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방장 양조장 Jun 14. 2019

마리아주가 별거야?

한국술과 페어링 찾기란 '말이아주' 쉽다. 생소함에서 오는 변화의 즐거움

말이아주 쉽지, 마리아주 쉽지!



'음식과 술의 페어링을 통한 조화'를 말하는 마리아주는 결혼을 뜻하는 불어 mariage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단순히 술과 무언가를 함께 먹고 마시는 게 아니라, 어울리는 술과 음식을 함께 즐기면서 맛과 향의 시너지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사실 어느 술을 마셔도 정말 맛없는 안주가 아니라면 다 어울리긴 한다..!) 마리아주 혹은 페어링(pairing)이라는 단어가 생소해서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으나, 우리 삶 속에서 마리아주는 마치 스트레스를 감소시켜주는 마법의 메뉴 조합을 뜻한다. 암묵적인 한국식 페어링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치맥', '삼쏘(삼겹살에 소주)', 그리고 '막걸리와 전'이다. 만약 분위기를 낸다고 한다면 대표적인 마리아주는 '와인과 치즈, 말린 햄, 베리류 과일'이 되겠다. 


언뜻 보기엔 이탈리안 샐러드 재료같지만, 막걸리 안주 재료다!


보통 와인과 위스키 혹은 보드카처럼 과실주나 오크통 숙성을 한 외국술을 마실 때 마리아주를 떠올리고 함께 곁들일 무언가를 고민할 것이다. 한국술의 마리아주는 굳이 깊은 고민할 필요도 없이, '전'집에 가면 됐다. 막걸리나 약주, 한국식 증류주를 파는 곳이 많지도 않거니와 주로 전집에 가면 그나마 술 선택권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기름을 한껏 머금은 전이나 부침, 매운맛으로 미각을 마비시켜 버리는 김치류 안주가 불변의 법칙처럼 함께 한다. 


우리는 왜 꼭 기름진 안주만이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걸까? 오히려 우리술에 특정 안주로 경계를 짓고 있지는 않았나 의문이 들었다. 한국술도 신선한 야채와 치즈, 과일 같은 가벼운 안주와 케미스트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데 말이다. 사랑에도 국경 없다고 하는데, 더군다나 마리아주와 페어링엔 더욱 국경이 없다. 우리가 원하는 어떤 곁들일 음식이나 안주와도 함께하면 그게 한국식 마리아주 인 것이다. 어떤 이가 마리아주의 제1원칙은 자기 입맛에 맞게끔 술과 음식을 다양하게 시도해보는 것이라고 한 것처럼, 우리는 안주에 있어 다양성을 추구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색다른 마리아주 찾기> 쿠킹클래스 사진 ⓒ주방장


지난 시즌 소셜살롱 문토의 한국술 모임 <술 빚는 밤> 5회 차 모임은 '색다른 마리아주 찾기'였다. 한국술 모임인데 요리하는 메뉴는 '그릭샐러드, 부르스케타, 베트남 스프링롤, 오리 라비올리'. 가장 보편적인 안주가 아닌 예상외의 안주를 구상하다 보니 글로벌 디쉬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주방장이라는 타이틀로 한국술을 알리는 자신에게도 나름의 도전이었다. 위 메뉴들은 보통 와인이나 맥주와 함께했지 나 역시도 한국술과 제대로 페어링 해본 적이 없었다. 어울릴까 걱정도 되었고 괜히 막걸리 같은 곡류 맛이 음식 맛을 해치진 않을까 염려되었다. 


두 시간 넘게 열심히 안주를 만들고, 멤버들이 선호한 막걸리 3종(알밤막걸리, 정고집 동동주, 호랑이 막걸리)과 과하주(술아 연잎주)를 준비했다. 한 상을 차리고 수고의 잔을 기울인 후 요리를 한입씩 먹어보며 미소 지었다. 담백하고 마일드한 안주들이 오히려 막걸리의 맛을 살려주기도 하고, 과하주의 단 맛은 오리 라비올리의 풍부한 맛을 끌어올려주었다. 각 메뉴마다 어울리는 막걸리를 선정해서 각각 페어링 하니 미각에 집중하게 되는 신기한 경험이었다. (더불어 멤버 한 분은 모임에서 빚은 막걸리로 초콜릿과 놀라운 조합을 시도하셨다! 주로 초콜릿 안에 위스키를 담은 술초콜릿을, 전통주를 이용해 만들었다고 한다. 이렇게 한국술과 조합은 찾고 직접 만들기 나름이다. 오히려 멤버들을 통해 새로운 조합을 더 배운다.)


문토 멤버들과 함께 한 <색다른 마리아주 찾기> 시간. 가장 오른쪽엔 멤버 분이 직접 빚으신 술로 만든 #전통주봉봉





뉴욕의 barn joo, 서울의 한국술집 미주류, 학술적 연구소 등에서는 타코나 파스타같이 기름진 편견을 깨는 안주들이 한국술과 함께 페어링 되고 있다. 마리아주에 국경 없다 하듯 파인 비스트로 메뉴와 즐기는 한국술이라니, 과음할 가능성이 다분하다. 주방장이 한국술 비스트로를 준비하는 이유도 그렇다. 음식을 대중 vs 고급 나누던 습관이 안주 선택에는 적용되지 않았으면 한다. 현재 <월간 주방장>에서도 #어울리는 음식을 따로 소개하는 이유 역시 '이렇게 요리해 드세요'가 아니라 '이런 안주도 있습니다'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어서다. 상상 가능한 뻔한 안주가 아니라, 술 재료에 집중하고 익숙하지 않은 제철 메뉴를 소개함으로써 생소함에서 오는 변화의 즐거움을 느꼈으면 좋겠다. 안주의 선택권을 넓혀보고, 마리아주의 제1원칙처럼 다양하게 시도해 보는 것! 그 과정에서 주방장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 


우리는 술을 다양한 이유로 마신다. 취하려고, 스트레스 풀려고, 잠에 쉽게 들기 위해, 그리고 음식과 함께 곁들이기 위해. 사실 주방장이 술을 마시는 가장 중요한 명분은 '음식과 함께'하기 위해서다. 음식 맛의 차원을 넓혀주고 서로 마리아주를 이루어 입안에서 행복한 조화를 이루는 것. 그게 바로 술을 빚기도 하고, 사서 마시기도 하는 즐거움 아닐까?






+마지막으로 글로벌 디쉬 쿠킹클래스를 진행하며 느낀 점이 있다. 우리 한국술도 투명하고 예쁜 잔에 따라 마시면 더 맛있다는 사실이다. 우당탕탕 찌그러져 오랜 세월이 그대로 담긴 양은 대포잔이 아니라 술 고유의 색과 향을 눈, 코, 입으로 오롯이 즐길 수 있는 유리잔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특히 약주나 증류주처럼 향이 중요한 술은 우리 감각을 다 열어두고 즐겨야 한다.   


한국술을 와인잔에 마셔보자. 따를 때부터 느낌이 다를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한국술의 명맥을 잇기 위한 삼요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