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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람 Jan 05. 2024

6. 중환자실의 간병인

"네? 아버님이 쓰러지셨다고요?  

네..... 지금 바로 갈게요."


남편이 새로운 직장을 얻고 2년이 지났습니다. 우리 가정은 점차 빚을 갚으며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어느 무더운 여름날,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시던 시아버님께서 갑자기 쓰러지셔서 주위 분들의 신고로 119구급차에 실려 대학병원에 입원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병원에 도착하여 보니, 아버지의 상태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온갖 줄들이 아버지의 몸에 연결되어 있고, 인공호흡기로 겨우 호흡을 하시고 계셨습니다. 의식은 당연히 없으셨습니다. 시아버지의 연세는 이제 70세,  아직 돌아가시기엔 너무 젊은 나이셨습니다.


저는 어린 나이에 결혼을 했지만, 시댁에서 시아버지와 시어머니의 사랑을 많이 받았습니다. 아버님은 겉으론 무뚝뚝해 보이셨지만, 저를 딸처럼 아껴 주시곤 하셨습니다. 저뿐 아니라, 우리 집 큰 아이도 무척이나 예뻐해 주시고, 사랑해 주셨습니다.


이런 아버님께 꼭 예수님의 이야기를 전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죄인 된 나를 위해 이 땅에 오셨고, 나를 대신해서 죄의 형벌을 받으셨다고, 예수님께서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목숨을 버리기까지 나를 사랑하셨다고. 그 예수님께서 아버님도 사랑하시고 구원의 길로 초청하신다고 말씀드리려 했습니다.


그러나 아버님은 그때마다, "난 나중에 교회 갈 거야.  언젠가 꼭 갈 테니 걱정 마라"하셨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이렇게 쓰러지신 것입니다. 저에게 하신 약속을 지키시지 못한 채 돌아가실 것 만 같아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혹시라도 영영 일어나지 못하시면 어쩌나 두려웠습니다.


처음 아버지께서 쓰러지셨을 땐 자녀들이 연차를 내고 돌아가며 간병을 했습니다. 그러나 병원생활이 길어지자 직장이 있는 자녀들은 각자 삶의 터전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결국 시어머니와 아직 직장을 다니고 있지 않은 제가 공동 간병을 하기로 했습니다. 낮엔 시어머니께서, 밤엔 제가 간병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당시 우리집은 남편은 서울 본사에 근무하고 있었고, 저는 지방에 있으며 중학생 과외지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낮엔 아이들의 학습을 지도하고 밤엔 중환자실로 가서 밤새 간병을 했습니다.

대학병원 중환자실 간병인은 한 명만 허락되었습니다. 그 한 명이 자리를 비우지 않고 환자를 돌봐야 합니다.

중환자실엔 보호자용 간이침대도 없어 중환자실 보호자는 밤에 잠깐씩 보호자실에서 쪽잠을 자고 나와야 합니다. 보호자실은 남녀 구분도 없고, 그냥 작은 방 하나라서 정말 잠깐 눈을 붙일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과외가 끝나면 큰 아이 저녁을 먹여 친정집에 아이를 맡기고 집을 나섭니다. 7시가 되면 낮동안 간병하신 어머니와 인사를 나눈 후 어머니는 집으로 가시고 저는 남아 야간 간병을 시작했습니다.  아버지 침대 옆에 의자에 앉아 아버님의 뻣뻣해진 발을 주물러 드리며 기도를 시작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 시아버지, 건강하게 다시 일어날 수 있게 해주세요.  이렇게 돌아가시면 안 됩니다. 아직 주님을 모릅니다. 주님, 저희 아버지를 긍휼히 여겨 주세요. 다시 깨어나셔서 건강해지고, 복음을 듣고, 꼭 구원을 얻을 수 있도록, 인도해 주세요."

 

매일매일 아버님을 찾아가 다리를 주물러 드리며, 이 기도를 했습니다. 그간 건강하실 때 좀 더 적극적으로 말씀드리지 못한 게 후회가 되었습니다. 기도를 하다 보면 마음이 아파 눈물 콧물이 흘러내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버지를 긍휼히 여겨 주시고, 다시 일어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루는 옆 침대의 보호자께서 어머니께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 아이고, 저녁에 오는 그 아가씨 말이여, 이 할아버지 막내딸 인가 본데, 매일 울면서 저리도 끔찍이 아버지를 챙기니, 아버지가 감동해서라도 일어나겠어요..."


얼마 후 정말 아버님께서 깨어나셨습니다. 의식은 돌아오셨는데, 가족들을 잘 못 알아보셨습니다. 정신이 온전한 날도 있었지만, 전혀 아무도 못 알아보는 날도 있었습니다. 아버님의 병명이 뇌경색이었는데, 뇌경색과 함께 치매 증상이 온 것이었습니다.


간병 생활이 길어 지자 체력적으로 너무 힘에 부쳤습니다. 낮에 일을 하고 밤에도 거의 잠을 못 자고 아버님 곁에서 기저귀를 갈아 드리고, 소변 받고, 석션해 드리고, 호흡기 등이 잘 작동하는지, 열이 오르거나 하지는 않는지 관찰해야 했습니다. 저는 점점 말라가고 10Kg 가까이 살이 빠지고 얼굴은 까매져 갔습니다. 그래도 간병을 포기하지 않았던 것은 아버님의 임종을 제가 지키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께서 의식이 있으시든, 없으시든, 기회가 될 때마다 복음을 전해 드렸습니다. 제가 아버님께 받은 사랑을 갚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복음을 전해 드리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아버님께서 정신이 온전하셨던 날, 저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 며느리는 복을 많이 받았다고. 우리 며느리가 하늘에서 별과 같이 빛나고 있는 것을 아버님이 보았다고 말이죠. 꿈을 꾸셨는지, 정말 보셨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말씀을 듣고, 저는 이런 성경의 구절이 떠 올랐습니다.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 (다니엘 12장 3절)


이 말씀을 보며, 참 많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나의 고생과 어려움을 하나님께서는 잊지 않으시고, 바라보고 계시는구나... 아버님께 복음을 전하려는 선한 의도를 하나님께서 귀하게 보시는구나....'


아버님은 이후 많은 차도를 보이시며 석 달만에 인공호흡기를 떼시고, 일반 병실로 가시게 되었습니다. 이후 좀 더 좋아지셔서 요양병원으로 옮기셨습니다. 계속된 며느리의 간병이 고맙고도 미안했는지 아버님은 저에게 "내가 퇴원을 하게 되면 농사로 돈을 많이 벌어 너에게 1억 원을 주고 싶다. 너에게 너무 고마워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신 채 아버님은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쓰러지신 지 100일이 조금 넘은 어느 날,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소원대로 아버님의 임종은 제가 지킬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지막까지 저는 아버지를 위해 간절히 기도 했습니다. 아버님이 천국에 가실 수 있기를, 그리고 나중에 꼭 천국에서 만나 뵐 수 있기를.


하나님께선 아버님을 위한 마지막 기도 역시 들어주셨다고 믿습니다. 그 언젠가 천국에서 아버님과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습니다.


아직 사랑하는 가족, 친구들에게 복음을 전하지 못하신 분이 계신가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내가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예수님을 전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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