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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방장 양조장 May 21. 2019

이 술 어때요? "...맛있어요!"

우리는 술을 언제까지 맛있다고만 표현할 것인가

우리에게 감각이 다양한 이유는 맛있는 것을 더 '맛지게' 표현하기 위함 아닐까?

빈투바 초콜릿 세미나 현장 ⓒ주방장


지난달 <매거진 F>와 <카페 사유>가 콜라보한 '빈투바 초콜릿 세미나'에 다녀왔다. 먹고 마시는 건 다 좋아하는 주방장에게 새로운 맛과 향의 세계를 열어준 달콤한 시간이 아닐 수 없었다. 최근 스페셜티 커피(Specialty Coffee)가 인기를 끌며 원료의 생산지와 퀄리티, 풍미 자체를 우선시하는 미'음'가들이 늘어나고 있다. 초콜릿 역시 이 기세에 힘입어 '빈투바(Bean to Bar) 초콜릿'으로 각광받고 있다고 한다. 입에 기름기만 남는 초콜릿 향 초콜릿이 아닌, 진짜 초콜릿을 맛보려는 것이다. 


제대로 맛본 빈투바 초콜릿의 세계는 생각보다 깊고 넓으며 프로페셔널했다. 가장 놀라웠던 점은 쇼콜라티에가 초콜릿 단 한 조각으로 수십 가지 넘는 맛과 향을 캐치해 낸다는 점이었다. 초콜릿 한 조각에 담긴 맛과 향을 다양한 자신만의 어휘로 표현하는 그에게 초콜릿은 단순한 '스낵'이 아닌 '전부'인 듯했다. 쇼콜라티에님은 초콜릿 안에 들어가는 재료를 먼저 맛보게 했고, 플레이버 휠을 통해 시각화시켜 모든 맛과 향을 참가자들의 감각 데이터베이스에 저장시켜 주었다. 


경험 자료는 큰 역할을 했다. 재료 본연의 풍미를 의식하여 초콜릿 테이스팅을 하니, 맛과 향 표현이 훨씬 적극적이고 다양하게 변했다. 처음엔 초콜릿을 맛보고도 그냥 '맛있다'라고 표현하던 사람들이 '썩은 나무 향이 느껴진다', '식초가 들어간 초콜릿 같다', '장 맛이 난다'라는 등 독특한 초콜릿에는 가차 없는 표현을 쏟아냈다. 단순히 맛있다/없다의 추상적인 느낌 표현에서 구체적인 맛과 향이 그려지는 신기한 순간이었다. 단순히 맛있다는 표현에서 벗어나 감각기관을 예민하고 민감하게 만들어 자신만의 표현을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느낀 시간이었다.






일반 술을 즐기는 애주가들에게도 맛과 향을 느끼는 것은 중요하지만 소믈리에나 바텐더, 술 판매사원 같은 소개하는 역할에게는 더 중요한 감각과 능력일 것이다. 최근 신세계 백화점이 자신 있게 론칭한 <우리술방>에서 그 중요성을 더 깨달았다. 매장 직원에게 몇 가지 술에 대한 질문을 하고 맛에 대해 묻자 그는 "이게 맛있고, 잘 나가고, 괜찮아요"라는 단순한 설명에서 끝났다. 판매하는 한국술 제품들에 얼마나 다양한 차원의 맛과 재료의 향이 담겨있는데 이를 설명해주지 못함에 아쉬움이 느껴졌다. 누군가는 그냥 맛있게 마시고 즐기면 되는 거지 굳이 표현을 잘해야 하는지 묻는다. 그러나 고유의 맛과 향이 있는데 이걸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단순히 섭취하는 행위에 끝난다면 굳이 맛있게 먹을 이유가 있냐고 되묻고 싶다. <알고 마시면 더 맛있는 우리술>은 그냥 나온 매거진이 아니다. 






지난달 미국으로 돌아간 막걸리를 정말 좋아하던 친구 Tim를 인터뷰하며 맛과 향, 느낌 표현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Tim에게 주방장이 직접 빚은 애주, 블루베리주, 국화주 시음과 코멘트를 부탁했는데 그는 한 시간이 훌쩍 넘도록 정성을 다해 술의 모든 차원을 표현해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코멘트는 걸쭉한 애주를 마실 때였다.

미국인 친구 Tim의 베스트는 주방장의 '애주'였다 ⓒ주방장
"This tastes like...Hugging my mouth and Christmas in summer"


다섯가지 맛 캐치뿐만 아니라, 애주의 크리미 한 걸쭉함이 입 안을 감싸 안아주는 것 같고 곡물의 향에서는 겨울 같지만 여름의 청량함이 느껴진다고도 했다. 모든 감각을 끌어올려 맛보고 정성스럽게 표현해준 그에게 더 감사해지는 순간이었다. 외국 음식 채널이나 다큐멘터리를 보아도 그저 맛있다고 하기보다는 맛 자체를 세분화시켜 주관적인 '느낌' 표현이 더 다양함을 느낄 수 있다. 이처럼 보편적인 표현보다 나만의 '솔직한' 감상 표현은 그 맛과 느낌을 오롯이 나의 것으로 만들어줌을 잊지 말아야한다. 






빈투바 초콜릿 세미나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한 <한국술 Flavor Wheel> ⓒ주방장



우리는 모든 감각을 끌어올려 그 맛과 향, 입에서 느껴지는 감각에 집중해서 표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왜냐면 한국술에는 정말 많은 맛과 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맛과 향을 느끼지 못하고 그냥 마시기엔 너무나 아쉽다. 많은 사람들이 달달한 아스파탐 막걸리를 주로 마시기 때문에 막걸리는 그저 '단'술으로 치부되곤 한다. 그러나 한국술을 공부하고 매일 마시며 날마다 느끼는 점은 "정말 다양한 맛과 향이 한국술 한 모금 안에 담겨있다"는 사실이다. 같은 재료를 써도 재료의 원산지나 상태, 그리고 만드는 과정에서 온도, 균의 종류, 발효 상태까지 모든 요소들이 맛과 향에 영향을 끼친다. 가장 유명한 예로 <송명섭 막걸리>는 한 병도 똑같은 맛이 없다고 할 정도로 매일마다 다른 맛을 보이지만, 그게 바로 송명섭 막걸리의 매력이다. (그 다름을 캐치해내는 것도 송명섭 막걸리를 마시는 재미이기도 하다.)


위 <한국술 Flavor Wheel>은 빈투바 세미나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술을 더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는 매뉴얼 같은 역할을 했으면 해서 제작해보았다. 맛/아로마/입촉감/질감 요소들만 보더라도 다섯 가지 맛뿐만 아니라 고유의 향들과 입안과 목에서 느껴지는 느낌, 외형적인 특징까지 한 모금 술 안에 느낄 수 있는 모든 영감이 존재한다. 생각보다 한국술에서는 진달래, 인삼, 오미자 등 재료 본연의 향을 쉽게 느낄 수 있지만, 주관적으로 맛과 향이 합쳐서 새로운 차원의 표현이 가능해지기도 한다. 쌀의 곡향이 누룩과 합쳐져 치즈 같은 향을 내기도 하고, 고소한 견과류나 바나나 향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재료는 쌀과 물, 누룩이라고 하지만 만드는 방식과 재료 제조 및 혼합 방식에 따라 새로운 차원의 맛이 탄생하는 것이다. 




예민한 사람은 그만큼 감각을 돋우는 능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고로 맛 표현이나 아로마, 촉감 표현도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의식하고 감각을 최대치로 이끌어내면 누구나 할 수 있다. 단순히 성격이 예민하다는 부정적인 차원에서 벗어나 맛과 향을 민감하게 잡아내는 미식가 예민인이 돼보는 건 어떨까? 언제까지 '맛있다'고만 표현할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한 아이가 무언가를 먹고 "엄마! 맛이 멋져요!"라는 짧은 영상을 보았다. 맛도 멋질 수 있다. 자신이 느낀 주관적인 맛과 향, 그리고 모든 요소를 있는 그대로 느끼고 표현하면 말이다. 독창적이고 멋진 표현들이 많은데 주방장 역시 단순히 맛있다는 추상적인 표현으로 주관적 감상을 덮어버리지 않았는지 돌아보게 된다. 분명 우리에게 감각이 다양한 이유는 맛있는 것을 더 '맛지게' 표현하기 위함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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