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Hearing Even with One's Ears
누군가가 건네는 말이나 충고를 주의 깊게 여기지 않고 대충 듣거나 무시한다는 말입니다. 사람이 누군가에게 말을 하면 목소리의 진동은 파동을 일으키고 귓구멍을 통해 들어오게 됩니다. 그렇게 들어온 소리는 외이도를 통해 고막으로 전달되고 고막의 진동으로 결국 알아듣게 되는 것이죠. 이렇게 자연스럽게 전달되어야 할 말소리가 귓구멍에 들어오기는커녕 귓등을 타고 쭉 미끄러져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는 것일까요?
가깝게는 아내가 제게 하는 잔소리나 제가 가끔 아이들을 나무랄 때 많이 쓰기도 하고 또 학교에서 말 안 듣는 아이들을 선생님이 타박할 때도 많이 이야기합니다. 몇몇 나랏일 하시는 분들이나 지역의 높으신 분들도 시민들이 이런저런 쓴소리를 건네곤 하는데 그래 봐야 전혀 변하는 게 없는 걸 보면 씁쓸하기도 하죠. 이렇듯 이 관용구는 한숨과 함께 자조적인 상황에 많이들 사용하곤 합니다.
다른 사람도 모두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부끄럽게도 저는 이 소리를 어릴 때부터 매우 많이 듣고 자라왔습니다. 바로 제 어머니한테서였죠. 방과 후에 집에 돌아와 옷을 벗어 빨래통에 넣을 때면, 양말은 늘 뒤집어지기 일쑤였고 어머니는 매일 똑같은 잔소리를 하시곤 하셨습니다. 또 멀쩡한 슬리퍼가 있는데 굳이 맨발이나 양말을 신고 욕실로 들어가 제대로 닦지도 않고 물 묻은 발로 거실을 철퍽거리며 돌아다니며 온 집안을 난리법석을 만들어놓는 일이 많았고, 저 녀석은 맨날 말을 해도 소용없다며 엄마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는다며 잔소리를 듣곤 했었죠.
한 달에 한두 번씩 아버지는 퇴근 길에 노란 종이봉투에 통닭을 사오시곤 했습니다. 온 가족이 빙 둘러앉아 수다를 떨면서 맛있게 먹곤 했죠. 그럴 때 이상하게도 저는 열 손가락을 다 써서 먹곤 했습니다. 이런 저를 어머니는 "세상에 너처럼 열 손가락 다 써서 먹는 놈은 처음 본다"며 제발 엄지와 집게손가락으로 깔끔하게 먹을 수 없냐며 엄청 타박을 하셨었죠. 시간이 좀 지나 한국에 양념치킨 열풍이 불었을 때는 제 열 손가락은 더 지저분해졌고 그럴 때마다 어머니의 탄식과 잔소리는 더 높아져만 갔습니다.
나이가 들었지만 지금도 저는 맨발로 욕실에 들어가고, 양말은 늘 뒤집어져 어머니가 하던 타박을 이제는 아내로부터 듣습니다. 아내는 어머니처럼 드센 잔소리는 아니지만 "당신 제발 내 말 좀 귓등으로 듣지 마요"라고 여러 번 얘기를 했습니다. 수십 년을 얘기해도 듣지를 않냐며 잔소리보다는 타박에 가까운 한숨이죠. 또 지금도 치킨을 먹을 때면 여전히 열 손가락을 다 씁니다. 우리 집 잔소리꾼 큰딸은 그럴 때마다 눈살을 찌푸리며 아빠 제발 깨끗하게 먹을 수 없냐며, 너무 지저분해서 같이 못 먹겠다며 엄청 면박을 주곤 합니다. 어쩌다 손가락을 쪽쪽 빨기라도 하면 정말 정색을 하고 기겁을 내곤 하죠.
그런데 양말을 뒤집어 벗는 사람이 가족 중에 또 하나 있었습니다. 이녀석은 치킨을 먹을 때도 신기하리만큼 열 손가락을 모두 사용해 먹어서 늘 누나들한테 핀잔을 듣죠. 그렇습니다. 범인은 막내아들입니다. 할머니에게 맨날 잔소리를 듣고 살던 제 아빠와 놀라우리만큼 닮아서, 혹시 이런 습관들이 저 때문에 생긴 습관은 아닌가 싶어 어쩔 때는 좀 미안하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등짝을 때리며 잔소리를 해도 수십 년이 넘도록 귓등으로도 안 들리는 말이 있는 반면, 진심으로 마음을 전하면 극적으로 변화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여느 부부처럼 저희도 곧잘 다투며 살았습니다. 지금은 많이 줄었지만, 연애 시절이나 신혼 초기에는 정말 자주 싸웠죠. 30년 가까이 다른 환경에서 자란 두 사람이 한집에서 부대끼며 살려니 어찌 모든 게 맞을 수 있겠습니까. 사소한 일부터 여러 가지로 의견 충돌이 잦았고 목소리가 높아지는 날이 많았죠.
저는 다혈질 성격이 있습니다. 흔히 욱하는 성격이라고들 부르죠. 가만히 있다가도 저 혼자 발작 버튼이라도 눌린 듯 혼자 욱해서 상대에게 막 쏘아대는 경우가 있습니다. 특히 의견이 달라 아내와 부부싸움이라도 할 때면 이런 성격이 잘 튀어나와 아내 말은 들으려 하지도 않고 저 혼자 마구 쏟아붓고 화내곤 하는 일이 많았죠. 그리고선 또 혼자 금방 풀어져서는 먼저 사과하기도 하고요. 부끄럽게도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듯 떠들어대고는 상대방 마음만 상하게 했습니다.
다툼이 진정이 되면 아내는 항상 그랬습니다. "오빠, 다음부터는 내가 조금 떨어져서 각자 생각을 좀 하자고 하면 말 좀 들어줘. 우리도 서로 진정하고 스스로 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렇게 부탁 좀 할게요" 하지만 욱하는 성격 탓에 막상 흥분 상태가 되면 아내의 부탁은 온데간데없고 생각이 나지 않고 또다시 똑같은 일이 반복되곤 했었죠. 그러던 중 언제인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런 모습이 저 스스로 매우 심각하다고 느꼈던 것 같습니다. 아내의 마음을 제대로 이해했더라면, 아내 말을 한 번 더 들었더라면 다툼으로 번지지 않았을 텐데. 혼자 성내며 가족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모습이 어느 순간부터 스스로 부끄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도 아내는 제가 완전히 고쳤다고는 생각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혈기왕성하던 시절과는 달리 지금은 아내가 한번 그렇게 말을 하면 저도 서서히 말수를 줄이기 시작하고 조금 시간을 갖고 진정을 하곤 합니다. 그러고 나면 한결 누그러진 기분을 느낄 수도 있고 과거에는 열 올리며 자기 주장만 하던 부부간의 언쟁도 지금은 보다 차분하게 정리가 되고는 합니다.
큰딸은 동생들에게 츤데레 같은 언니이자 누나입니다. 무뚝뚝하고 무심한 듯 툭툭 내뱉는 말과 달리, 뒤에서는 세심하게 챙겨주는 아이죠. 그래서 그런지 다른 가족들에게 건네는 말들이 다정다감하고는 거리가 먼 그런 녀석입니다. 아이의 이런 성격이 못내 아쉽고 안타까워, 녀석이 어릴 때부터, 동생들에게 좀 다정하게 대해 주라며, 아빠 엄마에게도 지금보다 더 웃으면서 착하게 말을 하라며 귀에 딱지가 앉도록 잔소리를 하곤 했었죠. 그러나 그런 제 바람과는 달리 큰애는 크게 달라지지 않아 보였습니다.
몇 년 전 어느 날도 저는 동생들에게 툭툭 거리는 큰애에게 또 그러지 마라며 잔소리를 하고 있었고 그날 아이는 작정을 했는지 눈물을 보이며 제게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아빠, 나도 노력하고 있어, 아빠가 보기에 안 바뀐 것처럼 볼 수도 있지만 내 스스로는 정말 많이 바뀌었어, 아빠는 모르겠지만 동생들한테도 좋은 말 착한 말을 더 하려고 노력하고 있어. 그러니 이제 나한테 그렇게 이야기 안 했으면 좋겠어"
순간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했습니다. 말을 듣고 안 듣고는 듣는 사람의 몫인데, 제가 이래라저래라 강요해왔던 것이 부끄러워졌습니다. 아내의 부탁으로 제가 스스로 반성하고 느꼈던 것처럼 다른 이가 하는 말을 귓등으로 넘기며 무시하든지 아니면 진심으로 마음속에 담아두고 노력하든지 그것은 듣는 당사자의 몫인 것임을 그제서야 깨달았습니다.
그 뒤로 아이를 바라보는 제 생각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생각이 달라지니 보이는 모습도 달라지더군요. 큰애의 따뜻한 말들이 제게 자주 들려왔고, 노력하는 모습도 더 크게 느껴졌습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하는 말을 상대방이 귓등으로 넘겨도 우리는 하하호호 웃으며 넘길 수 있습니다. 열 손가락을 다 써 가며 소스를 온갖 곳에 묻히고 지저분하게 닭다리를 뜯어도 가족들이 웃음으로 넘길 수 있듯이 말입니다. 하지만 경험이 쌓이고 세상을 살다 보면 계속 못 들은 척하고 내 멋대로만 하기에는 창피하고 미안한 순간들이 찾아옵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그랬듯, 큰애가 그랬듯, 그런 때가 오면 더 이상 타박하지 않아도, 등짝 스매싱과 잔소리를 하지 않아도, 우리 안의 선한 의지가 귓등을 타고 넘어가려는 그 소리를 꼭 붙잡아 가슴속에 새겨줄 테니까요.
This essay, titled "Not Hearing Even with One's Ears," explores the Korean idiom about ignoring advice and offers a thoughtful reflection on family communication, personal growth, and the nature of change. The author uses everyday family scenarios to illustrate how some messages persistently bounce off our ears while others pierce straight to the heart.
The narrative begins with childhood memories of the writer consistently ignoring their mother's nagging about inside-out socks and eating chicken with all ten fingers. These habits persist into adulthood, now drawing criticism from their spouse and eldest daughter. The writer's youngest son exhibits identical habits, perhaps influenced by observing his father.
The essay takes a deeper turn when exploring marital conflicts. The writer confesses to having a hot temper that prevented them from heeding their wife's requests for calm discussion during arguments. However, genuine self-reflection eventually led to meaningful change in their behavior.
A pivotal moment occurs when the eldest daughter tearfully explains that she has been trying to change her seemingly cold demeanor toward siblings, though her efforts may not be visible. This revelation makes the writer realize that listening—or not listening—is ultimately the listener's choice, and that change happens on individual timelines.
The essay concludes with the insight that while some words may slide off our ears for decades, when the time is right, our inner conscience catches these messages and plants them firmly in our hearts. It suggests that the phrase "not hearing even with one's ears" might actually represent patience and waiting rather than criticism, acknowledging that we all grow at our own pa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