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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방장 양조장 Sep 26. 2018

하얀 구름은 '쌀' 맛일까?

그리고 프리미엄 막걸리 ②



백세*하여 3-4시간 불린 뒤 물기를 뺀 햅쌀은 새하얗고 매끈거리며 통통한 자태를 뽐낸다. 고두밥은 몇 사람이 숨어도 모를 정도로 큰 솥에 쪄준다. 뜨거운 김이 올라오기 시작하고 어느새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의 증기로 가득 찼다. 알맞게 잘 쪄졌다. 잘된 고두밥은 밥알 가운데 흰 심이 없고 투명하다. 윤기는 또 어떠하고. 자르르 흐르고 냄새는 또 어찌 좋은지. 누가 보기 전에 입으로 재빠르게 가져가 본다.


 ‘하아- 어후 뜨거워-‘


금방 무친 겉절이 하나 올려 먹고 싶은 맛이다.



백세(百洗)*  : 쌀을 백 번 씻음








우리나라 포도의 재배 환경이 좋았더라면 막걸리나 소주 대신 과실주가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은 쌀과 같은 곡물을 주로 재배하는 나라이기 때문에 곡주와 증류주들이 대표적이다. 이 술들이 발효주로는 막걸리와 청주, 증류주로는 소주와 백주의 형태로 나타났다. 즉 각 나라의 자연환경에 따라 각기 다른 원료와 제조방법을 통해 다양한 술이 탄생되었다.  




1. 쌀의 종류



쌀의 원산지는 <아시아 대륙 동남부의 인도>에서 <중국 남부에 걸친 열대와 아열대 지역>이다. 쌀은 분류 기준에 따라 다양한 종류가 있다. 대표적으로는 자립형인 인디카와, 단립형인 자포니카, 중립형인 자바니카(특성 및 형태가 인디카와 매우 유사)로 구분할 수 있다. 


대체로 쌀알이 둥글고 작으며 밥을 지었을 때 끈기가 있는 자포니카종은 우리나라를 비롯해 일본과 중국 등에서 사용된다. 반면 인디카는 쌀알이 가늘고 길며, 밥을 지었을 때 끈기가 적다. 주로 인도와 동남아시아, 남아메리카 등에서 생산된다. 인디카는 자포니카에 비해 아밀로오스 함량이 많아 푸석하고 전분 조직이 단단한 것이 특징이다. 사실 술을 빚기 위해서 전분이 제일 중요하다. 하지만 인디카는 핵심인 전분이 부족하기 때문에 인디카를 재배하는 지역에서 해당 쌀로 술을 빚는다는 것은 수입산 쌀로 빚는 곳이라 생각해도 무방하다. 



(좌) 자포니카, (우) 인디카







2. 일반 쌀과 술 제조용 쌀(양조 적성)



곡주를 주로 취급하는 우리에게 술을 빚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쌀이다. 양조용 쌀은 보통미보다 굵고 쌀의 중심부에 하얗고 불투명한 심백이 있는 것이 큰 차이점이다. 


심백은 일부 멥쌀 품종에서 쌀알 중심 부근에서 희고 불투명한 부분이 관찰되는 것을 말하며, 물의 흡수나 당화를 쉽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심백이 있는 쌀은 흡수성이 양호하고, 효소분해에 대한 감수성이 크며, 곰팡이 균사의 과정이 용이하므로 양조에 매우 적합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 국순당에서 사용하는 '설갱미'만이 양조용 쌀이며, 이외 여러 기업에서도 술을 빚기 위한 전용 쌀 재배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좌) 일반 쌀과 양조용 쌀의 차이, (우) 쌀의 특징







3. 우리나라의 쌀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다른 아시아 국가의 식문화 공통점은 쌀이 주식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쌀은 생김새도, 밥을 지었을 때 느끼는 식감도, 맛도 다르다. 앞에서까지는 대표적인 쌀 두 종류인 자포니카와 인디카, 그리고 일반 쌀과 일본에서 사케를 만들 때 주로 사용되는 양조용 쌀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술을 빚을 때 어떤 쌀이 이용될까? 


멥쌀과 찹쌀은 우리나라에서 술 제조에 많이 사용되는 쌀이다. 앞서 설명한 '설갱미'를 제외하고, 우리나라는 일본의 양조용 쌀처럼 심백이 있는 쌀이 아닌 일반 주식용 쌀을 이용한다. 괜히 이름이 양조용 쌀은 아니겠지만, 다 나라마다 사정은 있기 마련이다. 


청주 위주로 발전한 일본은 쌀을 최대한 도정하여 가치 및 품질을 개선해 나가야 했기 때문에 양조용 쌀이 발전되었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식량난에 탁주는 식사 대용 및 영양분이기도 하였으며, 청주와 약주는 양반들의 술이었다. 때문에 최대한 쌀을 깎은 도정미보다는 다양한 영양 물질들이 있는 주식용 쌀로의 양조가 더 적당했다. 



도정은 제조하고자 하는 주류의 특성에 맞게 




청주처럼 당과 풍미를 중요시 여기는 술이라면 무조건 도정을 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일본에서는 도정미를 위한 쌀이 아니라 양조용 쌀을 개발하고 있고, 우리나라 역시 최근 '쌀 품종 별 특성'을 나눠 더 나은 술 제조를 위해 활용하고 있다. 


우리 쌀은 대부분 여러 쌀이 섞인 채 판매되기 때문에 <쌀 품종별 막걸리 제조 특성>을 연구한 자료를 현실에 적용시키기 어렵다. 고작 첫걸음마를 땐 수준에 불과하지만, 몇몇 양조장에서는 해당 지역의 최고급 쌀을 원료로 하여 체계적으로 술을 만듦으로써 차별성을 두고 있다. 


그래서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프리미엄 막걸리는 지역 쌀에 대한 자부심 하나로, 일반 쌀 보다도 비싼 햅쌀을 이용하고 있다. 또한 막걸리라고 하면 고두밥이 기본이지만, 쌀을 찌지 않고 생쌀을 발효해 빚는 등의 차별성으로 막걸리의 다양성과 함께 고급화까지 시도하고 있다. 그렇다면 차별화된 이 막걸리, 한 번 만나보자.







주방장이 들고 온 두 번째 프리미엄 막걸리는 하얀 구름은 무슨 맛일까? 에서 시작한  1932포천일동막걸리의 '담은'이다. 바나나는 하얗다라는 우유 광고가 문득 생각나면서, '쌀도 하얀데, 막걸리도 하얗지 않나?'라는 의문이 들었다. 나중에 더 알아보겠지만, 막걸리의 색은 누룩 제조에 사용한 곡류의 종류와 원재료에 따라 누렇기도 하고 흰색을 띠기도 한다. 하지만 이번 막걸리는 '뽀얗다'. 과연 이들이 담은 막걸리는 어떤 구름 맛을 담아냈을지 주방장이 한 번 마셔보겠다.  






ㄷ·ㅁㅡㄴ, 멀리서 보아도 보틀에서 가장 먼저 확인할 수 있는 글자다. 한지 느낌의 포장재가 입구 부분을 덮고 있고, 라벨은 볏짚이 연상되는 줄로 정갈하게 묶여있다. 그래서인지 투명한 플라스틱 병임에도 불구하고 완만한 곡선을 살린 고급스러운 전통 백자에 담긴 막걸리 같다. 또한 뒤편에는 술의 원료가 100% 국산이어야만 받을 수 있는 황금색으로 적힌 우리술 품질인증 마크도 자랑스럽게 찍혀있다. 


"가"형은 품질인증을 받은 모든 제품에 사용할 수 있다.

"나"형은 품질인증을 받은 제품 중 주원료와 국(麴)의 제조에 사용된 농산물이 100% 국내산인 경우에 사용할 수 있다. 



(좌)우리술품질인증 마크가 표시되어 있는 '담은', (우)사진출처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담은'은 생막걸리로 알코올 도수는 6%, 용량은 750ml로 구성되어 있다. 완전 발효된 막걸리이기에 탄산은 매우 적은 편이다. 침전물들을 잘 섞기 위해 마구 흔들었음에도 넘침 현상은 일어나지 않았다. 우유처럼 깔끔한 유백색을 띄고 잔에 따를 때부터 마치 생크림을 따르듯 진득한 텍스쳐를 느낄 수 있다. 


[ 담은 750ml ]


종류 - 생탁주

지역 - 포천

도수 - 6%

탄산 - 매우 적음

원료 - 정제수, 쌀(국내산), 입국, 효모

가격 - 1만 원 이상



입에서 처음 느껴지는 맛과 향은 바나나, 과일향으로 적당한 단맛에 크리미 했다. 은은한 단맛과 기분 좋은 산미는 매력적인 조화를 이루며, 끝 맛으로는 쌀음료인 아침햇살과 같은 담백한 쌀맛이 느껴졌다. 포천일동막걸리에서는 이 맛을 표현하기 위해 포천시의 햅쌀과 전통 누룩에서 균주를 뽑고, 합성감미료가 첨가되지 않은 원료를 사용한다. 또한 생쌀 발효와 미생물 조절 발효방식의 공법을 이용해 부드러운 맛, 적절한 바디감과 풍미가 특징이다. 








'하얀 구름은 어떤 맛일까'라는 생각은 어릴 때 누구나 해봤을 것 같다. 성인이 되어서야 하얀 구름의 맛을 보았고, 이제 알았다. 그는 고소한 쌀 음료이며 마스카포네 치즈와 부드러운 생크림을 연상시키는 질감이고, 잘 익은 바나나, 그리고 상큼한 플레인 요거트의 풍미가 조화를 이루는 맛이었다. 


하얀 구름 한 잔, 잘 마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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