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약주 ① <송화백일주>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
"네가 강변에 살고 싶구나? 근데 강변 땅값이 얼마인 줄 알아?"
-1번가의 기적中
1467, 780
1467은 우리나라에 술을 만드는 모든 업체의 수이고, 780은 그 중 탁주를 만드는 양조장의 수*를 말한다. 이렇게 많은 주류업체가 술을 빚는데, 이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입지조건은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물이다. 예로부터 물이 모이는 곳에는 사람이 모이고, 사람 모이는 곳에 시장이 생기고, 재물이 쌓여 도시가 형성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많은 도시 중 물이 좋은 곳에는 양조장이 들어섰다. (그러니 강변 땅값이 비쌀 수 밖에!) 그 중 포천막걸리는 다른 지명을 사용한 막걸리들보다 더 유명할 법도 한게 지명의 어원부터 다르다. '물을 안고 있다'라는 뜻을 지닌 포천(抱川)은 예로부터 물 좋기로 유명한 지역이다. 앞선 글에서 이야기 한 <담은>의 일동막걸리를 포함하여 경기도에 위치한 20여개 막걸리 공장 중 9곳은 포천에 있을 정도라니, 말 다 했다.
* 2009년 1월 국세청 자료이므로, 2018년인 현재는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놀랍게도 막걸리 주성분의 약 90%는 물이다. 물론 탄수화물도 있지만 부피와 무게에서 물이 차지하는 비중이 90%가 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물이 술의 품질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좋은 물은 술을 발효 시키는 효모의 활동을 활발하게 도와주며, 유해균의 침입을 막는 역할을 한다. 또한 인을 비롯한 칼륨, 칼슘 등의 무기질이 대량으로 함유되어 있어, 물 자체 만으로도 달고 맛있다. (비싼 생수가 달게 느껴지는 이유가 바로 이것!)
철분이 함유되어 있는 물은 양조용수에 적합하지 않다. 아무리 인이나 칼슘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고 해도, 미량의 철 성분은 누룩에서 나오는 무색의 화합물과 결함해 술의 색을 적갈색으로 변하게 만든다. 이 밖에도 유기물이나 암모니아, 세균 등이 포함되는 물은 양조용수로 적합하지 않다.
이러한 조건을 모두 갖춰 '양조용으로 적합한 물'이 용출되는 곳은 생각외로 적다. 그렇기에 좋은 물이 나오는 곳에는 술 공장이 들어섰고, 포천과 문경, 단양, 완주 수왕사, 제주 등이 대표적이다.
소개하고 싶은 술이 여럿이지만, 이번 알고마시면 시리즈에서는 전북 완주 모악산의 수왕사(水王寺)라는 이름 그대로 우리나라 최고의 물맛을 자랑하는 곳에서 빚은 송화백일주를 만나보려 한다. 송화백일주는 수왕사의 법주*로, 술에 송홧가루를 넣고 100일 이상을 숙성시킨 술을 말한다.
'절에서 무슨 술이야'라고 생각할수도 있지만, 수왕사 사지에 곡차**라고 기록된 송화백일주는 수행하는 수도승에게 반드시 필요한 음료였다. 고산지대에 지어진 사찰이기에 기압차이에 의한 고산병, 냉병과 같은 병들은 스님들의 몸에 쉽게 찾아들었다. 이 병을 예방하는 수단으로 송홧가루, 솔잎, 오미자, 산수유, 구기자 등 좋은 재료로 술을 빚었다.
송화는 늦은 봄에, 솔잎은 수분이 빠진 가을에 채취한다. 채취한 솔잎과 송절을 물에 풀어 나온 송홧가루는 여러번의 말리는 과정을 거친다. 여기에 송화, 솔잎, 산수유와 오미자를 넣어 송화죽을 끓여 1차 발효 후, 찹쌀과 멥쌀을 넣기와 4번의 발효를 통해 청주를 빚는다. 이렇게 빚은 청주는 증류해, 다시 송화와 솔잎, 산수유, 오미자를 넣고 저온 장기 숙성시키면 완성된다.
송화백일주는 현존하는 유일한 승려의 술이다. 조선의 명승이자 작은 석가로 불린 진묵대사가 빚었고, 수왕사 주지스님에게만 대대로 비법을 전승한다. 현재는 대한민국 전통식품 명인 제1호 조영귀 명인(벽암스님)이 그 명맥을 잇고 있다. 신라시대부터 이어온 국내 유일의 사찰법주인 송화백일주는 한 해 2,000병만 생산하기에 더욱 귀한 술이다. 좋은 물로 빚은 한정판인 셈이다.
법주* : 쌀과 누룩을 주원료로, 덧술하여 빚는 술
곡차** : 절에서 술을 이르는 말
[송화백일주]
식품유형 : 리큐르/기타주류
알코올 : 38%
내용량 : 700ml
재료 : 쌀(국내산) 23.6% 찹쌀 11.8% 누룩 3.54%/ 기타 송홧가루 솔잎 산수유 오미자 구기자(3.54%) 꿀
유통기한 : 제조일로부터
도수는 38도 용량은 100부터 700ml까지 북과 주전자, 유리병으로 각기 다르게 구성되어 있다. 색을 보면 송홧가루를 사용하여 투명한 황금빛이 돌고, 솔잎이 주는 소나무의 청아한 향과 더불어 독특한 향을 느낄 수 있다. 목넘김은 38도답게 제법 묵직하다.
스님들이 정진하는데 병마와 싸우기 위해 만든 술이기에 나물이나 버섯 외에도 사찰요리와 함께해도 당연 좋지만, 송홧가루의 은근한 단맛에 떡갈비와 같은 육류와도 잘 어울리는 편이다.
전수자의 말에 의하면 이 술은 한 번에 많이 마시는 술이 아니라고 한다. 도수의 높고 낮음을 떠나, 한 모금 속에 진묵대사가 남긴 곡차의 문화를 천천히 즐겨보았으면 한다. 더불어 맛있는 물로 만든 술은 다르다는 것을 느껴본다면 더 좋겠다.
송화백일주를 한모금 넘기며 자신있게 외쳐보자.
"니들이 물맛을 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