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료)
"Even the Governor of Pyeongan Province Can Refuse If He Doesn't Want It"
이 속담은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제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억지로 시킬 수 없다는 뜻입니다. 말그대로를 먼저 살펴보면 감사라는 벼슬은 지금으로 따지면 도지사정도 되는 자치단체장정도 되겠네요. 정확히 말하면 조선시대 종2품의 관직이었으니 정1,2품급인 정승 판서에 비하면 아주 높은 직급은 아닙니다. 그러나 속담에서도 알수 있듯이 평안감사는 아주 놀고먹기 좋은 보직의 대명사로 쓰였습니다. 한양에서도 멀리 떨어져 있으니 임금 눈에도 멀리 떨어질 수 있고 예로부터 명기라고 불리는 기생들도 많았으니 조선시대 한량들은 누구나 다 군침흘리는 자리였었죠. 흥선대원군이 조선의 주요 병폐중의 하나로 평안도의 기생을 꼽았을 정도로 술과 여자등 풍류를 즐기기엔 이만한 곳이 조선팔도에는 없었지요.
막내인 아들녀석은 지금 중학교 1학년입니다. 작은 규모의 국제학교를 다니고 있습니다. 한국에 있을때는 부모눈엔 나름 똘똘 하다고 생각되어 한 해 일찍 초등학교를 들어갔고 이곳에 올때 5학년으로 들어가야 했지만 유학온 많은 한국 아이들처럼 아들 역시 영어가 되지 않아 한학년 낮추어 4학년으로 들어왔죠. 4학년을 2년 다닌다고 장난스럽게 놀리곤 했지만 아이는 그럭저럭 적응을 잘 해나갔습니다. 다른 국가 친구들도 여럿 만나고 학생회 임원도 하고 나름 대외 활동도 하면서 학교 생활을 잘 적응해 나갔습니다. 하지만 그 속도는 조금 더딘듯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친구를 사귈 때도 선생님들과 커뮤니케이션 할때도, 외부 행사를 할때도 아이는 적극적이라기 보다는 조금은 수동적이고 뒤에서 천천히 따라가는 식의 속도였죠. 답답한 면도 있었고 한편으로는 걱정도 되었지만 이러나 저러나 아들은 잘 헤쳐나갔습니다.
둘째 누나는 녀석과 좀 달랐습니다. 항상 빠릿빠릿하고 적극적이고 어느곳에서나 자신감이 넘칩니다. 삼남매가 같은 학교에서 유학생활을 시작했지만 둘째는 1년후 공립학교에 당당하게 합격해서 지금은 싱가포르 공립학교에서 여전히 잘나가고(?) 있습니다. 싱가포르는 공립학교 교육이 매우 체계적이고 수준이 높아서 외국인들에게는 국가에서 주관하는 AEIS라는 시험을 통하지 않고서는 수학의 기회가 없고 게다가 이 시험은 매우 합격하기가 어렵습니다. 운이 좋았는지 둘째는 한번에 합격을 하였지만 같은해 같이 시험본 아들은 불합격 통보를 받고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죠. 그러나 영어도 좀 귀에 트이고 공부깨나 한다고 스스로도 자신감이 넘쳤던 그다음 해에도 아들은 다시 도전했지만 또 다시 불합격을 했습니다. 다행인건 실망감이 그리 커보이지는 않았습니다. 부모입장에서는, 둘째가 공립 학교 다니는 모습을 보면 학교 규모도 훨씬 크고 대내 대외 활동도 훨씬 많고 여러가지 다양한 스포츠도 경험할수 있어서 아들이 시험을 합격할 수만 있다면 더 큰 기회와 즐거움을 줄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탓에 어쩌면 아들에게도 일종의 가스라이팅을 한건 아닌가 반성도 됩니다.
이제 중학교 2학년이 되면 응시자체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올해 말에 있는 AEIS시험이 녀석에겐 마지막 도전입니다. 그간 두번의 실패와 그에 따른 실망하는 모습을 봐온 터라 다행히 저나 아내나 아들이 시험을 또 봐서 공립에 도전하는 것을 강하게 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 다른 아이가 경험한 다양한 학교생활이 아쉽기는 합니다.
자기전에 아들속을 떠봅니다.
“아들아, AEIS 시험 신청 기간인데 이번에 한번 더 도전 해볼꺼냐?”
“…몰라”
“아빠도 모르겠는데, 그냥 여러가지 생각이 드네”
“…..”
“작은 누나 보면 니가 공립에 가면 럭비도 하고 다른 학교 학생들하고 클럽 활동도 하고 더 많은 친구들 만나서 재밌게 놀면 더 좋을 것 같기도 하고. 근데 또 다른 한편으로는 너 지금도 되게 학교 잘 다니고 있고 친구들하고도 즐겁잖아. 지금 충분히 즐겁고 잘하고 있는데 굳이 변화를 주는게 과연 맞는건가 싶기도 하고 그러네”
“…”
“암튼 생각을 좀 해봐, 이번이 마지막이어서 다시 시험 볼수는 없으니까”
“…아빠”
“응?”
“솔직히 나는 새롭게 뭘 하는게 힘들어. 새로운 친구들도 그렇고 새로운 선생님고 그렇고 새로운 학교 건물, 교실 들어가는거, 이런게 나는 좀 힘들어. 그냥 지금 교실, 지금 건물, 여기있는 친구들, 이게 편하고 좋아. 학교 선생님들도 거의 다 알아서 이젠 얘기 하기도 편하고. 학교 규정도 이제 너무 잘 알고 있고. 그냥 나는 지금이 좋은 것 같아. 막 공립학교 가고싶다는 생각은 솔직히 안들어”
“그래....생각해보자”
그래, 니가 지금 시험을 본것도 그리고 합격한것도 아닌데 아빠가 별 시덥잖은 생각을 했구나. 아빠도 세상 비싸다는 산해진미를 다 내어와도 우리 엄마밥이 더 그리운것처럼 제일 중요한것은 니 마음이 편한것일 텐데 내가 생각이 과했구나. 너보다 인생을 조금 더 살아보니까, 사실 중요한건 그런게 아니더라. 아들아, 니 마음 편한대로 하자
This Korean proverb embodies a profound truth about personal autonomy and inner contentment. The Governor of Pyeongan Province was historically considered one of the most coveted positions in Joseon Dynasty Korea—a prestigious post far from the capital where officials could enjoy relative freedom, luxury, and the company of renowned courtesans. Yet the saying suggests that even such an enviable position means nothing if the person doesn't want it.
The essay explores this wisdom through a father's journey of understanding his son's educational choices in Singapore. The author's youngest son attends a small international school, while his more outgoing sister successfully transferred to a competitive Singaporean public school through the challenging AEIS examination. After his son failed the exam twice, the father found himself torn between wanting to provide better opportunities and respecting his child's preferences.
The pivotal moment comes during a bedtime conversation when the father asks about attempting the exam one final time. His son's honest response—that he finds new environments difficult and feels comfortable with his current school, friends, and teachers—becomes a revelation. The boy's words, "I just think now is good for me," echo the ancient proverb's wisdom.
Through this intimate family story, the essay illuminates a universal truth: that happiness cannot be imposed from outside, regardless of how objectively beneficial something might appear. The father's realization that his son's comfort and contentment matter more than external achievements reflects the deeper meaning of the Korean saying—that true well-being comes from within, not from society's definitions of succ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