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wangju native's first visit to Seoul
태어나긴 전라북도 전주에서 태어났지만 초중고 대부분을 전라남도 광주에서 보낸 저는 주변에서 어디 사람이냐고 물어보면 자연스럽게 광주사람이라고 말을 합니다. 이 속담은 많이 흔히들 사용하는 속담은 아니지만 마치 광주 사는 사람이 처음 서울에 갔을 때 모든 것에 신기해 하고 놀라워하는 것 처럼 처음 겪는 일을 매우 신기해 하며 어리둥절함을 이르는 말입니다.
서울에 직접 가서 겪었던 일은 아니지만, 어린 시절 서울에서 전학을 온 한 친구가 생각이 납니다. 초등학교 시절 걸죽한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동네 친구들과는 달리 오밀조밀 예쁜 서울말을 쓰던 조원영이라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같은 아파트에 살았었고, 두 집 모두 옜날 복도식 아파트의 맨 꼭대기 층인 15층이었죠. 우리집은 1508호, 원영이네는 1506호였으니 말 그대로 정말 가까운 이웃이었던 셈이죠. 등교나 하교할 때 함께 어울려서 학교를 오갔고 원영이네 집에 가서 노는 일도 많았고 반대로 원영이도 우리집에 와서 시간을 보내는 일도 많았습니다. 물론 어머니들끼리도 서로 잘 어울리셨던 걸로 기억합니다.
원영이는 모두에게 신기한 친구였어요. 무엇보다 녀석이 쓰는 서울말은 간질간질하면서도 뭔가 예쁜 느낌을 주었고 왜 그런진 모르겠지만 녀석한테는 사내들끼리 흔히 하는 험한 말도 잘 안 나오게 되더라구요. 심지어 얘와 대화하다 보면 내가 쓰는 말이 사투리도 표준어도 아닌 우스꽝스럽게 바뀌기도 했구요.
이런 원영이와의 추억에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장면이 있습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재잘대며 집에 오는 길에 동네 분식집에서 사이좋게 설탕 잔뜩 묻은 50원짜리 핫도그도 하나씩 해치우고 우리는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아파트에 들어서고 15층에서 엘리베이터를 내려 오른쪽으로 돌면 원영이네 집이 나오고, 1507호를 지나치면 우리집이 나오죠. 원영이는 "엄마" 하고 부르며 자기집 현관문을 열고 들어섰습니다.
저는 입 주위에 묻은 핫도그 설탕가루를 탈탈 털어내며 원영이한테 들어가라며 인사를 하고 뒤돌아서는데, 원영이 집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아줌마에게 건네는 원영이의 말이 작지만 또렷하게 들립니다.
"엄마! 웬 딸기야?"
'웬'이라니, 10여 년 짧은 생에 이런 단어는 책이나 티브이에서나 보았지, 생전 들어본 적도 써본 적도 없는 오글오글거리는 말이었습니다.
'이거시 머시당가'도 아니고 '어서 사왔능가'도 아닌 간질거리는 이 말투는 세상 참 이질적으로 느껴졌지만, 집에 들어섰을 때 손 씻고 와서 간식 먹으라는 어머니의 투박한 사투리가 그날따라 제게는 왜 그렇게 별로라고 느껴졌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원영이게게는 '세영'이라는 이름의 두살 터울 누나가 있습니다. 저와 원영이가 친구였던 것처럼 같은 나이의 우리 누나하고 친구였던 세영이 누나는 그 시절 주변의 광주 사람들에게서는 쉽게 볼 수 없던 좀 멋진, 요즘말로 쿨한 서울 취미를 가지고 있었죠.
Rick Astley는 당시 유명한 팝가수입니다. 제가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산 LP가 바로 이 가수의 'Never Gonna Give You Up'이라는 음반이었습니다. 우리집에는 '전축'(전기 축음기)이 있었지만 음반을 올리거나 테이프를 꽂아 음악을 듣는 가족은 사실 아무도 없었죠. 커다란 스피커와 함께 그저 거실 한 벽을 차지하던 장식용이었을 뿐 아무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세영이 누나는 처음 들어보는 팝송을 곧잘 따라 부르곤 했습니다. 그런 누나가 저는 이상하리만큼 멋져 보였습니다. 제가 관심을 몇 번 보이니 그럼 먼저 음반을 사서 들어보라며 'Rick Astley'를 추천해준 사람이 바로 세영이 누나였습니다.
당시 저는 영어를 전혀 읽을 줄 몰랐기에, 누나가 발음했던 대로 '리개슐리'라고 마음속으로 되뇌며 처음으로 레코드점을 찾아갔습니다. 정확한 철자도, 올바른 발음도 모른 채 그저 소리 나는 대로 기억한 구입한 '리개슐리 LP'는 사고나서야 제대로된 철자를 알수 있었습니다.
5천 원이 넘는 돈을 주고 산 첫 음반을 턴테이블에 올리고 바늘을 올리자마자, 들려오던 릭 애슐리의 파워풀한 사운드는 어린 제 가슴을 세차게 두드렸고 영어를 읽을 줄도 적을 줄도 잘 몰랐던 저는 소리 나는 대로 한글로 받아적어 노래를 흥얼거리곤 했습니다. 한글로 소리나는대로 적힌 영어가사를 따라 부를 때의 첫 설렘은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
세월이 흘러, 많진 않았지만 그렇게 사모았던 음반들도 다 어디론가 사라지고, 이사 오면서 오래된 구식 전축도 고물상에 넘기고 이젠 기억에만 남아 있지만 당시 세영이 누나의 그 고상했던 취미는 광주 촌놈의 눈에는 너무 멋지고 좋아 보이기만 했었죠.
어린 시절 아버지의 지방 발령으로 우연히 광주에 온 원영이네 가족은 제게 신기하고 놀라운 경험을 많이 선물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가 중학교를 진학하기 전 원영이 아버지는 다시 서울로 발령을 받아 가족들이 돌아가게 되었고, 이후 서로 편지를 몇 번 주고받긴 했지만 머지않아 연락이 끊기고 말았고 지금까지도 원영이네 가족은 그 때 그 모습으로 제 추억 속에 있습니다.
시간이 흘러 고등학교를 마칠 때쯤 대학 원서를 넣기 위해 서울에 처음 간 적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광주생원 첫 서울'인 셈이지요. 온갖 게 신기하고 처음 보는 것들 투성이인 제게 가장 신기했던 건 바로 서울의 복잡한 지하철이었습니다.
종로 3가역은 3호선과 1호선이 교차하던 서울에서 가장 붐비는 지하철 역 중의 하나였죠. 종로 3가에 내려서 아버지께 공중전화로 전화를 드렸던 기억이 납니다. 마치 아무렇지도 않듯이, 여긴 종로 3가라며, 공중전화가 보이길래 그냥 전화드렸다고 무심한 척 전화로 말을 했지만, 마음은 콩닥콩닥 대며, 통화중에 열차라도 들어와 시끄러울까 주변을 살피면서 아버지와 통화 했던 기억이 납니다. 훗날 들어보니 아버지가 집안 어른들에게 아들 서울 보내 놓고 잘 다니긴 할지 걱정을 많이 했는데, 혼자 종로 3가에 가서 전화도 했다고 이제 다 컸다면서 자랑을 막 하시고 꽤나 뿌듯해하셨다는 말씀도 하셨다고 하네요 ^^
그 뒤로 대학 시절, 그리고 직장 생활까지 서울에서 꽤 오랜 시간을 보냈습니다. 처음엔 모든 것이 낯설고 어색했던 서울 생활도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익숙해졌고, 한때는 서울 사람이 다 되어가는 줄 알았습니다. 원영이네가 그랬듯, 저 역시 삶의 흐름에 따라 여러 곳을 거쳐 왔네요.
지금은 서울을 떠나 또 다른 곳에 살고 있습니다. 처음 올 때의 걱정도 어리버리함도 이제는 많이 무뎌지고 익숙해졌죠. 앞으로 제게 남은 인생도 또 다른 새로운 서울을 겪게 될 수도 있고, 또다시 광주 생원은 새로운 것에 어리버리하고 두리번거리면서 서툴지만 시간을 두고 적응해 나가게 되겠죠.
커가는 내 아이들 역시 그들이 겪게 될 새로운 무대들도 결국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서울 살이를 오래한 광주 사람이 결국 서울 사람이 되어 가듯이 살아가다 보면 인생이 다 그렇게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걱정 속에 아들을 서울로 보내셨던 무뚝뚝한 아버지가 오늘따라 많이 생각납니다.
This reflective essay explores the Korean idiom "광주생원 첫 서울" (a Gwangju native's first visit to Seoul), which describes someone's wide-eyed wonder and bewilderment when experiencing something for the first time. Through warm personal memories and thoughtful observations, the author weaves a narrative about cultural identity, childhood friendships, and the universal experience of adapting to unfamiliar environments.
The narrative centers on the author's childhood friendship with Wongyeong, a boy who moved to Gwangju from Seoul due to his father's work transfer. The cultural contrast between Wongyeong's refined Seoul accent and the local Jeolla Province dialect creates moments of both fascination and self-consciousness for the young narrator. Small but vivid details—like overhearing Wongyeong asking his mother "What strawberries are these?" using elegant Seoul expressions—highlight the linguistic and cultural differences between the capital and provincial life.
Music becomes another cultural touchpoint when the author purchases their first LP record (Rick Astley's "Never Gonna Give You Up") after being introduced to pop music by Wongyeong's sister. The process of phonetically memorizing the foreign name as "rigaeseulli" before learning the correct pronunciation symbolizes the broader journey of provincial youth adapting to cosmopolitan influences.
The essay shifts to the author's own first experience in Seoul as a high school graduate applying for university. The nervous excitement of navigating Seoul's subway system and making a phone call from Jongno 3-ga station perfectly embodies the idiom's meaning. Years later, having lived in Seoul and subsequently moved elsewhere, the author reflects on how the initial bewilderment of new experiences gradually transforms into familiarity.
The narrative concludes with the universal observation that life continuously presents us with new "Seoul experiences"—unfamiliar territories that initially bewilder us but eventually become part of who we are. Just as a Gwangju native eventually becomes accustomed to Seoul life, we all adapt to new challenges throughout our journey, carrying with us memories of those who helped us navigate our first encounters with the unknown.
The essay beautifully captures the tender moments of cultural exchange, personal growth, and the bittersweet nature of remembering those who introduced us to new worlds but may no longer be present in our liv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