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료
사람이 죄를 지으면 벌을 받고, 덕을 쌓으면 마음 편히 잘 살 수 있다는 말입니다. 유사한 사자성어도 많고 관련된 옛 고사들도 많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 대부분은 저와 같은 매우 평범한 사람들일 것입니다. 죄를 짓는다 한들 얼마나 큰 죄를 지을 것이며 덕을 쌓는다 해도 얼마나 대단한 공덕을 쌓으며 살수 있을까요? 대부분 저처럼 경찰서 문턱 한번 안 가본 사람들일 것이고 그저 주변에 피해주지 않고 스스로 도울 수 있는 선에서 서로 돕고 살아가는 정도, 그런 것이 우리네의 실제적인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각박해져 가는 세상이라고 뉴스에서 연일 떠들어 대지만 스스로도 주변에 도움이 되는 일은 적극적으로 하지는 못해도 무언가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만은 매우 거부감이 듭니다. 이마저도 아마 어릴 때부터 받아온 교육 덕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린 시절 제가 전주에 살 때의 이야기입니다. 당시 나이는 초등학교 1-2학년 정도로 기억합니다. 어느 날 누나를 따라서 피아노 학원을 가는 길에 의례껏 남매는 아파트 앞 왕복 4차선 도로를 무단횡단을 합니다. 누나는 저보다 키도 크고 늘 앞서서 갔으니 이미 먼저 건너갔고, 저는 그 길을 뒤따라가다 그만 달려오는 차가 급정거를 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더니 바로 뒤에서 달려오던 차가 갑자기 멈춰선 앞차를 들이받게 됩니다. 쾅 하는 추돌 소리가 났고 어린 저는 너무 무서워서 울음도 나오지 않았고, 몸만 덜덜 떨릴 뿐 움직일 수도 없었습니다. 먼저 건너간 누나도 크게 놀라 무엇을 어찌해야 할지 몰랐었고요.
완전히 정신 나가 있는 저에게 어떤 아주머니가 얼른 집으로 들어 가라고 합니다. 뭔가 내가 잘못한 것 같은데, 뭔가 나 때문에 차들이 사고 난 것 같은데 어찌할 바를 모르던 나는 아주머니의 채근에 그냥 집으로 달려가 버립니다. 달려가는 제 모습 뒤로 사람들이 저를 따갑게 쳐다보는 것 같았고, 집에 들어와선 아무것도 못하고 방에 들어가 벌벌 떨었던 기억이 납니다. 심장이 그렇게 빨리 뛰는지 그때 처음 느꼈습니다. 집에 왔지만 여전히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고, 경찰이 저를 잡으러 올 것만 같았습니다. 학원을 다녀온 누나가 별 말을 안 했던 걸 보면 (누나는 지금도 그 사건을 잘 기억하지 못합니다), 사람이 다치거나 차가 많이 파손된 사고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후 제게는 큰 트라우마로 남아 저를 많이 괴롭혔었죠. 반상회 등을 알려주던 아파트 게시판에도 혹시 경찰에서 나를 찾는 내용이 올라오지 않는지 불안에 떨었고, 사고 지점 근처를 지나칠 때면 혹시 누군가 날 알아보지 않을까 걸음을 재촉하고 재빨리 지나치곤 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한 겁많은 어린이에게는 상당히 가혹한 벌이었던 것 같습니다.
시간이 훌쩍 흘러, 서울의 강남에서 직장을 다닐 때였습니다. 근처에 계시는 작은아버지가 물려주신 연식이 조금 된 독일제 고급 승용차를 출퇴근용으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언감생심 내 주제에 무슨 외제차’ 라고 생각해왔던 제게 이 고급 세단은 스스로 산 차도 아니지만 참으로 가슴을 웅장해지게 만들더군요. 하루가 멀다 하고 깨끗이 세차하고, 잘한다는 광택 집에 가서 번쩍거리게 광을 내주고, 이 돈 저 돈 들여 낡은 부품들도 교체해주며 애지중지 아끼며 잘 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동료들과 회식을 한 후 여느 때와 다름없이 대리운전을 부르고 주차장에서 기사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곧 기사님께서 도착하셨고 주차된 차를 빼던 도중 예기치 못한 사고가 납니다. 전진을 하셔야 하는데 기어 변경을 깜박하고 그만 튀어나온 뒤쪽 조형물에 뒷범퍼를 쾅 하고 받으신 것이었죠.
너무 놀라 취한 술도 갑자기 확 깨는 것 같고, 화와 짜증도 많이 났지만 애써 참고 범퍼를 살펴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냥 넘어 가기에는 많이 패이고 깨진 곳도 있어 끝내 수리가 필요한 상황이었죠. 기사님께서도 당황하신 것 같았지만 보험처리 하자고 하셔서 그날은 집까지 조용히 갔습니다. 다음 날 차를 센터에 맡긴 후 차는 말끔하게 수리되어 제게 인도가 되었고 보험사에서는 렌트비라며 별도로 30여만 원도 지급하였습니다. 사실 수리기간 동안 지하철을 이용해서 출퇴근을 했지만 렌트 까진 필요 없겠다라는 생각에 왠지 공돈이 생긴 것 같아 한편으로는 기분이 좋기도 했었죠.
며칠이 지나 작은아버지와 통화할 일이 생겨 서로 안부를 묻던 중 차 수리 받은 일을 말씀드렸는데, 작은아버지 말씀이 그 기사분은 보험료가 많이 올랐을 거고 자기 부담금도 많이 냈을 거라고 합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너는 중고차 범퍼 깨끗이 수리한 것이니 너한테는 오히려 좋은 일이 아니냐. 니가 고기 사 먹겠다는 그 30만 원은 대리기사님께 드리는 게 어떻겠냐고 하셨습니다. 머리를 한대 맞은 느낌이었고 순간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통화가 끝난 후 작은아버지는 “積善之家 必有餘慶” 여덟 글자를 메세지로 주셨습니다. 기사님께 이제와 직접 말씀드리기엔 조금 멋적기도 해서 문자로 계좌번호를 묻고 문제의 돈 30만원을 입금했습니다. 기사님의 ‘고맙습니다’라는 회신에 뿌듯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부끄러웠습니다.
어린 시절 무단횡단을 하다 다른 이들의 차에 큰 피해를 준 한 어린아이는 이후 그만의 트라우마로 몇 년을 마음고생을 심하게 한 것으로 그 벌을 받았습니다. 잘하면 님도 보고 뽕도 딸 뻔한 한 철없던 40대는 비록 어르신의 조언에서 깨달았지만 나름 뿌듯한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에 어떤 복이 돌아왔는지도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사랑하는 가족과 무탈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이 다 이런 작은 것들이 하나 하나 쌓여서 그렇게 된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This personal essay explores the profound Korean proverb "죄는 지은 데로 가고 덕은 닦은 데로 간다" (Crimes lead to their due places, virtues lead to theirs), which embodies the universal principle of moral cause and effect. The saying reflects Korea's deep-rooted belief that our actions inevitably return to us in proportionate measure—wrongdoings bring their own punishment, while good deeds yield their own rewards.
The narrative unfolds through two contrasting episodes from the author's life. The first recounts a childhood trauma in Jeonju, where a eight-year-old's jaywalking caused a traffic accident. Though no one was seriously injured, the child endured years of psychological torment, constantly fearing police pursuit and avoiding the accident site. This innocent mistake became its own severe punishment, illustrating how guilt can create justice.
The second story takes place decades later in Seoul's Gangnam district. When a designated driver damaged the author's luxury sedan, insurance compensated him with 300,000 won for rental fees—money he initially viewed as unexpected profit. However, his uncle's wise counsel opened his eyes to the driver's financial burden from increased premiums. Following the Chinese idiom "積善之家 必有餘慶" (A family that accumulates good deeds will surely have abundant blessings), the author transferred the entire sum to the grateful driver.
Through these intimate revelations, the essay demonstrates how ordinary people experience the proverb's wisdom not through dramatic crimes and virtues, but through small moral choices and their quiet consequences. The author concludes with a humble reflection that his current happiness with his loving family might simply be the result of these small acts of conscience accumulating over ti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