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공무원이 된다는 것은 '일이 많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5개월 시보 공무원이 느낀 바로는 그렇다.
나는 그렇게 정이 많은 사람은 아니다. 소위 정이 많은 사람들은 '아기'를 좋아하고 '동물'을 좋아하는 것 같다.
그런데 난 내 아이를 출산하기 전까지 세상의 '아기'들을 그리 좋아하지도 않았고 털이 있는 생명체는 털이 날려서 털이 없는 생명체는 매끈한 게 징그러워서 좋아하지 않았다.
일반적 관점에서 나는 분명 따뜻한 사람은 아니다. 그래서인지 공무원이 됐을 때 '따뜻한 공무원'이 되려는 생각은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발령장을 받고 바로 희망한 것이 있다면 일을 하면서 주변선배 동료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공무원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곧 시보가 떼 진다고 하니 감히 국민을 위해, 시민을 위해, 주민을 위해 나는 어떤 공무원이 돼야 할까 라는 고민을 해보게 됐다. 2월 초 기업지원팀으로 발령받고 열심히 선배 주무관님들의 일 스타일을 관찰하고 있었을 때 눈에 띄는 두 분이 계셨다.
S주무관님은 일을 가르쳐 주실 때마다 이런 말을 하셨다.
"대부분의 영세한 사업장은 대기업처럼 노무사나 노무 담당자가 없기 때문에 행정력이 열악하다. 그것을 항상 유념해서 작은 사업장에 애정을 가지고 서류를 알려주고 서류를 챙겨라"
S주무관님은 평소 일하실 때 사업장에 서툰 서류 처리에 대해 설명을 구체적으로 하시고 서류를 안내하고 다시 서류를 받아서 작은 사업장들이 지원금에 소외되거나 서류 실수로 지원금이 부지급되지 않도록 신경을 쓰셨다.
반면 H주무관님은 늘 원칙을 강조하셨다.
"이것을 제출하지 않으면 지원금 부지급하셔야 합니다. 만약 보완을 요청했을 때 서류를 조작하거나 부정이 발생될 확률이 높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런 서류를 제출하지 않으면 반려 처리하세요. 그런 것을 받아주면 다음번에도 그런 식으로 신청을 할 것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부족한 서류가 있으면 바로 반려 처리하는 게 낫습니다."
H 주무관님은 책에 써져 있는 것보다 더 원칙적인 선을 지키며 일처리를 하시는 것 같았다. 그렇기에 전화로 민원인과 다투는 것도 자주 목격했다.
그땐 그냥 일 스타일이 다르시구나 하고 넘어갔었는데 이제 본격적으로 내가 지급을 하고 부지급을 해야 하는 1차적 판단자가 되어보니 나도 모르게 나의 스타일이 나오고 있었다. 알고 보니 의외로 나는 S주무관님과 비슷한 성향이었다.
법을 잘 몰라서 서툴게 처리한 사업장이었다. 그래서 서류들이 조금씩 틀어졌다. 나는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기에 사업장에 설명을 해서 잘못된 부분은 다시 보완할 기회를 주고그에 대한 관련 서류들을 이렇게 처리하라고 알려주고 신청한 지원금 업무를 처리해준 적이 있다.
그런데 그 사업장이 바로 옆 지역 고용센터에선 같은 상황이었는데 접수를 해주지 않았고 해당 고용센터에선 나에게 업무를 처리하라고 이관을 해줬다고 했다. 나는 잠시 혼란에 빠졌다. 내가 잘못한 것일까.
S와 H의 중간지점의 일처리 스타일의 D주무관님에게 물었다.
'제가 잘못한 것일까요. 시보 공무원 주제에 함부로 판단한 것일까요? "
D주무관님은 답했다.
"그건 그 옆 지역 고용센터 담당자가 잘못한 것 같은데. 그 정도는 그렇게 보완을 해서 접수해서 처리해주면 될 텐데 왜 그랬대?"
D주무관님의 깔끔 명료한 답에 힘을 얻었지만 옆 지역 고용센터 담당자에게 미안했다. 분명 저쪽은 해주는 데 이쪽은 안 해주냐는 식의 실랑이가 있었을 것이고 어쩔 수 없이 나에게 이관을 했을 것이다.
내가 처음부터 이 사업장의 지원금 신청을 반려하거나 부지급 처리를 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이런 일들이 한두 개 쌓이다 보니 일이 밀리기 시작했다. 그 사업장을 신경 쓰느라 다른 사업장 서류들을 볼 시간이 부족해지거나 늦어졌다. 팀장님이 내 업무에 속도감이 떨어진다고 말을 했다는 것을 선배 주무관을 통해 들었다.
하지만 나의 마음과 나의 행동은 따뜻한 마음으로 달려가고 있다.이유는 자꾸만 우리 할머니와 엄마가 생각나서이다. 할머니와 엄마는 산촌 시골에 살면서 글자를 몰랐다. 그래서 윗 집에 사는 이모부가 없으면 어떤 행정 업무도 처리할 수가 없었다. 읍내 동사무소 직원이 찾아와 설명해주지 않았다면 집문서도 어찌 됐을지 모르고 나와 내 동생도 출생의 흔적을 못 남길 뻔했으니 말이다.
글자를 몰랐던 우리 할머니와 엄마처럼 법을 잘 몰라서 자기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사업주나 민원인도 같은 처지라는 생각이 들어서 자꾸 도와주고 싶다. 조금만 도움을 주면 국가의 행정시스템에서 소외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