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날 신청서 처리를 두건 세건 했던 나는 일주일 즈음이 되자 하루에 20건을 할 수 있게 됐다. 이제 30건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신입 허세 - 아직 해보진 못함 ㅎ) 서류와 돈은 토를 다는 애들이 아니다. 그래서인지, 그들을 다스리는 것은 쉬운 듯했다.
이 업무를 시작할 때 주변 주무관님들이 한 마디씩 이런 말씀을 하셨었다.
"거기가(모성보호) 전화 민원이 꽤 쎄요."
무슨 말인지 이해가 잘 안 갔다.
한 통의 전화가 왔다.
"반갑습니다. ㅇㅇ고용센터입니다" 패기 있는 목소리였다. 조금 화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용보험 미적용자 출산급여 문의인데 왜 나한테 문자를 안 보내줬어요. 내 옆 사람들은 문자를 받았는데 이거 국민을 차별해도 되는 건가요?"
내가 말했다.
"저 죄송한데 주변분들이 무슨 문자를 받으신 건가요?"
민원인이 말했다..
"고용보험 미적용자이니 출산하면 출산일로부터 1년 이내 출산급여를 신청하라고 보냈대요. 나는 못 받아서 출산일로부터 1년 3개월이 지났어요. 왜 차별하는 거예요?"
난데없는 '차별'문의에 어떻게 해결을 해야 할지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내가 말했다.
"제가 이 업무를 한 지 얼마 안 돼서 그러는데 만약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면 차별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선생님을 응원합니다. 힘을 내시기 바랍니다."
뭔가 우리 둘 다 새로운 숲으로 입장한 느낌이었다. 아 나만의 착각이었다. 정신줄을 놓은 건 나 혼자였다.
정신줄을 제대로 잡고 있던 민원인이 그랬다.
'차별이니깐 해결해주세요. 출산일로부터 1년 지났지만 저도 출산급여를 주세요"
내가 말했다.
"출산일로 1년이 지나서 안됩니다.(지침서에 있는 말을 일단 읽음) 하지만 선생님을 응원합니다. 힘을 내시기 바랍니다.(지침서에 없는 말 나의 의견)"
나는 이상하게 이 민원인을 '응원'하고 싶었다. 난 '차별'이라는 말에 꽂혔고 민원인은 '1년'에 꽂혔다. 같은 말은 반복됐고 난 '응원'했고 '민원인은 당황했다. 우리의 이야기는 끝이 나지 않는 뫼비우스의 띠 안에 갇혀버렸다. 나도 나오고 싶었지만 나올 수가 없었다. 그 순간 내 머릿속 '생각하고 해결하는 회로' 쪽이 완전 고장이 난 거 같았다. 아니 애초 존재하고 있었는지 의심이 갈 정도로 완전히 자취를 감춰버렸다.
뭐든 지치는 쪽이 끝나는 법..
두 달 된 신입은 지치지 않았다.
정신줄을 끝까지 잡고 있었던, 지친 민원인은 온 국민이 이런 걸 알 수 있게끔 제도개선이 필요하다며 방법을 물었다.
순간 해결의 방이 열린 듯했다.
제도개선의 의견을 올리는 곳 '국민신문고'
이곳을 알려드렸다. 내가 그랬다. "소중한 의견 정말 감사합니다." 끝이 났다. 끝이 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지질한 이별이 끝난 것 같았다.
고용노동부 쪽에선 국민 개개인에게 어떤 지원금 관련 정책이 나왔을 때도 문자를 보낸 적이 없다. 보도자료나 고용노동부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홍보를 하고 가끔 워낙 시대와 잘 맞물리는 것이라면 (최저임금, 가족돌봄비용) 언론에서 하루 종일 나오기도 한다.
민원인과 통화 이후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뭘 잘못한 것 같았다.
그런데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다. 그게 문제다.
분명히 이런 식의 문제제기는 또 들어올 수 있다. 그때 어떻게 민원인에게 말을 하는 게 현명한 것인지 모르겠다.
1. 고용노동부는 열심히 했다. 네가 관심이 없어서 몰랐던 거다. -----> 민원유발
2. 고용노동부가 잘못했다. 무조건 우리가 죄인이다. ------------> 그래도 민원유발
3. 고용노동부가 잘못이 아니라 실무담당자인 내가 잘못이다. ------> 그럼에도 민원유발
딱히 누구와 이것을 조직 내에서 상담해야 할지 모르겠다.
콜센터에서 7년 넘게 근무했지만, 그리고 이제 공무원이 되어서도 여전히 모르겠다. 항상 머리가 하얘진다. 항상 회로는 고장 난다. 항상 잘못을 한 느낌이다. 여하튼 항상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