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월에 주방장이 요리와 함께한 술은
'큰일 났네. 벌써 더우면 안 되는데...'
얇은 트렌치코트를 사놓고 몇 번 입지도 못해서 큰일이 아닙니다. 주방장에게 따뜻한 날씨는 그리 반갑지 않습니다. 술을 빚고 보관 온도를 맞추기 어려워지기 때문입니다. 겨울엔 추운 날씨에 보일러나 온풍기를 통해 발효 온도를 조절할 수 있었다면, 점점 따듯해지는 봄과 여름이 되면 그 작업이 어려워집니다. 그래서 술 빚는 이들에겐 여름이 제일 비수기라고도 하지요. 지난겨울에 더 열심히 홈 양조장을 가동했던 이유도 이유입니다.
그래도 봄은 봄입니다. 두꺼웠던 외투가 점점 얇아지고, 꽃망울이 톡톡 터지는 봄. 괜스레 거리를 걸으면 피부를 스치는 따듯한 봄바람에 기분이 좋아지는 봄! 그래서 봄은 봄입니다. 이번 봄에는 제가 빚은 술을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지난주, 제가 아끼던 친구가 고향으로 돌아갔어요. 그 친구와 더 자주 마시고, 술도 다양하게 빚어보고,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볼걸 그랬어요. 그래도 서로의 방향을 유지한 채로 다시 만나기로 했습니다. 애주를 참 좋아하던 친구에게 더 맛있는 애주로 재회할 수 있도록. 이번 달도 열심히 만들고 많이 마셔야겠습니다.
봄의 따스함이 스미는 3월의 월간주방장, 시작합니다.
언젠가 한 번 복분자로 술을 빚어본 적 있습니다. 복분자 맛도 맛이지만, 향이 여느 과일과는 다른 독특함을 자랑하던 술이었습니다. 그때를 회상하며 지난 겨울에는 딸기, 올해 봄에는 블루베리로 한 번 빚어보았습니다. 블루베리는 많이 달지 않아 생으로도 부담없이 많이 먹곤 하는데요. 보통은 디저트류에 많이 사용되곤 합니다. 그런 블루베리를 한국술에 한 번 넣어봤습니다. 과연 여러분이 생각하는 와인과 같은 술이 될까요 아니면 완전 새로운 술이 탄생할까요?
# 정보
식품형태 이양주
알코올 약 16%
내용량 약 10L
성분 멥쌀, 찹쌀, 정제수, 누룩, 블루베리
양조장 주방장의 집
빚기 시작한 날 2019년 2월 09일
병입 한 날 2019년 3월 13일
# 코멘트
"레드와인? 아니 우리술!"
발효가 다 끝난 블루베리주를 마주하는 순간, 제일 먼저 뿌듯함이 들었습니다. 한국 술을 빚기 시작하면서 작은 바람이 있었다면, 맛도 맛이지만 와인에 버금가는 영롱한 색을 띤 술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항상 쉽게 떠올리는 아이보리나 누런색이 아닌 눈으로도 즐거운 빛깔을 술에 담아내고 싶었어요. 그런 의미에서 블루베리주는 제게 아름다운 자태를 지닌 술입니다. 맛도 빛깔처럼 부드럽고 아름다울 것이라 생각했다면, 오히려 당돌한 매력을 지녔다고 말하겠습니다. 이 술을 맛본 주변 지인들은 빛깔과 향에 홀려 한 모금 크게 마셨다가 뒤를 타고 오는 알싸한 알코올 향이 목구멍을 찌르는 같다고 했는데, 실제로 좋은 의미의 뒤끝이 있는 술입니다.
# 어울리는 음식
채끝 스테이크&냉이된장 리조또. 적당한 찹쌀의 단맛에 블루베리향을 입힌 블루베리주는 생각만큼 많이 달지는 않아요. 그래서 소고기 부위 중에서도 단맛의 진미가 가장 으뜸인 채끝으로 스테이크를 준비해봤어요. 또한 제철인 냉이와 된장을 이용한 리조또는 특유의 냉이 향으로 입맛을 돋아줄 수 있겠어요. 다음번에 기회가 된다면 레시피 관련 매거진을 따로 만들어 사진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기대해주세요!
술은 다 되고 나면 맑은술이 위에 뜨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다 될 즈음해서 용수*를 박거나 혹은 충분히 가라앉힌 상태에서 맑은 것을 떠내면 이를 '청주'라고 합니다. 반대로 맑은술 아래의 탁한 술을 탁약도에 따라 탁주라고 부릅니다. 지난 <월간주방장 2월호>에선 애주의 청주 ver. 을 소개해드렸죠. 그래서 애주의 다른 버전을 소개해보려고 합니다. 쑥향이 쑥향이 나서 쑥향을 쑥향이라 하였는데, 과연 애주 탁주는 청주와는 또 다른, 어떤 쑥향을 가지고 제게 봄을 전하러 와줄까요?
*술이나 장을 거르는 데 쓰는, 싸리나 대오리 등으로 원통형으로 만든 기구
# 정보
식품유형 탁주
알코올 약 12%
내용량 약 10L
성분 멥쌀, 찹쌀, 정제수, 누룩, 쑥
양조장 주방장의 집
빚기 시작한 날 2019년 1월 15일
병입 한 날 2019년 2월 16일
# 코멘트
"여름에 느끼는 크리스마스"
분명 애주 청주 ver. 과는 같은 술이지만 전혀 다른 느낌입니다. 청주가 부드럽게 봄을 열어주는 산뜻한 느낌이라면, 탁주는 여름에 느끼는 크리스마스 같달까요. 가수*를 많이 하지 않았기 때문에 확실히 혀를 한 번 크게 감싸고 넘어갑니다. 일반적으로 공장에서 만들어내는 막걸리와는 비교를 할 수는 없습니다. 시중 막걸리가 날개처럼 가볍다면, 애주 탁주는 묵직하고 달콤한 구름을 뭉쳐 크리스마스 사탕처럼 녹여내는 것 같습니다. 도수는 청주보다 낮지만, 보다 거칠게 그리고 세게 느껴집니다. 입 안에서 그리고 코 끝에서 울려 퍼지는 쑥향 역시 강한 인상을 남기고 내려가네요. 정말이지 달라서 더 재밌고, 흔하게 느껴보지 못하는 맛이기 때문에 더 저만 알고 싶은 술이랄까요.
*술의 도수를 맞추기 위해 물을 넣는 것.
# 어울리는 음식
도다리 구이. 도다리 하면 단연 떠오르는 메뉴는 '도다리쑥국'일 거예요. 그렇지만 이번에 함께 곁들이는 술이 애주(쑥술)인 만큼 도다리의 은은하고 달달한 향을 살려줄 구이를 준비해볼게요. 부재료로는 레몬, 오일, 허브솔트만 있어도 괜찮아요. 오븐이 있다면 오븐에, 없다면 불이 있는 곳 어디든.
지금까지 이런 맛은 없었다. 이것은 술인가 약인가? 추성주입니다. 맛도 라벨도 모두 인상적입니다. 얼핏 보틀과 라벨만을 보고 선택한다면 '위스키인가?' 싶을 정도로 세련된 보틀입니다. 여전히 대나무 형태의 자기에 담은 올드 스타일의 술 역시 판매되지만, 저는 이 주병이 더 마음에 드네요. 라벨의 재료를 한 번 살펴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생소할 법한 이름을 가진 11가지의 약재들로 나열되어 있습니다. 약재만을 보고 씁쓸한 한약방을 소환한다면 큰 오산입니다. 생각 외로 달큰한 배향과 감초의 향을 느끼실 수 있는데요. 세련된 보틀로 돌아온 만큼 외국의 위스키에 뒤처지지 않을 우리술, 한 번 즐겨보세요.
# 정보
식품유형 증류주
알코올 25%
내용량 350ml
성분 물, 쌀, 누룩, 오미자, 구기자, 상심자, 갈근, 창출, 우술, 신약, 육계, 두충, 의이인(율무), 연자육
양조장 추성고을
구매처 지인께 받은 생일선물 (감사합니다)
# 코멘트
"한방 위스키? 한 방 위스키!"
패키징부터 제 마음을 사로잡았어요. 고급 시계 케이스를 여는 듯한 겉 포장, 그리고 모습을 드러낸 추성주. 기존에 기억하고 있던 추성주라면 대나무 모양의 자기에 담아있던 걸로 기억하는데 새로운 공병은 현대에 맞게 재해석을 잘한 것처럼 보입니다. 한 가지 더 재미난 게, 라벨도 자세히 살펴보면 산과 선비 그리고 정자, 해를 볼 수 있습니다. (제 지인은 이 술을 만든 사람이 추성주 아니냐며!)
"멋진 중년의 한약사가 맞이해주는 느낌"
처음 뚜껑을 딱 여는 순간 넓은 곳에 있었음에도 금방 사이 방을 채우는 약재의 향! 잠시나마 한약방에 온 듯한 느낌을 받았는데요. 전혀 촌스럽지 않은 멋진 중년의 한약사가 맞이해주는 향입니다. 이어서 처음 혀에 감기는 단맛은 알코올 도수나 향에 비해 부드러웠고, 생각보다 가벼운 바디감을 느꼈습니다. 마지막으로 혀 끝에서 은은하게 느껴지는 감초의 향까지 우아하게 남습니다. 함께 마신 친구들은 한방! 위스키라며, 온 더 록 혹은 한방 하이볼로도 괜찮겠다고 추천하더군요.
# 어울리는 음식
커피와 된장 그리고 흑설탕을 넣고 푹 삶아낸 돼지수육. 추성주에 들어간 재료만으로도 이미 약재는 충분해요. 커피와 된장 그리고 흑설탕으로 은은하게 돼지를 삶아낸 수육과 함께라면 추성주의 향을 헤치지 않고 완벽한 마리아주를 즐길 수 있어요.
여기저기서 증류식 소주가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분명 몇 해 전만 해도 증류 소주를 대형마트에서 눈 씻고 찾아보기 힘들었는데 이제 대기업까지 대장부스럽게 시장에 진출했습니다. 그렇지만 역시 증류식 소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안동소주' 아닐까 싶네요. 시중에 제법 많은 안동소주가 나와있지만 그중 국가 공인 명인 안동소주로는 '조옥화 명인'과 오늘 소개할 '박재서 명인'의 안동소주뿐입니다. 전통과 현대를 절충했다는 평가와 주당들로부터 오랜 사랑을 받아온 '박재서 명인의 안동소주'. 제가 한 번 마셔보겠습니다.
# 정보
식품유형 증류식 소주
알코올 35%
내용량 360ml
성분 정제수, 쌀, 누룩
양조장 명인 안동소주
구매처 명인 안동소주 대리점
# 코멘트
"선비의 도포자락 같은 맛"
흔하게 마시던 희석식 소주의 인공적인 향을 생각하고 한 번 마셔보았습니다. 100% 쌀로 빚었기 때문일까요. 보다 향이 짙고, 쌀에서 느낄 수 있는 특유의 달달함을 끝에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한 번에 털어 넘기지 않고 천천히 음미를 해보니 혀 끝에서 느껴지는 향이 더 풍성해지는 듯했습니다. 35도란 고도수가 무색할 정도로 부드럽습니다. 마치... 이 부드러움은 권력가이지만 부드러움을 유지할 줄 아는 선비의 도포자락 같은 맛이랄까요?
"35도가 세다고 느껴진다면 19도, 22도는 어때요?"
참고로 명인 안동소주는 19도, 22도, 35도, 45도 네 가지의 도수로 만들어지고 있어 취향에 따라 고를 수 있습니다. 디자인 또한 여러분이 아는 유리병과 하회탈부터 부부 탈, 양반탈, 기차 등 다양하게 판매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카카오톡 선물하기에서도 명인 안동소주를 만나볼 수 있답니다. 다양한 패키지 디자인은 지인들께 선물하기 딱 좋더라고요.
# 어울리는 음식
족발 편육 그리고 해파리냉채. 푹 삶아낸 족발의 살을 잘 발라내 만든 편육과 매콤한 겨자맛을 더해 만든 해파리냉채 그리고 35도의 안동소주, 상상이 되시나요? 일반 희석식 소주와 함께라면 어디서나 즐길 수 있는 냉채족발을 떠올리실지 모르겠네요. 하지만 35도의 증류식 '명인 안동소주'와 함께라면 조금의 수고스러움을 더해서라도 직접 만든 특제 편육 그리고 냉채는 최고의 궁합이라 생각해요!
사과의 고장, 예산에서 생산되는 질 좋은 사과만으로 빚어낸 추사 애플와인. 한 달간의 저온 발효와 1년의 숙성을 거쳐 '아이스와인 스타일'로 만들어내어 사과 고유의 향과 맛을 보다 잘 느낄 수 있다고 합니다. 국내외로 다수의 주류 관련 품평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있으며, 꿀물과 같은 황금빛 술을 떠다니는 금가루가 특징입니다. 참고로 <예산사과 와이너리>는 공산품을 생산하는 술 공장이 아닌 유럽의 와이너리처럼 식당에 펜션 그리고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까지 갖춘 와이너리입니다. 이쯤 되면 어떤 술인지 더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 정보
식품유형 과실주
알코올 12%
내용량 375ml
성분 사과
양조장 예산사과와인
구매처 예산사과와인에서 직접구매
# 코멘트
"한국식 와인?"
적당한 알코올 감에 코끝에 남는 사과향이 상당히 매력적입니다. 직접 만든 애플파이까지 함께 곁들여 먹으니 온 감각이 사과로 가득 찬 기분이었네요. 처음에 느껴지는 맛은 단맛, 그리고 살짝 뒤에 치고 따라오는 적당한 산미가 술맛을 조화롭게 이뤄줍니다. 마지막으로 끝 맛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마무리 지어줘 식전 주로, 그리고 디저트 와인으로도 손색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의 과실주에서도 이런 정도의 퀄리티가 나온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네요. 차기작인 '드라이(dry)' 역시 기대되는 바입니다!
# 어울리는 음식
애플파이&바닐라 아이스크림. 아이스와인 스타일로 빚은 애플와인이기 때문에 디저트가 딱히 필요는 없을지 몰라요. 그래도 겉 파이지를 크리스피하게 구운 뒤 따뜻할 때 위에 바닐라 아이스크림 한 스쿱, 그리고 시나몬 파우더를 살짝 뿌려서 먹어본다면 생각이 달라질지 몰라요.
2019년 3월호 <월간 주방장>에서는 부재료에 따른 봄 향기 가득한 우리술들을 소개했습니다. 블루베리부터 쑥, 사과, 각종 약재 그리고 쌀의 향까지. 우리술은 보다 다양함을 자랑하고, 아직도 소개된 술은 새발의 피에 불과해요. 더불어 주방장의 홈 양조장은 쉴 틈 없이 돌아갈 예정이니, 다음 호에서 역시 더 다양한 가양주와 우리술을 기대해주세요.
3월에도 어김없이 찾아온 '장원 술과 아쉬운 차석 술' 선정입니다.
이달의 장원(베스트 우리술)은 애주(탁주ver.)이지만, 차석(2% 아쉬운 우리술)은 없습니다.
사실은 장원을 선택하는 것 역시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모두 하나같이 완벽에 가까운, 주방장이 좋아하는 술이기 때문이죠. 다 마음에 들었기에, 선정하기 더 어려웠던 <3월의 월간주방장> 이었습니다.
더 맛나고 향긋한 우리술들로 찾아올게요.
다음 달에도 도전하는 마음으로 다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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