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이나 끊어볼까

by 후안

내 입술 사이에는

아래로만 향하는

외곬 깊게 패여 있어

술은 그저 기울기만 하여도

꼴꼴꼴꼴

알아서 속으로만 흐르는 일.


이리 쉽게 될 일이면

그 재미는 또 무엇인가.


술이나 끊어볼까.

차라리 끊는 일이 더 즐거움이 될까.


술을 끊는다는 말의 대꾸가

술을 잇는다는 말이라서

그저 가만히 앉아

저절로 술에 술이 붙는 것을

구경만 하는 시시한 일상이라는데.


찬바람 더 불어오면

나는 문을 걸어 잠그고

술이나 싹둑 잘라 내어 볼까.


그러면 내 구린 말씨들도

발효를 멈추고

말갛고 예쁘게 다시금 발아할까.


주당酒黨들이 일당독재하는 세상.

한 모금 잘라 내기만 한다면

그것이 연쇄적 궐기의 첫잔 된다면

그리하여 내 삶의 혁명이!

다시 시작될 수만 있다면.


무심히, 술이 술을 따른다.


그래, 돌이켜보면 술 없는 전쟁이

술 빠진 정변이

역사 어디에 있었던가.

그러니 나는 이 축배와 함께

이제 내 주권酒權을 되찾아 올

핏빛 단주의 쿠데타를 도모해야 하리라.