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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방장 양조장 Oct 10. 2018

그 많던 '누룩'은 누가 다 먹었을까

그리고 누룩의 역사




제 아무리 비슷하다고 해도 전국 800여개가 넘는 양조장에서 만드는 막걸리의 맛은 다 다르다. 보통 이 다른 맛은 '어떤 합성감미료를 썼는가'에 따른 결과다. 그렇다면 합성 감미료를 제외하고, 우리나라 막걸리가 다양한 표현을 해내지 못하는데 1등 공신(?)을 한 재료는 무엇일까.


앞서 <알.맛.술>에서 다룬 쌀이나 물도 중요하지만, 오늘 풀어나갈 이야기의 주제는 바로 술의 맛과 향 그리고 색에 많은 영향을 주는 #누룩이다. 








누룩은 술을 만들기 위한 기본 재료로 곡류를 분쇄한 날재료에 수분을 주어 발효, 숙성, 건조시킨 것을 일컫는다. 보리(보릿겨), 귀리, 밀, 녹두 또는 쌀겨 등을 이용하며, 원료의 생산지역에 따라 누룩 속의 미생물은 다양하게 형성된다. 그 결과 술의 맛과 향 또한 달라지는 것이다. 


누룩은 분명 달랐을 것이다. 하지만 다양했던 누룩들은 일제시대와 근대화를 거치며 지역/집집마다의 특색을 잃게 되었고, 현재는 일본식의 흩임누룩을 사용하여 빚어지는게 일반적으로 자리잡았다. 




1. 다양한 형태의 누룩들


우리나라의 술빚기에서 절대적으로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누룩이다. 국어사전에서 정의한 누룩은 '술을 빚는 데 쓰는 발효제'로, 즉 술에 누룩을 넣는 행위는 발효를 촉진시키기 위하여 곰팡이와 효모를 더하는 것이다. 보리, 귀리 등을 적절히 혼합해 누룩을 만들기는 하지만 주재료인 밀로 만든 누룩을 최고 품질로 여겼다. 



#누룩의 종류

누룩은 주종에 따라 탁주용/약주용/소주용으로 구분짓고, 각기 만드는 방법이 다르며 원료/시기/형태 그리고 빛깔에 따라 각기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 

사용 원료에 따라 <밀누룩/쌀누룩/녹두누룩/고량누룩>
 분쇄 정도에 따라 <분국/조국/초국>
시기에 따라 <춘곡/하곡/추곡/동곡>

이외에도 각기 다른 이름으로 불리우는게 너무 많지만, 다 나열한다면... 읽는 여러분이 스크롤을 그냥 내릴 수 있다는 생각에 여기까지만 적고,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한상준의 식초독립>을 참고하길 바란다. 



#다양한 누룩틀

누룩의 종류만 다양한 것이 아니다. 각기 다른 지역환경의 발효조건 때문에 누룩틀 형태도 발전하였다. 역시 같은 원료를 사용한 술이더라도 지역별로 다른 전통주가 탄생했던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서울/경기/경상도 지역에서는 원반 모양과 사각형으로, 전라도/충청도에서는 원추형, 정방형 등으로 발달했다. 어떤 누룩은 짧은 시간에 숙성해야 하기 때문에 얇게 띄우기도 하고, 반대로 두꺼운 것도 있다.



#잘 띄워진 누룩 

다양한 누룩의 형태 중 본인의 상황에 맞게 띄웠다면, 이제 어떤 누룩이 과연 잘 띄워진 것인지 알아보겠다.

띄우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확인하는 방법은 쉽다. 실패했다면 분명 좋은 냄새가 날 리 없다. 단면을 잘랐을 때 내부까지 곰팡이 균사가 충분히 번식했으며, 황백색 또는 회백색 포자가 있고 특유의 고소한 향기가 있다면 좋은 술을 빚을 수 있겠다. 술 빚는 것도 큰 산이겠지만, 시작이 절반이라고 하지 않던가.



집집마다 가양주를 빚던 우리의 문화가 있을 때는 이처럼 서로 다른 형태에, 개성있는 누룩들이 존재했다.재래식 누룩에는 녹말 분해 효소와 여러 맛을 낼 수 있는 성분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는 지역에 따라 누룩 속의 미생물이 다르고 원료 곡류의 종류가 달라 다양한 술 맛표현이 가능했다.



주방장이 집에서 '직접'  띄워본 누룩






2. 사라진 우리의 누룩 그리고 우리술


다양성이 생명인 막걸리가 어느 순간부터 '획일적인 맛'으로 변했다. 현재는 전국에 3,000여 종류가 넘는 막걸리가 존재하고 저마다의 독특한 맛을 자랑하지만, 이는 합성감미료를 썼기에 가능한 일이었으며 만드는 과정은 대다수가 입국이다. 다양한 우리만의 누룩이 사라지면서 우리의 술맛도 비슷비슷해졌다. 

*입국은 일본의 누룩이다. 


우리 선조들은 집에서 막걸리를 만들어 마셨다. 그렇다면, 그 많던 가양주(家釀酒)는 다 어디로 갔을까? 누룩의 역사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가양주 문화에 대해 알아야하고, 자가 양조 탄압의 역사 그리고 주세법을 빼먹을 수 없다. 


역사적으로 우여곡절을 겪은 우리의 술, <지평막걸리의 입국실>, <명인 안동소주>



우리나라는 자가양조를 법으로 엄격히 규제해왔으며, 이 법은 지금까지도 적용되고 있다. 일제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공식적인 일제시대는 1910년부터 35년간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을사늑약을 맺은 1905년부터 우리의 주권은 빼앗긴 것과 다름없다. 왜냐? 주세법에서 그렇게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제가 1905년 4월부터 4년간 시행한 국내 주류실태 조사는, 본국에서의 지원없이 식민지에서 재정독립을 하기 위한 수탈로, 기존에 있던 주세법을 주세령으로 고치고 가양주에 무거운 세금을 부과하였다.


당시 우리나라 인구 1천만에 30만이 넘는 곳에서 술을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1930년 이후 가정에서 빚는 모든 술은 '밀주'로 분류되어 처벌의 대상이 되었고, 이는 가양주가 사라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자연스레 주정 공장을 전국 각지에 세우고, 이렇게 시작된 주정 대량생산으로 우리의 증류식 소주가 지금의 초록병 소주로 변했다. 국민들은 이렇게 주정으로 저렴한 값의 '싸구려 소주'에 익숙해져만 갔다.


1945년 독립 이후 정부는 기존 일제의 주세령을 그대로 이어갔고, 1961년에는 식량 부족에 쌀로 빚는 술을 전면 금지시키기 시작했다. 그나마 부흥할 기회가 있었던 가양주 문화는 통제에 금지까지 당하며 쇠퇴의 길을 걸었고, 힘들게 버텨왔던 우리술은 입지를 잃게 되었다. 그 결과, 지금 시대의 우리는 희석식 소주에 일본식 입국으로 빚은 막걸리에 길들어졌다. 이제는 이런 술이 전통으로 기억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게다가 사라진 지역 막걸리에 대한 재료, 맛, 누룩 등에 대해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 역시 사라져가고 있는 실정이다. 




3. 누룩 심폐소생술 : 한식연 누룩연구 조사


한때는 '국민술'로 칭송되던 막걸리의 미래가 불확실해지며, 그나마 전통 방식으로 만들려고 노력했던 양조장에서도 '입국'을 쓰기 시작했다. 일본누룩인 입국을 사용하며 다양성이 생명이었던 우리의 막걸리는 '획일적인 맛'으로 변해갔다. 심지어는 아직까지 전통의 방식으로 누룩을 만들어 판매하는 곳은 송학곡자와 진주곡자, 두 곳이며 부산의 산성막걸리로 유명한 산성누룩까지 포함하면 총 세 곳 정도에 불과하다.


세 곳 정도였지만! 다시 각광받는 가양주문화에 개인 도가에서 직접 누룩을 빚으며 양조하기도 하고, 여러 관심 덕분에 누룩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곳과 온라인 상에서 누룩을 판매하는 곳도 점차 늘고 있는 추세다.


직접 누룩을 디뎌가며 술을 빚을 때는 집집마다의 다양한 술맛이 존재했다고 한다. 그래서 한국식품연구원에서는 개성있던 그때의 술맛을 생각하며 우리의 토종 누룩과 효소를 발굴/개량/보급하고자 직접 나섰다. 생각만큼 쉽지 않은 과정이겠지만, 한식연뿐만 아니라 제조업체들도 개인 양조장에서 자발적으로 누룩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연구를 통해 다채로운 우리 누룩을 띄워나갔으면 좋겠다. 



다양한 우리술, 흥하자!  <명인 안동소주의 술박물관>, <한국가양주연구소의 내부사진>





우리 누룩은 아직 죽지 않았다.


돌아올 것이다. 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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