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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방장 양조장 Sep 19. 2018

우리술, 편견을 깨다

그리고 티타늄만큼 견고한 '편견'



대충 아는 것은 아예 모르는 것보다 위험하다. 새로운 시도를 하지 못하게 거리감을 만들어내기 때문일까. 우리술이 특히 그럴 것이다. 사람들은 우리술에 대해 알고, 들어는 보았지만 막상 술잔을 들기까지는 오래걸린다. 그래서 우리술에 대한 기본부터 시작했다. 알고마시면 더 맛있는 우리술 1편 - 막걸리의 빨간 속살에서 주세법상 정리되어 있는 우리술/전통주의 정의를 다루었고, 그 범위에 대해 살펴보며 우리술 기본을 탄탄히 다졌다. 이번 편은 기본편에 이은 <우리술에 대한 편견 깨기> 심화과정이다. 자신있게 우리술 잔을 들기까지 망설여질 독자들을 위해 어려운 술 이야기를 간단하게 전달하려고 주방장이 묻고 대답한다.


우리술에 대한 흔한 편견을 아래 5가지 주제로 문답하며 깨트려보겠다. 


1. 더 많은 대중화가 필요한 우리술

2. 술의 부재료는 시대의 흐름과 함께

3. 1년 이상도 보관 가능한 막걸리

4. 다시 찾아오는 고도주 시대

5. 환영합니다! 이번에 내리실 역은 '우리술 세계'역 입니다.












1. 우리술은 막걸리다?



막걸리는 분명 우리술이 맞다. 하지만 반대로 우리술에 꼭 막걸리만 있는 것은 아니다. 먼저 주류의 종류에는 발효주(탁주, 약주, 청주, 과실주, 맥주), 증류주(소주, 위스키, 브랜디, 일반 증류주, 리큐르) 그리고 기타주류와 주정이 있다. 그렇다, 이렇게 종류도 생각보다 많고, 속으로 파고들면 더 복잡한 세계이다. 여러 사람이 우리술하면 바로 막걸리를 떠올리는데는 다 이유가 있다.



#복잡한 관계

'약주랑 청주랑 뭐가 다르지? 소주랑 일반 증류주는 왜 구분지어 있지?' 이렇게 질문이 떠오르는 것이 당연하다. 위에 언급되어 있는 술들은 확실하게 구분되어 있다기 보다 오히려 서로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술의 대중화 과정을 통해 그 복잡한 상관관계를 살펴보자.



#고려시대의 우리술

"고려에는 찹쌀이 없어 멥쌀과 누룩으로 술을 빚는다. 술맛이 독하여 쉽게 취하고 빨리 깬다. 왕이 마시는 술은 양온서에서 빚는다. 청주와 법주 두 가지가 있고 질항아리에 넣고 명주로 봉해 저장한다. 그러나 서민들은 양온서에서 빚은 것과 같은 술을 얻기 어려워 맛이 박하고 빛깔이 짙은 것을 마신다."

우리술 대중화의 시작은 밀 재배가 한창인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위 문구는 송나라 사신 서긍이 고려에 머물며 기록한 고려도경(인종 원년 1123년 간행)에 적힌 글이다. 이 글에서 언급한 '맛이 박하고 빛깔이 짙은 것'에 해당되는 술은 탁주이다. 당시 귀족은 맑은 술인 청주를, 서민인 일반 백성들은 숟가락으로 떠먹는 형태의 대표적 탁주인 이화주*를 마셨음을 추정해볼 수 있다. (여기서 이화주는 탁주라고 부를 순 있지만, 반대로 막걸리라고 부를 순 없다. 이 복잡한 상관관계에 대한 설명은 추후 다른 편에서 상세히 다루도록 하겠다.)



#문화단절과 이후

1909년 일본에 의한 주세법은 가양주 문화**였던 우리술이 자취를 감추게 만들었으며 문화 자체를 단절되게 하였다. 이후 2016년과 2017년, 두 차례 주세법이 개정되며 '하우스 막걸리 제도'와 '전통주 온라인 판매'가 시행되었다. 이를 기점으로 우리술은 단순 유행 현상이 아닌, 다시금 하나의 굳건한 주류 문화로 정착하려는 발돋움을 한 것이다. 


이외에도 정말 다양한 우리술의 종류와 이야기가 존재한다. 그렇기에 역사적으로 굴곡을 겪으며 발전해온 우리술을 단순히 '막걸리'라고만 부르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직도 더 나은 대중화를 위해서는 많은 관심과 법적 개정이 필요하다. 


이화주* : 고려 때부터 전해져오는 우리술로 이화곡이라는 누룩을 이용해 빚은 술, 떠먹는 것이 특징이다.

가양주 문화** : 가양주(家釀酒) 말 그대로 집에서 빚은 술, 이를 토대로 이후 다양한 가양주가 등장했다.


(좌) 이화주에 사용되는 누룩 '이화곡', (우) 사진출처 미래식당_떠먹는 형태의 '이화주'






2. 막걸리는 쌀로만 빚는다?



막걸리는 크게 재료에 따라 두 가지로 나뉠 수 있다. 바로 쌀막걸리와 밀막걸리. 가끔 지인들과 대화를 나누다보면 막걸리는 당연히 쌀로만 만드는 줄 알았다는 이야기를 듣곤 한다. 이런 이야기 들을 때마다 주방장은 아직도 우리술의 대중화는 멀었구나 싶기도 한다. 


막걸리는 쌀이나 밀에 누룩과 물을 섞어 발효시킨 것을 체에 내려 목으로 넘기기 거친 것들을 걸러낸 '것'을 말한다. 보통 옛말로 대도시의 양조장에서는 주로 쌀을 위주로, 시골 양조장에서는 밀가루를 더 많이 만들어낸 막걸리를 빚어 왔다. 그리고 이런 막걸리는 6.25전쟁을 겪으며 바뀌기 시작했다. 



#밀막걸리

쌀막걸리가 톡 쏘는 맛이라면, 밀막걸리는 구수한 맛이 특징이다. 밀막걸리는 1965년 식량난에 시행된 '양곡관리법'에 의해 탄생한 술이라 할 수 있다. 밀막걸리의 역사는 순곡주* 제조 금지령으로 쌀 대신 외국에서 수입한 밀가루를 막걸리의 주원료로 사용하게 되며 시작된다. 당시 이렇게 만들어진 밀가루 막걸리는 쌀 막걸리와 비교하면 단맛은 덜하고 텁텁하며 신맛이 강했다. 당연히 자연스레 술의 질도 떨어졌다. 이 때를 시작으로 막걸리만 마시면 머리 아프다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입버릇처럼 지금까지 막걸리하면 머리 아픈 술의 공식이 성립되었다. 



#국민술

1960년대 중반부터 90년대가 되기 전까지의 밀막걸리는 국내 주류 총 소비량의 80% 이상을 차지할 정도였으며, 소위말해 '국민술'이었다. 이 시절을 지내온 분들이라면 밀막걸리의 맛을 정통의 맛으로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1990년대에 들어서며 연이은 대풍작으로 쌀을 원료로 술을 빚게 되었다. 그리고 2009년을 기점으로 더 이상의 텁텁하고 탁한 밀막걸리가 아닌, 색이 희고 담백하며 뒤끝까지 깔끔한 쌀막걸리가 명실상부 국민술으로 자리잡는다. 



막걸리는 우리에게 시대별로 다르게 기억되어 왔다. 누군가에게는 재료 및 처리방식에 따라 쌀막걸리와 밀막걸리, 혹은 생탁주와 살균탁주로 또 다른 이에게는 머리 아픈 술, 값싼 서민의 술, 웰빙 식품으로 각자 다르게 의미를 지닌다. 앞서 언급한 '하우스 막걸리 제도'와 '전통주 온라인 판매' 실시는 대규모 양조장 중심에서 벗어나 다양한 맛과 향을 통해 막걸리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자 함이다.



순곡주* : 맵쌀, 찹쌀, 누룩, 물 만을 이용해 빚은 순수한 술이다. 즉 순 곡물을 이용해 만든 술은 모두 순곡주에 해당된다. 


(좌) 쌀막걸리의 성분표시, (중, 우) 밀막걸리의 성분표시






3. 막걸리는 유통기한이 짧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생막걸리의 유통기한은 10일 이내로 표기되어 판매되었다. 당시 막걸리는 기간이 넘게되면 효모가 활성화해 신맛이 났다. 그래서 생산된 지역 내에서만 판매되며 유통에 어려움을 겪었다. 와인은 오래 묵히면 묵힐 수록 맛도 풍부해지고, 가격 역시 비싸지기도 하는데 막걸리는 더 보관하고 마실 순 없을까?



#유통기한의 연장

막걸리를 만드는 사람도 유통하는 업자도 그리고 소비자 모두 고민했던 사항이었다. 유통기한이 10일이었던 막걸리는 오랜 연구 끝에 살아있는 효모의 활성화를 제어하는 기술을 개발에 성공하며 변화를 맞는다.  그렇게 유통기한이 30일이 되었고, 더 나아가 3배 이상까지도 연장 가능한 '막걸리 유통기한 연장기술'도 개발되었다. 물론 막걸리의 유통기한이 이렇게 늘어났다고 해도, 술맛을 100% 느끼고자 한다면 10일 이내에 마셔주는게 예의라고 생각한다. 더불어 막걸리는 저마다 맛있는 기간이 따로 있으니, 주방장이 올리는 월간주방장 및 주류 추천을 참고해보자.



#살균막걸리(살균탁주)

막걸리는 살균 여부에 따라 생막걸리와 살균막걸리로 나눌 수 있다. 라벨 표기에 따른 생막걸리는 30일 혹은 60일이라면, 살균막걸리는 6개월에서 1년 사이 정도다. 살균막걸리는 섭씨 65도의 뜨거운 물에 30분 정도 넣어 얻을 수 있다. 여기서 살균이 된다는 뜻은 기존의 막걸리의 장점이라고도 일컫는 효모와 유산균 및 기타 균류가 활동을 멈추게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후발효가 진행되지 않기 때문에 원하는 시기의 맛을 유지시켜, 수출 및 생산된 지역으로부터 먼 지역까지도 나갈 수 있다는 말이다. 정말이지 프랑스 과학자 파스퇴르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 싶다. 



#생막걸리vs살균막걸리

두 막걸리는 맛에서 엄연히 차이가 난다. 살균탁주는 탄산의 청량감을 감싸안은 것이 특징이다. 고온살균으로 미생물의 활동을 중단시켜, 부드러운 맛과 향이 생막걸리 보다는 더 진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청량감의 대명사인 탄산가스가 생성되지 않아 술맛이 싱겁거나 단조롭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또한 생막걸리는 주변 온도에 따라 쉽게 변한다면, 살균한 막걸리는 원하는 때의 맛과 향을 순간 고온살균해 일정한 맛을 언제든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한마디로 일장일단이다. 쉽게 구분하려면 마트에 가서 냉장코너에 있으면 생막걸리, 일반 선반에서 팔면 살균막걸리라고 생각하면 쉬우리라 생각한다.



'살균막걸리는 고온 살균했으니까 더이상 효모와 유산균이 존재하지 않아. 생막걸리가 최고야!'
'아니야, 생막걸리는 마트에서 구하기도 어렵고 10일 안에 마셔야 해. 보관도 불편해'

주방장은 우리술을 즐기는 여러분들이 이렇게 생각하기보다, 이런 것이 일장일단인 막걸리의 세계임을 이해하고 다양하게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해본다. 분명 앞으로 막걸리의 세계는 더 커지고 지금보다 다양해질 것이다. 그때가 되면 또 다른 스타일의 막걸리가 나타날지 모르니 말이다. 



(좌) 생막걸리의 성분표시, (우) 살균막걸리의 성분표시






4. 우리술은 도수가 다 낮고, 약한 술이다? 



에탄올 함량 15-16% 정도면 낮지 않은 수치다. 이는 주방장이 직접 담근 막걸리에 물을 타기 전, 원주의 도수를 측정했을 때 나온 값이다. 주변에서 흔히 보는 맥주가 4-6%에 비교하면 충분히 높은 도수이다. 재밌는 사실은 알콜 함량 6% 언저리인 막걸리가 원래부터 낮은 도수는 아니었다. 심지어 처음에는 도수의 제한이 없었다고도 하는데, 무슨 말일까?



#막걸리

1910년대 막걸리의 도수는 10% 내외였으며, 이후 1980년대 들어서며 주 소비자층인 농민들의 안전을 위해 대통령령으로 6-8%로 낮아진다. 이렇게 낮춰진 도수의 막걸리는 농민들에게 취하기 위한 용도가 아닌 적당한 영양분 섭취와 허기짐을 달래기 위해 만들어졌다. 1999년에는 3%까지도 내릴 수 있는 법률도 나타났지만, 현재 막걸리의 알코올 도수 제한은 사라진 상태이다.



#고도주

최근 10년 동안 알코올 도수를 경쟁적으로 낮추는 저도주가 인기몰이에, 우리나라의 고도주는 점차 잊혀져 갔다. 하지만 작년부터 인위적으로 향과 맛을 낸 희석식 소주에 지친 소비자들의 니즈에 따라 높은 도수의 증류식 소주들이 시중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대형마트를 자주 가는 분이라면 화요, 려, 일품진로, 대장부 등 17도부터 53도까지의 다양한 도수의 우리술들을 쉽게 봤을 것이다. 이외에도 온라인 구매가 가능해진 요즘, 명인들이 직접 빚는 고도주 역시 성인인증 후 클릭 몇 번으로 쉽게 구매가 가능해졌다.



우리술이 다 순하고, 알코올 도수가 낮은 술만 있다는 말은 이제 옛말이다. 도수 높은 술을 마시려면 위스키, 보드카, 럼 등 외국의 술에만 눈을 돌릴게 아니다. 5도부터 10.8도의 막걸리, 17도부터 61도의 증류식 소주까지 다양해진 우리술에 시선을 돌려보자. 물론 한국의 증류주가 더 발전하려면 숙성을 하면 되겠지만, 국내 주세법 상 세금과 관련되기 때문에 숙성을 통한 다음 단계는 쉽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만약 현재의 종가세*가 아닌 종량세**로 바뀌게 된다면 어떨까? 분명 지금보다 더 다양한 변화를 시도할 수 있을텐데. 



종가세* : 술의 가격에 따라 세금 부과, 현재 우리나라 채택

종량세** : 개수, 길이, 면적, 중량, 용적 등 '수량'을 기준으로 세금 부과



  

술샘의 미르54는 '알코올 도수 54도'의 고도수 소주이다.







5. 우리술을 만드는 사람은 다 인간문화재다? 



지금까지 어려운 말로 우리술을 설명 해왔지만, 사실 우리술을 배울 수 있는 '교육의 문'은 누구에게나 활짝 열려있다. 다시 말해 인간문화재가 아니여도 누구나 다 빚을 수 있다. 주방장이 어디에 가서 "저 술 빚습니다."라고 하면 다들 입모아 '우와우와' 하지만 사실 그렇게 어려운 건 아니다. 맛을 내는 것이 어려울 뿐. 생각보다 전통주를 제대로 배울 수 있는 기관들이 많이 있고, 실제로 많은 분들이 찾아가 배우고 즐기고 계신다. 연령대도 다양하다. 가장 어린 10대 친구도 본 적있다. 미성년자라 안된다고 말할 수 있지만 본인이 배우고 싶어 어머니랑 함께 술을 빚었다. 우리술을 즐길 줄 아는 그 친구도, 어머니도 멋졌다.


정부에서는 아래와 같이 전통주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기관들을 지정하였다. 2017년 2월 국립농산품질관리원 자료에 의하면 최근 7월 한국가양주연구소가 교육훈련기관에서 전문인력 양성기관으로 지정되었고, 이처럼 우리술을 배울 수 있는 곳이 늘어났다. 


1. 전문인력 양성기관
: 한국식품연구원, 한국가양주연구소, 서울벤처정보대학원대학교, 신라대학교, 대경대학교 산학협력단
2. 교육훈련기관
: (사)수을전통술교육관, 막걸리학교, 수수보리아카데미, (사)한국전통음식연구소, 전통주연구개발원, (사)한국전통주연구소, (사)한국바텐더협회, 진향우리술교육원, (사)우리음식문화연구원, (주)연효재, (주)한국양조연구소, (사)북촌전통주문화연구원, 농업회사법인 (주)명주가  


주방장은 한국식품연구원과 한국가양주연구소 과정에 참여하였다. <우리술전문가양성과정>과 <증류주 전문가 과정>에 참여하며 우리술에 대해 다방면으로 배울 수 있었다. 실제로 술도 빚어보고 시음회에도 참여하며 양조장 방문도 해보았다. 하지만 주방장이 가장 좋았던 점은, 우리술을 좋아하는 여러 사람들과 술이야기를 끊임없이 나눌 수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술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주저하지말고 위 기관들의 문을 두드려보자. 우리술 세계가 끊임없이 펼쳐질 것이다. 


가양주연구소의 '우리술빚기 교육과정'




편견은 오해를 만들고, 오해는 거리를 두게 만든다. 

우리술에 대한 편견을 이해로 바꾸고, 이해한 만큼 가까이 다가가 알고 마신다면 더 맛있을 것이다.

주방장은 오늘도 우리술이 모두에게 "우리의 술"이 되는 그날까지 열심히 글 쓸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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