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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방장 양조장 May 27. 2019

한국술의 명맥을 잇기 위한 삼요소

<식품명인>, <전수/보조자>, <지원 제도>에 대한 단상.

대한민국에서 식품명인으로 살아간다는 건 국가의 엄격한 시험 관문을 넘어섰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이들에겐 국가가 지정한 관련 분야의 최고 기능인으로서 문화를 계승시키고, 시장의 트렌드를 이끌어 가야 할 암묵적인 사명이 있다. 이런 중대한 임무를 가진 명인을 지정하는 제도가 생긴 지도 벌써 25년이나 지났다. 그들은 지금까지 지켜야 할 전통과 가치를 고집하고 유지하며 살아왔다. 다만 시대와 상황에 따라 자신만의 규칙과 생산 과정엔 변화를 택하기도 한다.


어떤 명인은 기계화된 양조장의 모습으로, 또 다른 명인은 손수 빚는 옛 방식 그대로 변질되지 않게 보전하고 계승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하지만 이들도 명인이기 앞서 사람이다. 기본 생존권이 보장될 수 있어야 제조도, 기술도 제대로 전수할 수 있다. 실제로 소득 불안정이나 열악한 전수 여건 때문에 다수가 생각하는 이미지와는 다른 삶을 살고 있는 명인들이 많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떤 길을 걷고 있으며 어떻게 전수하고, 다른 나라의 제도와 비교해보며 한국술 명인제도가 나아갈 길에 대해 이야기해보도록 하자.






‘지치고, 외롭고, 늙고'에 대한 3중고


2019년 현재 한국술 명인들의 평균 연령은 71세. 이들에겐 누군가에게 자신이 지켜온 술 문화를 전달해야 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생계를 걱정하며 기본적인 생활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현실에 직면해 있어 전수되지 못하고 명맥이 끊기는 안타까운 일이 생기곤 한다. 실제로 지금까지 명인이 돌아가셔서 기능이 전달되지 못한 사례는 8건에 달한다.



겉으로는 대한민국이 전통을 잘 고수하는 문화강국으로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정작 음식이나 술 문화를 계승하고 자신만의 규칙을 지켜나가며 정통성을 잇고 있는 명인들에게는 그저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생긴 지 25년이나 지난 명인제도이지만, 호칭 조차 법적으로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니 말이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이 명인제도가 이어질 수 있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하는 이들이 있으니, 우리는 그들을 전수자 그리고 전수 보조자라 부른다. 과연 그들은 누구이며, 어떻게 지정되고,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보이지 않는 활약, 숨은 주연


명인이라는 타이틀의 보이지 않는 곳에는 숨은 주연이자 절대적으로 없어서는 안 될 전수자와 전수 보조자가 존재한다. 이들은 명인과는 특별한 노사관계를 형성하고 있으며 동시에 타이틀을 이어받기 위한 무게를 견뎌내야만 한다. 우선 전수자가 식품명인이 되기 위해서는 식품산업진흥법 시행규칙 제5조에 의거해 평가되고 지정되어야 한다. 평가방법으로는 총 7가지 항목: 전통성, 우수성, 정통성, 경력, 계승 발전 필요성, 보호가치, 산업성 그리고 윤리성 이 있으며, 총점 80점 이상을 받아야 한다. 또한 점수 A~C 중 C로 평가된 항목이 1개 이하여야 하며, 아래와 같은 특정 조건을 갖춘 자에게 명인이라는 호칭을 부여하게 된다.


a. 명인으로부터 10년 이상 기능을 전수받았거나, 3대 이상의 전승 기술이나 기능을 10년 이상 전수받은 후 그 업에 종사한 자
b. 명인으로부터 7년 이상 기능을 전수받았거나, 2대 이상의 전승 기술이나 기능을 7년 이상 전수받은 후 그 업에 종사한 자
c. 명인으로부터 5년 이상 기능을 전수받은 자



국가의 엄격한 심사 기준에 따라야만 될 수 있는 명인이지만, 전수자와 전수 보조자가 되기 위한 조건은 명인에 비해 간단하다. 식품명인이 농림축산식품부장관 또는 해양수산부 장관에게 추천하여 적합한 사람을 선정하게 된다. 한마디로 명인의 지정이라고 할 수 있다. 분명 명인이 되는 기준에 비해 턱없이 간단한 과정으로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는 선정일 뿐, 이들이 전수받고 명인이 되기까지는 여러분의 생각보다 험난한 길이 앞에 펼쳐져 있다.




산업을 문화로 발전시키기 위해선.


명인과 전수자들은 자신이 가진, 그리고 지켜온 문화를 변질되지 않게 보전, 계승, 발전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혼자서 하나도 지키기 어려운 것을 대를 내린다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전업으로 삼는다는 의미는 경제활동의 수단이 돼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전까지는 그에 대한 적당한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아 가장 큰 문제인 생계를 유지하기 조차 힘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부가수익 상품을 판매하면서까지 정통을 유지하려는 분들이 많다.



스위스의 시계 산업, 이탈리아의 패션 디자인, 프랑스의 와인과 소믈리에, 그리고 일본의 스시 처럼 관련된 직업군과 시장 확대에까지 영향을 미쳐 국가 경쟁에 크게 기여한 사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나의 브랜드로서, 각 분야의 문화를 이끈 장인으로서 존경을 받고 국가나 지역자치 단체로부터 전적으로 지원을 받고 있다. 이전까지의 대한민국에서의 명인 그리고 전수자들은 그들이 지켜온 문화에 대한 적당한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정부가 들어서며 그들의 노력을 존중하기 위한 지원제도가 생겼다.


정말 오랫동안 이야기가 되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이제야 전통문화를 지켜가는 가치를 사회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했다. 비록 많이 돌아왔으며 미미한 수준이지만 지금에서라도 이렇게 논의되기 시작하고 정책으로 나왔듯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명인이 걸어온 길 그리고 걸어가는 길은 자신만의 규칙과 생산 과정을 지켜나가는 것이다. 앞으로 이런 정책을 더 지원해 나간다면 명인이 이어온 가치가 하나의 큰 브랜드로서 꾸준하게 이어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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