 흘리며 양팔을 하늘 높이 들고 기도하는 모습은 성당에 익숙해져 있던 제게 너무나 생소했습니다. 차분하고 정적인 성당의 분위기에 익숙했던 저로서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이었죠.
그때 전도사님이 바로 이 속담을 빗대며 "우는 아이에게 떡 하나 더 주듯이, 하나님도 간절히 갈구하고 기도하는 자에게 더 큰 관심을 보이시고 응답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들의 교회 공간에서는 큰 목소리와 방언 기도는 바로 그런 간절함의 표현이라는 것이었죠. 당시 저는 기독교에 대한 의구심이 많았던 터라 솔직히 전도사님의 설명이 완전히 와 닿지는 않았지만, 그 설명에 담긴 그들만의 논리만큼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역시 저는 교회를 다니지는 않습니다만, 믿는 자들 가운데서도 이러한 표현의 문제는 그들이 믿고 의지하는 신에게 매우 중요한 영적 의미가 있다는 것이지요. 또 그때의 경험은 '표현'이라는 것이 얼마나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시였던 것 같습니다. 실패한 면접에서 깨달았던 '적극적 표현의 의미'가 교회의 영역에서는 이렇게 다른 모습으로 발현될 수 있다는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조용한 묵상이 나름의 표현이지만, 다른 집단의 또 다른 이에게는 열정적인 찬양이나 방언이 자신을 구원자에게 표현하는 방식일 수 있는 것처럼요.
결국 '우는 아이에게 떡 하나 더 준다'는 속담은 단순히 표현의 중요성을 넘어, 어느 영역에서나 우리 각자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진정성 있게 소통하는 것의 가치를 일깨워주는 교훈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의외로 가장 가까운 곳에서도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직장에서, 그리고 교회에서 경험한 '표현'의 중요성은, 놀랍게도 가장 친밀한 관계인 부부 사이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더욱 중요할지도 모릅니다.
부끄럽게도 저와 아내는 둘 다 감정이나 생각을 표현하는 데 상당히 인색한 편입니다. MBTI는 둘 다 I로 시작하는 내향형 사람들이죠. 그래서 부부싸움이 있을 때면 항상 비슷한 말들이 오갑니다. "그럼 그렇게 얘기를 하지 그랬어", "내가 어떻게 당신 속을 알아", "정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답답하네" 같은, 날 선 말들이 오갑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 중 하나가, 부부는 서로를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서로 말하지 않아도 다 알아주고, 이해할 수 있다고 하죠. 하지만 저희 부부를 보면,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아니 오히려 가장 가까운 사이이기 때문에 더더욱 정확한 표현과 소통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두 사람이 피를 나눈 형제자매처럼, 혹은 부모자식처럼 척하면 척, 아하면 어할 정도로 서로를 이해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니까요. 더군다나 표현이 서툰 I 성향의 두 사람이 만났을 때는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바로 오늘 아침에 있었던 일이 이를 잘 보여줍니다. 저는 보통 간단한 아침 식사로 낫또를 즐깁니다. 그런데 아내는 그 냄새를 좋아하지 않아 멀찍이 떨어져 앉곤 하죠. 그럼에도 매일 아침 저를 위해 냉동실에서 낫또를 꺼내 해동시켜 주는 일을 잊지 않습니다. 보통 먼저 일어나는 아내가 냉동실에서 낫또를 꺼내두면, 한두 시간 뒤에 일어난 제가 따뜻한 차를 준비해서 간단하게 해결하는 게 저만의 간단한 아침 루틴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늘 있어야 할 낫또가 보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가족과 함께 외출할 일이 있던 날이었는데, 평소와 달리 싱크대 구석에 늘 놓여져 있던 낫또 상자가 없었습니다. 좀 의아해서 아내에게 어찌된 일이냐 물어보니 아내는 그냥 "오늘은 안 했어"라고만 답을 합니다. 순간 서운함이 밀려왔고, 어이없는 마음에 목소리를 높여 불만을 표현했죠. 그제서야 아내가 설명을 했습니다. 평소처럼 낫또를 꺼내두었는데, 온 가족이 외출 준비를 해야 해서 시간이 부족할 것 같아 다시 냉동실에 넣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처음부터 아내가 이런 상황을 설명했더라면, 제가 그토록 서운해하지도, 언성을 높이지도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단순히 "안 했어"라는 말 한마디가 아닌, 자신의 생각과 상황을 조금이라도 표현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마음이 좀 미안해지기도 했습니다.
일상의 작은 순간들이 모여 우리의 관계를 만들어갑니다. '우는 아이에게 떡 하나 더 준다'는 속담은 어쩌면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깨달을 수 있는 교훈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회사 면접에 임했을 때는 자신감이라는 자만감 속에서 최선을 다해 준비하거나 포지션에 대한 의지를 표현하지 못했고, 갑작스럽게 해야만 했던 교회 생활은 만족스러운 상황은 아니었지만 그들의 낯선 표현 방식에 적잖이 당황하며 그들의 진정성 또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가장 가까운 아내와의 관계에서조차 서로의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있었던 게 현실인 거죠.
때로는 표현이 서툴러 실수할 수도 있고, 때로는 표현이 부족해 오해를 살 수도 있습니다. 어떤 때는 너무 과한 표현이 불편함을 줄 수도 있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계속해서 표현하고, 소통하고, 이해하려 노력해야 합니다. 속담처럼 자신의 필요를 알리고, 그 울음을 들은 주변이 알아차리고 따뜻한 마음으로 떡 하나를 더 건네주듯이 말입니다.
결국 이 속담은 단순한 처세술이나 생활의 지혜를 넘어, 어쩌면 우리 삶의 본질적인 모습을 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교회에서 기도하고 있는 아이나, 남편에게 억울하게 오해를 받고 있는 아내 등 우리는 모두 누군가에게는 울고 있는 아이이며, 동시에 누군가의 울음을 듣고 있는 어른이기도 합니다. 바깥 사회에서 그리고 가정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이 두 역할을 오가며 살아갑니다. 진정성 있게 표현하는 용기, 그리고 그 표현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따뜻한 마음, 이 두 가지가 이 오래된 속담이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전하는 깊은 메시지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