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숙맥(쑥맥)

Simpleton

by 윤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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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맥불변(菽麥不辨)’이라는 말에서 유래한 표현입니다. 한자 그대로 콩과 보리를 구분하지 못한다는 뜻이죠. 보통 앞 글자가 된소리로 발음되다 보니 ‘쑥맥’으로도 사용되지만, 정확한 표현은 ‘숙맥’이 맞습니다. 주로 지나치게 순진하거나 숫기가 없는 사람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처음 싱가포르에 이주하고 난 후, 가족들은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적응하기 위해 모두 힘든 시간을 겪었습니다. 그중에서도 막내인 아들 녀석이 아무래도 가장 힘들었을 것입니다. 학교에서 하는 말은 전혀 들리지 않았고, 수업 시간에는 졸음만 몰려왔다고 합니다. 같은 반 아이들은 쉬는 시간마다 장난을 걸며 괴롭히는데, 왜 그런지 이유도 모르겠고, 특히 중국어 수업 시간에는 “이걸 내가 왜 하고 있는지조차도 모르겠다”고 할 정도로 하루하루 스트레스가 많았다고 합니다.


당시 녀석은 한국에 있는 친구들과 카톡으로 소통하는 것이 지겨운 하루로부터의 유일한 탈출구였습니다. 아내와 저는 녀석이 이곳에서 친구를 만드는 것을 내심 바랐지만, 부모 마음처럼 그게 잘 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녀석이 친구들과 나눈 대화를 본 순간, 전혀 예상치 못한 내용에 저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녀석은 친구들에게 계속 말을 걸고 있지만, 친구들은 전혀 관심이 없어 보였거든요. 저는 화딱지가 나, 녀석을 방으로 불렀습니다.


“니 친구들이 니 메시지를 봤는데도 왜 대답을 안 해주는 걸까?”


순진한 아들 녀석은 아이들이 자신에게 관심이 없는 것도, 귀찮아서 읽고도 무시하는 것도 전혀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저 학원 때문에 바빠 대답이 늦거나, 아니면 실수로 깜빡한 걸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가슴이 아팠지만, 저는 냉정하게 말해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니 친구들은 너한테 관심이 없어. 네가 외국에 있으니 처음엔 조금 관심을 보일 수 있겠지만, 당장 내일 만날 수도 없는 친구인데, 계속 관심이 있을 수 있겠니? 이렇게 답도 안 해주고 읽고도 대답이 없는 건 바빠서 못 해주는 게 아니야. 너랑 대화하고 싶었으면, 보자마자 답장을 보냈겠지”

“…”

“너도 여기서 힘든 거 잘 알아. 하지만 너에게 관심 없는 거기 아이들에게 네가 자꾸 놀아달라고 하는 것도, 그 아이들에게는 어쩌면 부담스럽고 계속 귀찮게 하는 일이 될 수 있어.”

“…”

“그 카톡 이제 우리 쿨하게 지우자. 그리고 어렵더라도, 여기 왔으니 여기 친구들을 만들도록 해보자. 너한테도 그 편이 훨씬 낫지 않겠니?”

“…응”


그로부터 몇 년이 흘렀습니다. 어느덧 막내는 학교 생활에도 잘 적응을 했고, 현지 친구들, 다른 외국인 유학생 친구들, 그리고 여기 살고 있는 다른 한국인 친구들 등 나름 많은 친구를 만들었습니다. 더 이상 자존심 상하게 예전 친구들에게 메시지 보낼 일도 없었죠. 가끔 한국에 들어갈 때에도, 미리 여러 친구들과 약속을 잡고 나름대로 자신의 방문 일정을 알차게 보내는 걸 볼 수 있었습니다. 세상 분간할 줄 모르고 막 들이대던 예전 그 순진하기만 한 모습은 이제는 거의 사라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막내가 조금 긴장된 눈빛으로 조심스럽게 말을 건넵니다.

“아빠, 나 카톡 설치하면 안 될까? 교회 시연부에서 들어오라고 하는데, 자기들끼리 카톡으로 소통한대.”

“음… 아빠는 좀 별로인 것 같은데? 그냥 이곳 현지 앱으로 소통하면 안 될까?”

저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말했습니다. 몇 년 전, 자존심 상했던 상황이 다시 머릿속에 떠올랐거든요. 자기가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지도 모르고 있던 그때의 철없던 모습이 생각나니 다시 기분이 좋지 않아졌습니다.

“전처럼 한국 친구들한테 그렇게 놀아달라고 하다가 또 무시당하고 그럴 거잖아. 너는 그냥 그때처럼 기다리기만 할 테고. 아빠는 네가 그런 상황을 다시 겪는 게 진짜 싫거든.”


그런데 녀석이 차분하게 본인의 생각을 하나하나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빠, 나 그때처럼 어린 초등학생 아니잖아. 그때는 애들이 그러는 게 뭔가 사정이 있어서 그럴 거라고 생각했지만, 나도 지금은 그 정도는 알아. 나 이제 많이 컸잖아. 그리고 아빠가 걱정하는 게 뭔지 잘 알아요. 걱정하지 않게 교회 소통 용도로만 사용할게요.”


사실 처음부터 허락을 하려 했습니다. 이미 중학생이 된 아이의 핸드폰을 부모가 간섭한다는 것이 원래 말이 안 되는 일이죠. 단지 예전의 실수를 녀석에게 다시 한 번 알려주고 싶었을 뿐이었습니다. 진지한 얼굴로 말을 하는 녀석을 보고 있자니 한편으로는 우습기도 했지만, 그래도 어느새 내실이 단단해진 것 같아 무척 안심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분위기 파악 못 하는, 순진해 터진 아들 녀석은 아직은 확실히 숙맥입니다. 여우같은 누나들이 작정하고 장난을 시작하면 결국 곧이곧대로 믿어 버리고, 시키는 온갖 일을 바보처럼 다 해주기 일쑤거든요. 또 자기를 좋아한다고 하는 여자애에게도 말 한마디, 눈길 주는 것조차 무척이나 어색해합니다. 가끔은 녀석의 이런 모습이 못내 답답하기도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이 순수함이 세상에 물들지 않고 오래 남아 있기를 바라는 마음도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살다 보면 때로는 그런 순수한 마음이 사람들에게 큰 위로가 되기도 하고, 예상치 못한 곳에서 능력을 발휘하기도 하거든요.


아들은 앞으로 조금씩 더 다듬어지겠지요. 그저 적당히 세상 물정도 알아 가고, 적당히 녀석만의 순수함도 간직한 채 건강하게 성장해 나가길 바랄 뿐입니다. 나이가 들어 가면 조금씩 바래지려나요? 어쩌면 적당한 순수함은 평생 아들의 매력으로 남아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Sukmak (숙맥) is a Korean expression rooted in the idiom sukmak-bulbyeon (菽麥不辨) — "unable to tell beans from barley" — used to describe someone naively innocent or socially unaware. When the author's youngest son moved to Singapore, he clung to Korean friends through social media, oblivious to being ignored. A frank conversation forced him to face the truth and build new friendships locally. Years later, when he asked permission to reinstall the messaging app, his composed self-advocacy revealed how much he had grown — yet his endearing obliviousness remained. The father finds himself hoping that innocence never fully disapp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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