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안, 한 여자가 운다

by 후안

당신의 꽉 찬 꿈속을 비집고, 여기

미상의 소리 하나 침입한다.

억압받는 딸꾹질이거나

제 손으로 제 목 죄는 질식의 발악이거나

분연히 소요가 일어나며

당신의 악몽은 더욱 위험해진다.


참혹한 가위눌림의 절망 끝에

당신이 비로소 눈 뜬 곳의 좌표는,

몇십 년째 술기운에 몸져누운 숙면의 도시

그 도시를 두 동강 분열하는 거대한 하류

그 중심을 무단으로 횡단하는 아홉 번째 교량

그 상판을 지나 평일을 관통하는 만원의 간선 버스

그 차량을 촘촘히 채운 파아란 색 이인용 좌석 위.

그곳에서 당신은,

홀연히 깨어난다.

깨어나서 침묵한다.

침묵하며 경악한다.


한 여자가 울고 있다.

앙상한 플라스틱 버팀대에

저 여자, 서른 살 먹은 인격과

오십 킬로그램의 몸무게를 모조리 던지며.


보드랍던 심장과 창자 딱딱히 굳어

핏기 잃은 여체가 품은 것은 이제

비탄悲歎을 땔감 삼는 작은 내연기관 하나.

차마 삼키지 못한 울음의 매연

풀럭풀럭 몸밖으로 터져 나오고,

밀려드는 사람에 설움에 구속된 홑겹의 육신은

허공에 목매지도 손목 그어 베지도 못한 채로

허무에 목메고 소매에 물기만 배어 번진다.


여자를 위태로이 흔들어 대는 것은

관성으로 위장한 슬픔의 물리학,

중력으로 조작된 절망의 방정식.

저 여자, 저 두 손, 저 두 발,

화장에 실패한 저 두 눈으로,

자신을 떼어 내려 몸부림치는

버스의 일부를 꼬옥 붙들어

역학의 법령에 완강히 항명한다.


여자의 흔들리는 작은 체중이

중년 부인의 쇠퇴한 둔부를 흔들고

부인의 지방질이 청년의 앙상한 척추를 흔들고

청년의 골격계가 노신사의 힘 빠진 오금을 흔들고…

전자레인지에 구금된 한 그릇 식은 밥알처럼

당신들은 집단적으로 전율하며 서로 마찰한다.


벌겋게 달궈진 당신의 두개골 깊숙한 곳에서

작고 작은 편도체가 뜨겁게 부푼다.

그러자, 기억이 돌아온다.

그 모든 기억들이 당신에게 돌아온다.

당신이 애달피 울었던 모든 시간, 모든 장소가.

모든 얼굴, 모든 이름, 모든 약속, 모든 거짓말들이.


버스의 문이 열리고

저 여자 섧게 우는 까닭을 배후로 밀어붙이며

이제 당신이 울어야 할 사정들이

찻삯 한 푼 안 치르고 하나둘씩 올라탄다.


무관심을 즉흥극 하는 승객들의 침묵 사이로

말라 죽은 기억의 각질들이 부스러져 날리고

애수의 진동은 하품보다 빠르게 전염된다.

슬픔과 내통하는 불순분자들이 무한 증식하는,

이곳은 비애의 파시즘이 포화하는 강철의 궤짝.

손잡이를 꼭 쥐고 버티어 서라.

다족류처럼 들러붙은 눈앞의 노선도는

거짓과 모순을 줄그어 붙인 공상의 직선일 뿐.

버스는 이제 이 강의 남쪽으로,

당신의 직장으로 달리지 않는다.


원한을 달래줄 유가족 한 명 없이

회한의 시신들만 빼곡히 채운 운구차가

강 위를 지나며 속도를 더하고,

목적지도 경유지도 정체도 없이

영원토록 이어지는 운행을 막 출발한다.


시커먼 혼망의 강물 위로

이미 죽어 뭉개진 그 얼굴들

일렁일렁 떠올라 교각을 기어오르고

독성의 점액질 뚝뚝 흘리며

손을 뻗어 버스에 주렁주렁 매달린다.

버스 뒤창 밖으로 이미 당신을 배신했던 연인들이

다시 한번 등을 돌려 떠날 준비를 하고,

다리 저 너머 놓인 정류장마다

폭력과 모욕과 오해와 음해의 불청객들이

당신의 이름을 부르며 버스를 멈춰 세울 것이다.


그 누구도 하차 벨을 누르지 않는다.

내리는 길은 이미 폐문되었다.

시원치 않은 기지개를 시도할 때마다

무고한 비닐 레자만 뿌드득뿌드득

마른 비명을 지를 뿐.

어디선가 받아든 삼단 리플릿처럼

당신의 다리는 차곡차곡 접혀 있고

색전塞栓을 가득 담은 생존의 가방이

두 허벅지 위에 무겁게 올라앉아

모질게도 당신의 하차를 짓누를 것이다.


애초에 당신들은 단 한 번이라도,

목적지로 향하는 버스에 오른 적이 없었다.

그러니 지각이나 결근을 걱정하지 말라.

착각이다.

당신들은 이 버스에서 단 한 번도

내린 적이 없다.

당신들은 단 한 번도 울음을

그친 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