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마리아주를 찾아 곁들인 5월의 우리술은,
*메인 사진은 제주도 곽지해수욕장에서 찍은 <주방장의 석탄주>입니다.
"혼저옵셔예"
마음의 고향, 제주에서 막 돌아온 주방장 인사드립니다. 호텔에서 일하며 정이 많이 든 섬이기에 그만큼 애정이 많은 곳입니다. 거의 2년 만에 다시 찾은 제주는 많이 변해있더군요. 익숙하던 바다엔 발전이라는 이름의 상처가 곳곳에 새겨졌고, 자연 풍경엔 인공적인 무언가가 스며들어 있었습니다. 대신 휑하던 곳엔 사람들의 발길과 에너지로 가득했어요. 인적 드물던 함덕 해안가엔 바다와 바로 맞닿은 산책로가 생겼고 외롭지 않은 제주 바다가 철썩이고 있었습니다. 참 그대로 유지해주었으면 싶었다가도 사람들의 발길이 머무는 곳이 되기 위해선 제주 역시 "변화"를 거듭하겠지요. 이렇게 변화는 익숙하던 곳에 새로운 경험을 선사해준다는 점에서 특별합니다.
제주에서 좋은 변화를 느낀 것처럼, 한국술 모임 <술 빚는 밤> 멤버들과도 새로운 도전을 꾀해봤습니다. 한국술과 색다른 마리아주를 찾아보며 상상하지 못했던 안주를 만드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부르스케타, 그릭 샐러드, 오리 라비올리, 스프링롤'까지. 글로벌 디쉬와 한국술은 어떤 합을 만들어냈을까요? 주방장의 색다른 변화는 한국술과 마리아주를 만들어냈을까요? 페어링 하기 좋은 한국술을 <월간 주방장 5월호>에서 소개해드립니다.
막걸리와 동동주, 두 명칭 모두 탁주를 말합니다. 어떤 방식으로 걸렀는지에 따라 부르는 게 달라지곤 합니다. 마구(위, 아래를 섞어) 걸렀거나, 금방 걸렀다는 걸 의미하는 데에서의 막걸리, 그리고 위에 쌀알이 뜬 모양을 보고는 동동주라고 합니다. 물론 시대가 변함에 따라 동동주의 의미가 변형되어 사이다를 섞거나, 과일을 띄운 형태를 부르는 말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남도탁주에서 나온 '정고집 옛날 동동주'는 어떤 방식으로 해석했을까요?
# 정보
식품유형 탁주
알코올 6%
내용량 750ml
성분 물, 쌀, 쌀가루, 효모, 조제종국, 정제효소제, 젖산, 아스파탐, 아세설팜칼륨
양조장 남도탁주
구매처 술팜
# 코멘트
“진짜 쌀알이 동동동"
이름이 동동주이기 때문에 선택에 있어 머뭇거림이 있었지만, 검은색과 흰색의 조화로 만든 라벨은 깔끔하면서도 세련된 느낌입니다. 어느 누구도 60년의 전통을 지닌 양조장에서 나왔다고 생각하지 않을 거예요. 첫 잔을 따르니, 잔 위에 정말 쌀알이 동동 떠있습니다. 적당히 뽀얀 색에 첫 향은 은은하게 달달합니다. 가벼운 농도에 맛이 많이 달지 않아 가벼이 마시기에는 제격입니다. 동동주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술에 무언갈 타거나, 마시고 머리 아픈 술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데 이 술은 그 이미지를 깔끔하게 깨버립니다. 정고집 동동주를 짧게 소개하자면 열이면 열 다 사랑에 동동 빠지는 술입니다.
# 어울리는 음식
"그릭 샐러드" 그리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대표 메뉴 중 하나인 그릭 샐러드! 큰 특징이라고 한다면 신선 함이며 토마토, 양파, 오이, 올리브 그리고 페타 치즈가 주를 이룹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수수한 멋과 맛을 지닌, 이름부터 동동주인 이 술과 함께라면 음식의 시작을 알리기에는 가장 제격이지 않을까요?
'충남 공주'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바로 밤입니다. 공주 밤은 고유명사로 불릴 만큼, 밤이 많이 나는 는 공주에서는 밤 막걸리만 여러 제품이 존재합니다. 각 지역마다 특산품을 재료로 막걸리를 만드는 건 참 재미있어요. 그 지역의 색깔을 술에 담아낸다고 할까요? 공주 알밤 막걸리는 지역 특산품을 이용한 막걸리 중 가장 성공한 막걸리라고 생각합니다. 밤이라는 재료의 특성이 막걸리에 잘 어우러진 것도 있지만, 달달한 밤의 향과 막걸리의 쌀 향의 균형을 잘 잡아낸 이유겠지요. 실제로 주변 여성분들이 제일 좋아하는 막걸리로도 꼽은 달달한 공주의 알밤막걸리, 기대한 달콤함을 선사해줄까요?
# 정보
식품유형 탁주
알코올 6%
내용량 750ml
성분 쌀, 밀가루, 물엿, 밤
양조장 사곡양조장
구매처 술팜
# 코멘트
“단 맛은 언제나 실패하지 않는다”
<술 빚는 밤> 멤버들의 최애술(최고로 애정하는 술)을 물었을 때, 빠지지 않던 밤막걸리는 역시나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만큼 대중적이며 실패하지 않는 단맛을 지닌 술입니다. 만약 누군가가 막걸리를 처음 마셔본다고 한다면 진입장벽이 높지 않은 밤 막걸리로 시작을 해도 좋을 것 같아요. 노오란 빛깔의 걸쭉함이 거부감이 없기도 하고 밤 맛과 쌀 맛이 아름다운 조화를 만들어내기 때문이죠. 그러나 개인적으로 제게는 조금 '과한' 술입니다. 밤의 단 맛을 살리려다 보니 밤 향을 많이 첨가되었고, 인공적인 단 맛이 오히려 막걸리 고유의 곡향을 가려버립니다. 그래서 기분 좋게 한 병은 비울 수 있어도, 그다음부터는 너무 달아 목에서 거부하는 술이기도 합니다. 여러 밤막걸리가 존재하지만, 만약 정말 밤 그대로의 맛을 더 높이고 단 맛을 줄인 밤막걸리가 나온다면, 당장 사랑에 빠질 것 같네요.
# 어울리는 음식
"베트남 스프링롤" 베트남하면 떠오르는 계절은 늘 여름이지만, 우리와 같이 사계절이 있는 나라입니다. 물론 북부(하노이)와 남부(호찌민)에 따라 다르긴 합니다. 쌀국수 다음으로 익숙한 스프링롤과 한국의 가을을 담은 밤막걸리와 함께라면 어떤 가을을 맛볼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새우와 야채가 가득한 프레시한 스프링롤 한 입에, 밤 막걸리의 꾸덕한 달콤한 한 모금이 더해진다면 그게 바로 행복한 마리아주죠.
초연함이 서서히 스며든다
일그러져 이빨을 드러낸다
우아함과 고통의 시간들이 비례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네
자신과의 싸움에 승리한다
먹잇감이 나의 눈을 바라본다
수려함과 노력의 정도와는 비례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네
우리는 호랑이 -Life and Time <호랑이>-
애정하는 밴드 Life and Time의 '호랑이'라는 노래입니다. 호랑이는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중후하고도 먹이를 사냥하기 전에도 기다릴 줄 아는 초연한 멋을 자랑하지요. 그런 호랑이의 특징을 잘 담아낸 배혜정도가의 스테디셀러라 할 수 있는 '호랑이 생막걸리'입니다. 기다림을 아는 호랑이처럼, 이 막걸리는 8주 동안 자연의 단 맛이 살아있습니다. 우리가 마시기 전까지 생발효를 하여 그 맛을 유지하는 초연한 막걸리.
막걸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마셔본 이 막걸리, 수려하게 한 모금 마셔봅니다.
# 정보
식품유형 탁주
알코올 6%
내용량 750ml
성분 정제수, 쌀, 국, 효모, 젖산, 에리스리톨
양조장 배혜정도가
구매처 술팜
# 코멘트
"정도를 아는 호랑이처럼, 완벽한 균형을 자랑하는 호랑이 생막걸리"
소개를 읽고 호랑이 생막걸리의 맛을 상상하신 분들이라면, 한 모금 마셔보고는 의아하실 수도 있습니다. 맛이 특별하지는 않기 때문이죠. 하지만 한 병, 한 병 비워도 질리지 않는 막걸리임을 알아차릴 수 있을 거예요. 정도를 아는 호랑이처럼, 이 술은 어느 하나 오버하지 않고 중간을 적당히 지킨 맛을 자랑합니다. 과하게 달지도 않고 시지 않으며 입안을 즐겁게 감싸는 탄산 감과 깔끔한 피니시로 끝나는 이 막걸리. 그래서 몇 병씩 마시고 마셔도 질리지 않는 술입니다. 보통 주점에 가면 여러 막걸리를 마셔보곤 하지만, 호랑이를 마시는 날에는 호랑이만 마십니다. 그만큼 기복이 없는 만족스러운 술이기 때문이죠. <술 빚는 밤> 멤버들 역시 요리와 함께 마시던 날, 호랑이 막걸리를 가장 먼저 비우시더군요. 그만큼 어느 음식과도 함께 하기 좋은 짝꿍이겠죠.
# 어울리는 음식
"부르스게타" 오븐에서 갓 꺼낸 바게트에 뜨거울 때 버터 대신 마늘을 발라 향을 입혀주세요. 그리고는 붉은 토마토와 향긋한 바질, 올리브유 그리고 리코타 치즈까지 올려주세요. 게다가 질리지 않는 단맛의 호랑이 막걸리를 함께 곁들인다면 색도 맛도 화창한 봄날처럼 화사해질 거예요.
술아는 특별한 술입니다. 제 손으로 빚어 본 시중에 판매하는 상품이기도 하고, 어디서도 쉽게 찾기 어려운 과하주이기 때문이죠. 술아원에서 근무하며 술아원의 술을 많이 마셔봤지만, 그중에서도 <술아>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술입니다. 약주도 증류주도 아닌, 그 중간에서 최고의 단 맛을 자랑하는 이 술은 봄/여름/가을/겨울마다 다른 재료가 들어갑니다. 봄에는 매화, 여름 연화주엔 연잎, 가을엔 가을 국화를 넣은 국화주, 겨울에는 순곡주입니다. 풍정사계와 비슷하게 사계절을 담은 술입니다. 한국술의 매력이라 한다면 이렇게 사계절이 담길 수 있다는 점이겠지요. 사계절이 있음에 네 가지 다른 술들을 맛볼 수 있기도 하며 계절마다 다른 재료로 만든 술을 마실 수 있기에 감사합니다. 연잎이 들어간 술아는 여름의 어떤 맛을 선사해줄까요?
# 정보
식품유형 약주 (과하주)
알코올 15%
내용량 375ml
성분 찹쌀, 누룩, 건조연화꽃, 증류주, 정제수
양조장 술아원
구매처 술아원
# 코멘트
"한국식 포트와인이 아닌, 한국의 과하주라 불러주세요"
과하주란 여름을 지내기 위한 술로 여름에 술맛이 금방 변하기 때문에 도수가 센 증류주를 약주에 탄 술입니다. 약주와 증류주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술이라는 점에서 과하주는 존재감이 뚜렷한 술입니다. 과하주는 종종 '한국식 포트와인'으로 설명되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과하주는 그냥 과하주라고 불렸으면 해요. 단 맛을 끌어올렸고 알코올 도수를 높였다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우리의 한국술인 과하주가 외국술의 명칭을 빌려 소개되는 점이 아쉽거든요. 과하주 술아의 연화주는 좋은 의미로 '위험한' 술입니다. 너무 달콤한데 도수도 세서 금방 취하기 좋은 앉은뱅이 술 같습니다. 연잎은 생각보다 은은~한 풀 향이 날 것이라 생각하지만 씁쓸한 맛이 살짝 술을 감돕니다. 그래서 단맛을 중재시켜주기도 하죠. 연잎을 넣은 술은 <연엽주>도 있지만, 단 맛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술아원의 과하주로 시작을 해보시는 것 어떨까요?
# 어울리는 음식
"오리 라비올리"
오리 라비올리는 사실 손이 많이 가는 요리입니다. 기름으로 오리고기를 익히는 콩피를 만들고, 만두를 빚듯이 성형을 해야 하고, 잘 삶아내야 하며 마지막에 끼얹는 크림소스까지 필요합니다. 그렇지만 이런 과정을 거치고 한 접시에 담아내면 입 안에서 오리 한 마리가 뛰어노는 듯 한 느낌을 받을 수 있죠. 과하주는 오리 라비올리의 풍부한 맛을 잠시 단 맛으로 '멈춤'시켜주고, 다시 입맛을 돋워줍니다.
예상치 못한 선물이 주는 감동은 몇 배로 더 큽니다. 이름도 예쁘고, 술 라벨마저 아름다운 이 술은 주방장이 처음으로 받은 '술'선물입니다. 그동안은 주방장으로 술을 주로 주곤 했지만, 선물로 받은 첫 술입니다. 이번 달부터 시작한 대전에서 <한국술 이야기 빚는 밤> 강연에서 참석자 분이 주신 이 술은, 따끈따끈한 신상 술입니다. 제주의 동백꽃을 담은 이 술은 의미 역시 뜻깊은 술입니다. 수익금이 제주 4.3 사건 유족들에게 성금으로 전달된다는 이 술. "판매 수익을 거두는 것을 넘어 이 술을 통해 제주의 슬픈 4월이 후각과 미각으로 오래 기억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이 술. 동백꽃이 담긴 술은 처음이라 주방장도 마셔보기까지 정말 궁금했던 이 술, 어떤 신선함을 주었을까요?
# 정보
식품유형 기타주류
알코올 16%
내용량 365ml
성분 동백꽃잎(제주), 정제수, 포도당, 효모
양조장 제주본초협동조합
구매처 선물
# 코멘트
“의미가 모든 걸 설명하는 술”
한약방에 들어와 있는 줄 알았습니다. 제주 붉은 누룩을 활용해 동백꽃을 발효시켜 개발했다는 이 술은 신비한 맛을 자랑하는 술입니다. 한국 술에서는 쉽게 느끼지 못한 풍부한 향이 한 잔에 담겨있습니다. 표현조차 하기 힘든 새로운 향과 맛이 입안을 감돕니다. 제주의 4월이 후각과 미각으로 기억될 수 있기에 충분합니다. 로제 와인같이 은은한 핑크빛을 자랑하는 이 술은 예상치 못한 선물인 데다가 기대치 못한 맛으로 감동이 두배가 되었습니다. 이런 술을 만들어주신 분과 선물해주신 분께 모두 감사드립니다.
# 어울리는 음식
"보리빵"
제주도민들에게 쌀보다 주식이 되었던 재료는 바로 보리입니다. 보리빵의 매력이라 한다면 '슴슴함'입니다. 팥 앙금이 들어있지 않은 보리빵은 특히나 그 심심한 맛 때문에 자주 찾게 됩니다. 워낙 이 술의 맛과 향이 다양하니 보리빵의 슴슴한 구수함으로 균형을 맞추어준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2019년 5월호 <월간 주방장>에서는 색다른 마리아주를 찾기 위해 페어링 한 한국술을 소개해봤습니다. 5월은 주방장에게 시작과 마지막이 맞물린 달이었습니다. <술 빚는 밤> 멤버들과 여섯 번의 술 만남이 끝이 났고, 제 고향 대전에서는 <한국술 이야기 빚는 밤>이 새로 열렸습니다. 우리의 술이라는 매개체 하나로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고 연결될 수 있음에 신기하고도 감사한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5월에도 잊지 않고 꼽아 본 '장원 술과 아쉬운 차석 술' 선정입니다.
이달의 장원(베스트 우리술)은 과하주, 차석(2% 아쉬운 우리술)은 공주 알밤막걸리 입니다.
다가오는 6월에도 한국술의 맛과 멋을 알리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이고 변화하겠습니다.
다음 달에도 많이 마시고 요리하고 즐기며 다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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