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서울역으로부터

by 후안

1

외로워 비스듬이 돌아누운

홑몸의 달, 수태고지 받으사

배 속의 광자光子 무럭무럭 자라나

만삭의 달로 저기 둥실 떠오르다.

뱃가죽 거뭇거뭇 튼살 비치고

양수 같은 월광月光이 터져 나오는 아래


달빛 이염移染된 밤바다도

산産달 다 된 양막 닮아 검게 부풀어

입덧 기운 출렁출렁 난반사해대고

찬물에서 기어나온 젖먹이짐승의 더운 핏물도

걸쭉히 장력 올라 끌고, 또 당긴다.



2

격몽擊蒙의 태양이 달의 뒷면으로 떼밀려

지혜의 바다 마른 흙 속에 풍덩 수장당한다.

미몽迷夢의 계절이 어김도 없이

지구의 대기권에 으스스 불어온다.

식은 맨틀이 쪼개진다.

파묻었던 악몽들, 시간에 살해당한 자들

허기에 잠 깨어 꿈틀꿈틀 밥상 찾아 기어나온다.


지구는 이제 한낱,

달 지키는 위성衛星,

믿지 못할 혹성惑星,

내세로 가는 행성行星 되어

일식日蝕의 궤도 속으로

휘영청 빨려든다.


시간은. 수준 낮은 거짓말이야.

이제부터는 마이너스의 시간.

모든 사물과 현상들이 제 나온 그늘로

되돌아 가겠다고 뒷걸음질치잖아.

누가 기억이나 할까, 이 사건의 근원을,

그 계보의 시발始發과 족보의 개막開幕을.



3

시뻘건 쇳길 뻗쳐

쪼개지고 갈라진다.

이 길은 상행도 하행도 하지 않는

혈행선의 역류.

일족들 그 위를 위태롭게 내달리며

아찔한 현기증에 모두 말을 잃는다.


혈육과 그 혈육의 혈육

핏줄과 살점으로 엮은 투망질에

못 생긴 아이 업은 못 생긴 남자가

속절없이 견인된다.


온종일 켜놓은 서울역의 티브이 안에

네모반듯 베어 낸 평면의 달 비치고

월광에 홀린 전국 각지 광신도들 언덕에 기어 올라

처녀의 잉태다, 신령한 기적이다,

손바닥 비벼대며 죄스러운 욕망을 고백하고 있다고,

지금 보시는 바와 같이 생긴 꼴과 꼴들이

각자의 유사성을 찾아 뿔뿔히 흩어지고 다시 모이며

전국적으로 형태의 질서도와 관계의 무질서도가

부지런히 상승하고 있다고,

기자들이 오래된 문장을 반복해 읽어댄다.



4

속보입니다.

서울역 바닥에서 힘껏 뻗어나와

경부호남 갈라지고 이씨박씨조씨황씨 쪼개지는

그 강철의 길 끝자락 어디쯤에.

한 남자가 마른 몸뚱이 누여 놓았다고 합니다.

무중력의 육신을 걸쳐 길을 막았다고 합니다.


태초부터 윤회하는 시간의 곡률은 무한대.

반복되고 반복되어 업보처럼 영원되는

돌고 돌아 다시 돌아오는

생식生殖질과 용두질의 생지옥.

이 영생하는 염통과 생식기 사이 주고받는 박동을

마침내 산산히 끊어놓겠노라고

순결한 피의 혁명을 시작한다고 합니다.


나는

공기 중에 자연발생하고 싶었다.

세습된 육체 없는 완전무결한 혈통으로

우주의 무엇과도 이어지는 않는

하나의

점.

으로 태어나기를 바랐다.

⋯⋯라고 소리 질렀다고 합니다.



5

철분의 레일 비로소 핏줄 되었네.

그 길 달린 새 신발 몇 켤레

피 묻은 족적으로 본관本棺에 들어선다.


그 길에 마중나온

이름과 이름이 이어붙고,

항렬行列의 행렬行列이

와글와글 행진하여

혈통의 중력권에 와류하면

닮고 또 닳은 얼굴들

줄줄이 엮여들어 서로의 발목을 부여잡고.

마침내 문명의 직립이 무너지고

냉골 모노륨 장판에 납작 엎드린채

혈족穴族은,

상실했던 야만의 기억을 구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