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우는아이에게 떡 하나 더준다

by 윤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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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살면서 자신의 필요를 표현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갓난아이 역시 배고픔이라는 절실함이 있었을 테고, 무의식일 수도 있지만 그만의 의지 표현일 수도 있습니다. 이렇듯 세상은 소통하려 노력하는 이에게 더 많은 기회가 온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보통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피부로 와닿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의외로 가장 가까운 곳, 가장 친밀한 관계인 부부 사이에서도 이를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부끄럽게도 저와 아내는 둘 다 감정을 표현하는 데 상당히 서툰 편입니다. 둘 다 내향형인 사람들이죠. 그래서 부부싸움이 있을 때면 항상 비슷한 말들이 오갑니다.

"그럼 그렇게 얘기를 하지 그랬냐", "내가 어떻게 당신 속을 알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정말 답답하네" 같은, 날 선 말들이 오고 갑니다.


혹자는 부부이기 때문에 말하지 않아도 모두 이해할 수 있다고도 합니다. 그렇지만 오히려 가장 가까운 사이이기 때문에 더욱 정확한 표현과 소통이 필요한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완벽히 다른 두 사람이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니까요. 더군다나 저희 같은 내향형의 사람들이 만났을 때는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저는 아침 식사로 종종 낫또를 즐깁니다. 그런데 사실 아내는 그 낫또 냄새를 질색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침마다 준비해 주는 일을 잊지 않죠. 보통 아내가 먼저 일어나 냉동실에서 낫또를 꺼내어 두면, 제가 한두 시간 뒤 일어나 따뜻한 차와 함께 먹는 게 저만의 간단한 아침 루틴인 셈입니다.

그런데 가족이 함께 외출할 일이 있던 어느 날 아침이었습니다. 평소와 달리 항상 있던 자리에 낫또가 보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어찌된 일이냐며 아내에게 물어보니 그냥 "오늘은 안 했어"라고 대답합니다. 저는 속으로 서운함이 밀려왔고, 어이가 없어 약간은 큰소리로 짜증을 부렸습니다.


몇 마디 날 선 대화가 오간 뒤, 그제서야 아내는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평소처럼 꺼내 두었는데, 그날따라 제가 늦게 일어났고 외출 준비를 하려면 시간이 부족할 것 같아 도로 냉동실에 넣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처음부터 이렇게 말해 주었더라면, 제가 그토록 서운해하지도, 언성을 높이지도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사정을 듣고 보니 마음이 좀 미안해지기도 했습니다.


스스로 표현하는 것의 중요함은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독실한 크리스천은 아닙니다. 냉담한 지 이미 수십 년이 넘었지만, 어린 시절에는 성당에서 세례를 받을 정도로 나름 착실한 신앙생활을 했었죠. 오래전 미국에서 어학연수를 할 시절이었습니다. 주변에서 한인 성당을 찾지 못해 할 수 없이 이모 가족들과 가까운 한인 교회를 나가게 되었습니다. 함께 예배를 드리고 식사도 하며 그렇게 몇 달을 지냈죠. 어느새 교인들과도 많이 가까워졌고, 순수한 호기심에 성당과는 달랐던 교회의 모습들에 대해 하나둘 물어본 적이 있었습니다.


가장 적응하기 힘들었던 것은 바로 사람들이 울부짖으며 기도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양팔을 하늘 높이 뻗기도 하는 모습은, 엄숙한 성당 문화에 익숙해져 있던 제게 너무나 생소했습니다. 그때 누군가가 "우는 아이에게 떡 하나 더 주듯이, 하느님도 간절히 기도하는 자에게 더 크게 응답하신다"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기독교인이 아니어서 그의 설명이 가슴속에 와닿지는 않았지만 그의 논리만큼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절대자에게 조용한 묵상으로 표현하던 그때의 나와는 달리, 다른 이들에게는 열정적인 찬양이 다름아닌 자신을 확실히 표현하는 방식이었을 것이니까요.


우리 집 냉장고에는 아이들이 즐겨 먹는 과자며 아이스크림들이 칸칸이 들어 있습니다. 아내가 마트에 갈 때마다 아이들 인원수에 맞추어 종종 사다 놓기 때문입니다. 간혹 아이들이 정말 좋아하는, 여기선 구하기 힘든 한국 과자라도 들어오는 날에는 냉장고를 오가는 아이들의 발길이 더욱 분주해지기도 하죠. 그런데 이 사랑스러운 아이들에게 과자나 아이스크림을 생각하면 골치 아픈 스트레스가 하나 있습니다. 다름 아닌 우리 집 냉장고 무법자, 바로 아빠입니다.


사실 저도 입맛이 아이들 입맛이라 아이들이 먹는 과자들을 꽤나 좋아합니다. 그래서 간식이 생각날 때면 냉장고 문을 열고 별 고민 없이 눈에 보이는 것을 그냥 집어먹곤 했죠. 나중에 아이들이 실망할 것도 알고, 자기 몫이 없어진 걸 알면 노발대발할 것도 알지만, '내가 또 사다 주면 되지' 하며 큰 신경쓰지 않고 먹곤 했습니다. 제발 애들 거 손대지 좀 말라고 아내도 종종 핀잔을 주지만 역시 대수롭지 않게 넘기곤 했습니다. 아이들은 또 아빠가 먹었냐며 삐지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괜찮아져서 사실 별다른 심각성을 느끼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무던한 아들 녀석과는 달리 두 딸아이들은 시간이 갈수록 좀 심각해지는 것이 조금씩 느껴졌습니다. 눈물까지 흘리며 토로하는 일이 종종 있었고, 정말 아껴두었던 것을 제가 먹어치워 버렸을 때는 꽤 오랫동안 방문을 닫고 나오지 않은 적도 많았습니다. 그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저 역시 계속 장난으로만 대할 수가 없었습니다. 여느 때처럼 냉장고를 열더라도 딸아이들 쪽은 자연스레 손이 안 가지는 것이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아이들이 싫어하는 일들을 안 하고 있더라는 것이죠. 아이들이 그런 표현을 하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저는 여전히 부엌을 들락날락하며 아이들 간식을 축내고 있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이 속담은 단순히 표현의 중요성만을 말하는 것이 아닌, 그 표현 속 내면의 진정성에 더 방점이 있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Give an extra rice cake to the crying child" is a Korean proverb that captures a simple truth: those who express their needs clearly tend to receive more. It is not about being demanding, but about the courage to communicate sincerely. In this essay, the author explores this wisdom through three quiet, everyday moments — a missing breakfast, a fervent prayer in an unfamiliar church, and a father who kept raiding his children's snacks. What ties them together is a gentle discovery: it is not the loudness of expression that moves people, but the sincerity behind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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