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축제, 장소
막걸리와 축제는 썩 어울리는 조합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음악 페스티벌처럼 다 같이 방방 뛰어 신나는 것도 아니고, 요즘 유행하는 토크 페스티벌처럼 유명인사가 나오는 것도 아닐 테니 말이다. 하지만 백문이 불여일견! 역시 모든 축제는 직접 가봐야만 아는 법 입이다. 그 축제의 주인공은, 대상이 아니라 그곳에 모여드는 사람과 여러 군중이 만들어내는 에너지와 분위기라 할 수 있다. 여러 사람들 사이에서 술이 만들어내는, 생각만으로도 즐거운 이 에너지가 바로 <대한민국 막걸리 축제>의 주인공이다.
전년 8만 명 이상의 참여를 보여줬던 일산 막걸리 축제는 올해로 16번째를 맞았으며, 이번 역시 말 그대로 '대박'이었다. 매해마다 판매 부스에 참가한 지인의 말을 빌리자면, 이번은 다른 유명 축제와 겹치지 않아서 더 핫했다고 한다. 정말이지 몰려든 인파와 뜨거운 반응으로 발 디딜 틈 조차 없었다. 문전성시가 아닌 막전성시라고 할 정도로 말이다. 일산이 막걸리로서 유명한 동네는 절대 아니고, 이렇게 전국에서 모이기 쉬운 곳도 아닐 텐데.
주방장은 첫날 해 질 무렵이 돼서야 일산에 도착해 축제 막바지를 둘러보고, 둘째 날은 시작부터 모든 부스를 바삐 돌아다녔다. 같이 우리술을 공부했던 반가운 얼굴들도 만나고, 처음 맛보는 술이라면 홀짝홀짝 아끼지 않고 마셨다. 우리술을 사랑하는 주방장에게 막걸리 축제는... 정말 천국이었다. 축제에 오기 전 가졌던 회의감이 무색할 정도로 축제에 푹 빠지게 되었다.
즐겁게 축제를 즐기고 머릿속에 남은 생각은 '내년에도 참여하고 싶다'였다. 더불어 이런 축제가 더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우리 지역 및 또 다른 지역에서도 빈번하게 참여할 기회가 있기를 바랐다. 이번 막걸리 축제가 이렇게까지 좋았다고 느낀 이유가 무엇일까? 그 요인에 대해 짚어보자.
미세먼지 하나 없이 맑은 공기에 높고 구름 없는, 요즘같이 완연한 가을날이라면 야외의 분위기가 곧 안주라 할 수 있다. 이번 일산에서 열린 <대한민국 막걸리 축제> 역시 야외에서 열렸고, 특히 공원에서 진행되었다. 곳곳에 돗자리를 편히 펴 자리 잡고, 부스에서 구입한 술을 그 자리에서 열어 마시는 모습을 보고 흐뭇했다면 내가 이상한 걸까? 독한 술처럼 취하기 위해 마시는 술이 아닌, 맛 좋고 다양한 전국의 술들을 한 자리에서 바로 열어 마실 수 있다니. 게다가 바깥에서 기분 좋게 가족들과 함께 나와 우리술을 즐기는 모습은 주방장이 꿈꾸는 가장 이상적인 모습이었다. 막걸리는 꼭 비 오는 날 빗소리 들으며 마실 필요는 없다. 술은 비로소 즐겨야 술인 것이다.
꼭 축제라고 해서 도심을 벗어날 필요 없이 각 축제 특성에 맞춰 진행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이번에 직접 경험해보니 가까이 위치해 있어 누구나 자가용이 아닌 도보를 통해, 대중교통을 통해 가볍게 즐기기 좋았다. 또한 음악 페스티벌처럼 처음부터 요란스러운 소음을 만들어 내는 것 역시 아니었다. 축제가 진행된 공원의 거리가 가까웠기에 친한 지인들과 가족들이 함께 모여 돗자리 펴고, 오순도순 옛 추억을 떠올리며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이번 가평 자라섬에서 진행된 막걸리 페스티벌의 경우에는 크게 먹을 음식이 없어 꽤나 곤욕을 치르신 분들이 많았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일산 문화공원에서는 다르다. 가장 중요한 행사장 내 안주 부스는 총 8곳으로(광장시장 순희네 빈대떡, 봉평메밀묵, 김치전, 장군집 돼지껍데기 등) 어느 한 곳도 오픈과 동시에 쉴틈 없었다. 안주 부스를 각 라인별 중간에 배치해 음식 냄새로 술을 더 끌리게 하는 엄청난 전략을 펼친 듯했다. 게다가 바로 앞에는 대형마트인 홈*러스와 광장을 둘러싸고 편의점, 식당이 즐비해 굳이 부스의 음식이 아니더라도 원하는 안주를 바로 공수할 수 있었다. 거주 중심지에 공원이 있으며, 식당과 마트가 몰려있는 곳에서의 축제는, 지상낙원이 있다면 이 곳이지 않을까 싶다.
2일간 진행된 이 페스티벌에 참여한 막걸리 업체는 총 41개로 기존의 쌀 막걸리 외에도 밤, 인삼, 더덕, 산수유 등으로 만든 100여 종을 만나볼 좋은 기회였다. 평소 마트에서만 사 마시던 막걸리가 아닌, 지역을 뛰어넘어 일산에서 400km 떨어진 부산의 대표 막걸리를 맛볼 수도 있었다.
현장 내 모든 부스에서의 결제는 카드, 현금 및 계좌이제로도 가능하며, 곳곳마다 쓰레기를 버릴 수 있도록 봉투가 비치되어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시음은 공짜라는 사실이다. 보통 다른 주류 페스티벌들은 간단한 입장료 및 해당 축제장까지 가는 비용이 제법 드는 편인 데에 비해 어마어마한 이점이라 할 수 있다. 덕분에 한 잔이 두 잔 마시게 되어, 지갑 열기 좋은 분위기로 바뀌게 된다. 이 분위기에 안사면 어디서 사나 싶어 주방장도 구매욕을 이기지 못하고 집에 두 어병 산 것은 비밀이다.
이번 축제는 근래 참가했던 여느 우리술과 관련된 축제들 중 가장 좋았다. 하지만 앞으로 더 나은 발전을 위해 축제 참가자로서, 우리술의 더 나은 모습을 위해 "간단히" 적으며 마무리 지으려 한다.
#1
생각보다 자가를 이용한 방문객은 많았으며, 주차를 하기 위해 수십대의 차들은 멀리서부터 자리가 나면 서로 들어가려 아우성이었다. 여느 축제에서든 충분히 볼 수 있는 현상이겠지만 분명 누군가는 드넓은 주차공간을 기대했을 것이다. 주차장 마련과 더불어 안전에 대한 공지도 미리 있었으면 한다. 주말인데다 술과 관련된 축제에 아이들 역시 자유로이 드나들 수 있는 곳이므로 '음주운전'의 위험성이 커 보였다. 사소한 문구지만 안전과 관련된, 혹은 자가 이용과 관련된 말 한마디 적혀있으면 어떨까 제안해본다.
#2
연트럴파크에서 진행된 <제주에일 술판 사건>은 주류 페스티벌의 부작용 사례라 생각되는 바이다. 당시 상황을 보자면, 임시매장에서 맥주를 판매하며 돗자리를 무상으로 빌려줘 연트럴파크에서 술판이 벌어진 일이다. 이번 막걸리축제와는 다른 상황이지만, 이번 페스티벌 역시 따로 미성년자에 대한 신분증 확인 등과 같은 주최 측에서의 관리는 크게 없었다고 보인다. 다행히 아무 일 없이 행사가 종료되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협소했던 공간에, 미성년자가 취해서 다른 이와 부딪혀 폭력의 사태로 이어졌다면 생각만으로도 아찔하다. 자유로이 마시는 상황을 연출하고자 진행된 행사이기에 분명 모두 다 검사할 수는 없겠지만, 중간중간이라도 주최 측에서 더 신경을 써주는 모습 보이면 좋겠다.
#3
맥주는 2002년 1월 1일부터, 막걸리는 2016년 2월 5일부터 '소규모 제조 판매'를 허용해왔다. 덕분에 각 지역에는 제법 많은 개인 양조장들이 위치해 있으며, 지자체들은 도시에서 이와 같은 축제를 진행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늘 유명한 양조장들 우선으로 기회를 주기 때문에 안타깝게도 신생 업체들은 차마 나올 엄두를 내지 못한다. 소주 자도주 보호법처럼 지역끼리 갈라서라는 말이 아닌, 축제 개최지 근교의 양조장 참여 기회를 우선시했으면 한다는 말이다. 첫 소비자를 유도하는 데 있어 축제만큼 좋은 건 없기 때문에 크고 유명한 업체의 술이 아닌 소비자에게 역시 다양하게 마실 권리를 누리게 했으면 좋겠다.
주방장은 오늘도 우리술에 대한 편견을 이해로 바꾸기 위해, 우리술이 모두에게 "우리의 술"이 되는 그날까지 열심히 출장 다니고 글로 녹여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