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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반지 Apr 24. 2021

40대 늦깎이 공무원의 슬기로운(?) 공직생활

내 친구 '기업지원팀'을 소개합니다.

고용센터에는 여러 친구들이 있다. 여러 친구들에 대한 소개는 해당 지역 고용센터 홈페이지에 가면  볼 수 있다. 모두 국민을 위해 바쁘게 활동 중이다. 내가 소개하고 싶은 친구는 내가 속해 있는 기업지원팀(기지팀)이라는 녀석이다.

 

난 이 친구를 생각하면 항상 중앙도서관이 생각난다.

난 콜센터에서 8년을 일했다. 나는 근무시간 내내 말을 했었다. 처음 이 친구의 '이 분위기'에 적응하는 데 꽤 힘들었다. 지금은 '도서관 총무다'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지 처음엔 오후 3시가 넘어가면 무거운 침묵의 무게에 뒷목뼈가 아파왔다.


이 친구에겐 찾아오는 민원인이 거의 없다. 외로운 녀석이다. 동기에게 이런 말을 했더니 "언니 실업급여 창구 업무 하루만 해봐요. 그 외로움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 거예요"라고 했다.  외로움의 이유는 하는 업무를 알게 되면 쉽게 이해가 된다.  이 친구의 주된 업무는 사업주에게 지원금을 주는 것이다. 이렇게 저렇게 근로자를 배려해주고 실업자를 도와주고 했으니 국가에서 착한 일했다고 돈을 주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업주들은 세무 대리인이나 노무 대리인과 나라의 지원금들을 상담한 후 바로 업무를 의뢰한다. 때문에 중간 대리인들이 온라인으로 신청하고 서류를 제출하기 때문에 사업주들이 찾아오는 일은 아주 드문 일이다.


내가 직접 사업주를 뵙고 상담을 한 적은 딱 두 번 있었다. 기업지원팀에 발령받고 초반엔 고용유지지원금과 청년추가고용장려금 업무를 했었을 때 나이가 지긋하신 한 사업주 분이 내 책상 앞에 앉으셨다. 엄지와 검지에 골무를 끼고 서류에 코를 받고 있었던 나는 살짝 고개를 들었을 때 민원인 분이 앉아계셔서 깜짝 놀랐다.  5인 미만 사업장에 사업주로 각종 지원금들을 전반적으로 다 알고 싶어 하셨다. 전반적인 지원금들을 다 알고 있지 못한 나는 뭐에 리듯 지원금 책자가 꽂혀있는 책장으로 민원인을 안내한 후 페이지를 넘겨가며 읽어드렸다.


또 한 번은 ㅇㅇ지원금을 받기 위해 1년간 준비했다며 지금 가고 있다며 전화로 미리 선전포고를 하시고 오신 사업주 분도 계셨다. 막상 와보니 뜻밖에 그 사업장은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다.

 

이 친구의 짝꿍은 모성보호팀이다. 현재 나는 모성보호 업무를 하고 있다. 이 업무도 대부분의 민원인 분들이 온라인으로 신청하고 서류를 제출하시거나 팩스나 이메일로 보내기 때문에 찾아오는 민원인이 거의 없다. 그래도 사업주 지원금과는 다르게 하루에 두세명 정도는 방문하는 민원인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인생은 반전이 있는 드라마. 내 친구 기업지원팀도 엄청난 반전을 가지고 있다.


사실은 날로 진화하는 사업장들의 부정수급을 찾기 위한 전쟁을 매일매일 힘들게 하고 있었다.  휴업 또는 휴직을 하지도 않으면서 버젓이 휴업과 휴직에 대한 계획 신고를 하고 매달 지원금을 신청하는 사업장들이 있다. 심지어 매달 새로 작성해야 하는 서류들엔 화이트로 지워서 날짜만 바꿔서 보내는 경우도 있다. 서류가 아무것도 아닌 흰 종이 같지만 사실 애들이 상당히 솔직하다.


서류는 거짓말을 안 한다. 80프로(100프로 내 느낌) 정도 서류에서 부정수급이 확인되는 경우가 많다. 돈이 많이 나가는 지원금들은 그만큼의 각종 서류를 원한다. 수십 장의 서류, 또는 백여 장이 넘는 서류, 이걸 고치기 시작하면 분명 어디 즈음에선가 반드시 티가 난다.  


저번 주는 주무관님들이 오랫동안 휴업과 휴직 신고를 한 사업장방문 점검을 하러 갔다. 예상대로 거짓신고를 한 사업장들이 많이 있었다고 한다. 한 사업장은 근로자 4명 중에 3명이 휴업을 한다고 신고했지만 주무관님이 방문했을 때 손님인 줄 알고 4명 모두 우르르 나와 '어서 오세요'했다고 한다. "고용노동부"라고 하자마자 3명은 모두 화장실로 줄행랑을 쳤다고 한다. 그리고 모두 우연히 화장실 사용을 위해 가게를 들렀다고 한다.


방문 점검을 하고 돌아온 주무관님들은 '공무원을 눈 뜬 장님'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고 허탈해하셨다. 정기적으로 단속을 나가려 해도 쏟아지는 지원금 신청에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최근 고용노동부 공무원을 많이 뽑았음에도 전국적으로 1/n을 해서 청으로 분배되고 다시 지청으로 다시 센터로 다시 각 과로 팀으로 나누다 보면 한 명정도가 신규로 충원된다.   


모성보호 쪽도 조기복직을 했음에도 육아휴직급여를 꼬박꼬박 타간 민원인들이 종종 적발된다. 내가 하는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급여도 한 주의 근로시간을 25시간을 단축했다고 신고한 후 사실은 사업장에서 5시간 정도만 단축을 서 사업주에게 거의 한 달 월급을 받고 지원금도 받는 부정수급들이 있다. 다행히 모성 쪽 부정수급들은 시스템에서 거의 다 걸러진다.  출산휴가, 육아휴직, 육아기근로시간단축급여. 육아휴직 사후 지급 등등 자녀의 주민번호를 중심으로 모든 게 촘촘히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고용보험 지원금들은 한 개만 있는 게 아니기에 본인이 다른 지원금을 받으려는 순간 이전의 모든 기록들이 점검받기 때문에 결국 들통이 날 수밖에 없다.  


물론 부정수급은 부정수급팀이 별도로 있고 두 달 된 신입이 부정수급에 다 안다고 할 수 없지만 두 달간 겪었던 게 이 정도였다.


이렇듯 앞모습은 단정하게 조용한 친구인 줄 알았던 기업지원팀은 뒤에선  '더 받으려는 자, 계속 받고 싶어 하는 자'들과 끝없는 싸움을 하고 있었다. 모든 민원인들에게 친절해야 하지만 순진하게 무조건 친절할 수 없는 속내를 가진 위로가 필요한 친구. 민원인을 의심하고 싶지 않지만 의심을 해야 하기에 더욱 소심 해지는 친구, 왠지 이 친구에게 시간이 갈수록 정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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